미국발 금융 위기와 우리의 대응
미국발 금융 위기와 우리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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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급진단 | 서상목 인제대학교 석좌교수

#효율적 위기관리체제의 구축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효율적 위기관리체제를 하루 속히 구축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첫 번째 문제는 위기관리의 사령탑이 없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요인 중 하나가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작은 정부’ 구축의 상징으로 경제부총리 제도를 폐지하였다. 이에 더해, 금융을 국내금융과 국제금융으로 이원화하여 전자는 금융위원회에, 후자는 기획재정부에 그 기능을 분산시켰다. 그 결과, 현재와 같이 국제금융위기로 인해 발생한 위기상황에 대처할 사령탑이 없게 되었고, 이는 정부가 위기를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경제부총리 제도의 부활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관련 법 개정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으나, 정부조직 전체를 다루지 말고 기존의 기획재정부 장관을 경제부총리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만을 추진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여야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사령탑이 제도적으로 확립되고 경제팀을 이끌어 갈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춘 인사가 경제부총리로 임명된다면, 현재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국제금융과 국내금융의 분리 그리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갈등 등은 조직개편보다는 경제부총리의 리더십으로 운영의 묘를 살려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위기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새로운 정부조직 개편과 이에 따른 혼선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기관리체제를 구축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기획 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한은 총재, 경제수석 등 주요 경제정책 팀원들의 자질과 팀워크이다. 우선 자질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현재의 위기가 금융부문에서 시작되었고 그 해결방안의 마련에 있어 국제적 공조가 필수요건이기 때문에 금융부문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이 있으면서 주요 선진국의 경제정책 수립자들과 효율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경제철학 측면에서도 시장만능주의나 정부개입주의 등 이념적으로 한 쪽으로 치우친 인사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시장과 정부개입의 적절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열린 사고’의 소유자가 바람직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주요 경제정책 팀원들 간의 원활한 팀워크 역시 효율적인 위기관리체제의 주요 요소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철학이 비슷함은 물론, 인간적인 차원에서도 경제부총리의 리더십에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인사들로 경제팀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위기관리팀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조기경보체제를 효율적으로 가동시켜 문제를 사전에 감지하여 적기에 대응책을 마련하여 추진하는 것이다. 분야로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금융분야가 최우선이겠으나 금융불안이 조만간 실물경제로 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택·건설·조선 등 산업별 조기경보체제도 동시에 마련하여 가동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위기대응책이 실효를 발휘하려면, 지난 번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경험한 대로, ‘단호하고(decisive)’, ‘선제적이며(preemptive)’, 그리고 ‘충분한(sufficient)’ 수준의 정책을 마련하여 추진한다는 원칙이 지켜지도록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단기 유동성 불안 문제, 건설회사 부도 문제, 가계 및 중소기업 부채 문제 등도 시기를 놓치지 말고 선제적이며, 단호하고, 충분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경기부양 위한 거시경제정책 추진과 규제완화
위기관리체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신용경색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동성을 적절히 관리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비하여 실물경제의 활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거시경제정책을 효율적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거시정책기조를 확고히 해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장기적 경기침체와 이로 인한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의 하락이 예상되는 현 시점에서 거시정책의 기조는 당연히 물가안정보다는 경기진작에 두어야 할 것이다. 경기진작을 위해서는 금리인하와 충분한 유동성 공급을 통해 기업의 생산과 투자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가계의 소비도 적정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이 시급하다. 최근 한은이 미국과 EU의 뒤를 이어 금리를 인하하였으나, 국제적 보조를 맞추어 추가적 금리인하와 유동성 확대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쟁점이 되어온 환율정책은 환율시장의 안정을 중요시하는 정책당국의 의지는 충분히 이해하나 이를 위해 외환보유고를 탕진하는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와 같이 국제적 금융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외환보유고의 감소는 오히려 환율시장에서 불안심리를 가중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과정에서 외환보유고를 사용하여 환율을 방어하려 했던 한국은 외한보유고의 고갈로 IMF의 구제금융이 불가피해진 반면, 무리한 환율방어를 포기한 대만은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환율안정을 위해 외환시장에 적절한 규제를 임시적으로 발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정부가 10월 13일 뒤늦게나마 ‘외환시장안정책’을 발표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한, 환율상승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는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적자는 원화가치의 하락으로 해소될 수 있다는 경제원리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중장기적으로는 경상수지의 개선 만이 환율을 안정시키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경상수지 개선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꾸준히 추진해나가야 한다.
경기부양을 위해 대공황 이후 뉴딜과 같은 재정확대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의 무리한 재정확대로 건전재정기조가 이미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에 경제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재정지출의 확대는 보다 신중을 기하면서, 민간부문의 소비와 투자의 확대를 유도하는 감세정책을 먼저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현재 극도의 침체현상을 보이고 있는 부동산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부동산 거래세와 양도세를 인하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된 부동산 시장에 대한 과다한 규제조치들을 과감히 완화하고, 현재 심각한 수준인 미분양 아파트문제에 대한 해결대책이 조기에 마련되어야 한다. 주택시장의 연착륙은 국내발 금융위기의 추가 발생가능성을 차단함과 동시에 건설경기를 진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최우선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정책과제이다.
또한, 소비와 투자를 억제하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완화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의료법인의 영리화 허용 등의 조치로 의료분야 투자를 활성화 할 수 있을 것이며, 수도권지역에 대한 각종 규제도 선별적으로 완화하여 수도권 지역에서의 기업투자를 촉진하고, 골프장에 대한 각종 규제와 조세를 경감시켜 외화의 해외유출을 억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제주도에 대해 외교·국방 이외의 분야에서 완전한 자치권을 부여함으로써 교육·의료·관광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투자와 경제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기전에 대비 경제운용의 틀 다시 짜자
이명박 정부는 ‘747목표’(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경제 강국)를 내세웠고 국민들은 이명박 후보에게 ‘경제대통령’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 그러나 취임 후 현 정부의 경제실적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성장목표만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의 개혁분야에서도 별다른 실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는 아예 포기하였다. 경제정책기조 역시 물가안정이 필요한 시점에서 확대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을 추진하려고 하였고, 경기진작이 시급한 시점에서는 물가를 염려하여 과감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유가에 대책 마련에 있어서도 유연하고 시행이 손쉬운 유류에 대한 탄력세율 인하 방법 대신 경직적이고 행정적으로 복잡한 ‘유가환급제’를 도입함으로써 국제유가가 급락하는 현 시점에서 유가환급금에 대한 민원으로 국세청 업무가 마비되는 ‘희극적인’ 상황을 초래하였다.
이제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대전환의 길로 가고 있고 한국경제도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 현 상황에서 현 정부 경제운용의 틀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위기상황인데 한가하게 경제운용의 틀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위기일수록 여유를 가져야 하며 위기대응책 역시 확고한 경제철학과 분명한 경제정책의 틀 속에서 만들어져야 일관성과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여건에 걸맞은 경제운용의 틀을 짜는 역할은 매일 위기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기획재정부보다는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경제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 온 한국개발연구원과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차제에 위의 두 기구를 통합하여 명실공히 정부중장기 경제정책의 산실 역할을 담당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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