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 디자인은 털의 모장과 사이즈, 염색 공정까지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 작업입니다. 숙련된 디자이너가 되기 까지는 시간도 많이 걸리는 편이고요. 하지만 제품이 나오기 전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구상하는 과정이 저에겐 가장 즐거운 시간이에요.” <사진 좌 진도모피 박샛별 디자이너>
지난 달 열린 제2회 2015 아시아 퍼 디자인 쇼케이스에서 한국을 대표해 독특한 창작세계를 선보인 진도모피 박샛별(33) 디자이너는 올해로 9년차가 됐다. 의상디자인학과 동기들이 일반 패션회사를 택할 때 그는 퍼(fur)가 주는 매력에 빠져 남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택했다.
그는 “흔하지 않은 디자인이기 때문에 배워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입사를 선택했다”며 “우븐 디자인은 시뮬레이션이 가능하지만 퍼 디자인은 로스를 최대한 줄여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 자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피 디자인은 구상과 결과물이 딴판으로 나오기로 유명하다. 털마다 볼륨 차이가 다르고 모장(털 길이)이 다르기 때문에 예상했던 디자인 그대로 나오지 않는다.
“결과물이 예측되지 않아서 더 재밌는 것 같기도 해요. ‘헉’ 하는 경우와 생각보다 잘 나온 경우가 있는데 초반에는 헉소리가 끊이지를 않았죠. 그런 시행 착오가 지금까지 성장해 올 수 있었던 비결이 된 것 같아요.”
모피 제품 한 스타일이 완성되기 까진 평균 2달 정도가 소요 된다. 스케치를 마친 후 광목 소재를 사용해 가봉을 하고 공장에서 제작하는 과정이다.
이번 아시아 모피 쇼케이스에 참가하기 위해 그는 5개월이라는 시간을 준비했다. 컨셉은 ‘위대한 개츠비’. 광란의 20년대를 보여주는 화려한 플래퍼룩을 묘사하기 위해 라이트 핑크 칼라로 염색한 밍크에 라쿤, 폭스로 모던하면서도 엘레강스한 룩을 재현해냈다. 퍼의 매력을 최대한 극대화 시키고자 했던 것.
그는 “완성도 있는 정석의 모피룩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며 “이번 쇼케이스 덕분에 10년동안 열심히 달려 온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감회를 전했다. 화려한 콘테스트 룩과 달리 평소 박 디자이너가 즐기는 디자인은 일상생활에 어우러질 수 있는 웨어러블한 제품이다. 5년 전엔 기존 작업방법을 바꾸고 브로치를 단 영한 디자인으로 한층 더 젊어진 모피 패션을 제안하기도 했다.
“진도는 아직 올드하다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국내 고객은 은은한 라인과 미니멀한 톤온톤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에 너무 과한 화려함은 넣지 않을 거에요. 꾸준히 디테일과 디자인을 보강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2~3년 뒤에는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 디자이너는 10년간 수백벌의 모피 제품을 만들어 냈음에도 불구, 지금까지 모피 옷은 한 벌도 없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모피 옷을 가장 많이 입어본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하루에도 큐시작업 때문에 10벌 정도는 수시로 입어보기 때문이다.
모피라면 정말 지겹게 많이 만져보고 입어봤다며 웃음 짓는 그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그는 조심스럽지만 명확한 눈빛으로 두가지 꿈을 말했다.
“현재 진도모피와 엘페, 두 브랜드의 디자인을 함께 맡고 있는데 각자의 개성을 살려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는 만큼 내년부터는 두 브랜드 모두 잘됐음 좋겠어요. 그리고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훗날 제 이름을 건 오더메이드 모피 샵을 런칭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기획부터 제작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겠죠. 그 날까지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