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국산 섬유소재 수준 한단계 높이는 계기로 삼자”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국내 경제 산업계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섬유산업 피해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으로 확인됐다. 탄소섬유, 아라미드섬유, 고강도 PPS 등 산업용 섬유 수입에 차질은 있지만 이들 품목은 수요가 적고 대체 상품이 많아 거의 영향이 없다는 분석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품목은 탄소섬유다. 특히 최근 자주 거론되는 수소연료탱크용 탄소섬유는 거의 전량을 일본 도레이(TORAY)에 의존하고 있는데 수입에 차질을 빚을 경우 생산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국내에서 탄소섬유를 생산하고 있는 효성첨단소재는 이미 성능 및 안전규정 충족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 거의 마지막 단계만 앞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화학섬유협회 김영식 부장은 “절차가 까다로워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효성의 수소연료탱크용 탄소섬유는 심사규정을 통과하고 안전검사를 받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일부 통과되지 못한 항목을 보완하는 마지막 테스트 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수만개 부품과 소재를 조립하는 자동차 산업 특성상 보편적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화력발전소, 제련공장, 폐기물소각장 등의 고성능 필터에 주로 쓰는 고강도 PPS는 이미 휴비스에서 생산하고 있어 충분히 대체가 가능하다.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페닐렌 설파이드(PPS)를 섬유로 개발한 휴비스의 ‘제타원(ZetaOne)’은 유럽, 중국 등에서 품질을 인정받았다. 작년 3500t을 판매하며 일본 도레이에 이어 세계 시장점유율 25%를 차지하고 있다. 아라미드 역시 국내 기업들이 상용생산하고 있고 미국 네덜란드 등에서 수입할 수 있는 대체제도 충분하다는 평가다.
이처럼 현단계에서 한일 양국간 무역전쟁이 국내 섬유패션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장기적 상황변화에 따른 불안요소는 존재한다. 의류수출 업계의 경우 해외 바이어들이 일본산 섬유 소재를 노미(nominate, ‘지정한다’는 의미)하는 경우가 있어 일부 업체들은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산업조사실 정성헌 실장은 “유니클로 등 일본 브랜드에 납품하는 업체들도 지금 상황에서는 수출에 차질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다만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소재를 공급받는 곳들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섬유패션업계는 오히려 이번 무역전쟁이 국산 섬유소재 개발 및 품질향상을 위한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국내 소재부품산업 육성을 위한 규정 완화와 지원을 약속하고 있는 만큼 우리기업들이 연구개발에 매진해 국산 섬유소재 수준을 한단계 더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난 5일 정부 대책회의에 참석한 김영식 부장은 “일본에서 수입되고 있거나 국내에서 생산이 되지 못하는 품목의 경우 기업이 투자하면 정부는 승인이나 절차 간소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방침”이라며 “당장 소재 국산화에 필요한 연구개발비 지원 등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지난 5일 산업통상자원부 성윤모 장관 주재로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업종별 영향 점검회의’를 열고 다각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날 정부는 기업 수급차질 방지와 피해기업 지원을 위한 종합 대응계획과 현재 마련 중인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방안’을 설명하고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성윤모 장관은 “차제에 국내 공급망을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수요 공급기업간 다양한 협력 모델 구축을 위해 자금·세제·규제 완화 등 모든 지원책을 패키지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