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 신발연구소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은 신발보다 사람에 관심이 더 많다. 겉으로 좋아보이는 신발보다 신는 사람이 편하다고 느끼는 신발을 만드는데 몰두한다. K2 신발연구소 이정호 팀장은 “좋은 소재를 아무리 많이 모아도 잘 설계하지 못하면 ‘비싼 재료를 넣은 라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K2는 원래 소재를 다루는 데 능숙한 기업이었다. 너도 나도 땀이 잘 마르고 비가 와도 견디는 신발을 만들면서 레드오션으로 변한 아웃도어화 시장은 정체기에 들어섰다. K2는 2016년 3월부터 신발연구소 설립과 함께 신는 사람을 중심으로 만든 신발에 자금을 투자했다. 2019년 아웃도어 신발 시장 30%를 차지하면서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게 된다.
초기 신발연구소는 내부에서 인정하지 않는 부서였으나, 능력을 입증하면서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신발연구소 연구팀은 출시 직전이던 신발 밑창이 오래 지나지 않아 부러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보완했다. 발가락과 발볼 사이 부분은 신발 밑창에서 가장 자주 구부러지는 부위기 때문에 내구성이 높은 소재를 써야 한다.
이 신발 밑창은 외형 디자인을 우선시해 유연하지 않은 아웃솔 소재를 발볼이 끝나는 부분까지 덮었다. 신발연구소는 시뮬레이션과 테스트로 신발 바닥이 쪼개진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대로 출시했다면 전량회수 조치를 취해야 하는 심각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소재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발가락을 받치는 아웃솔을 유연한 TPU로 교체했고 이후 신발연구소는 K2코리아가 적극적으로 자금을 투입하는 부서가 됐다.
이 팀장은 “가장 큰 고민은 매출과 직결되는 인간·감성공학 디자인을 이뤄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웃도어 신발 시장은 이제 막 감성공학을 신발에 적용했다. 신발 연구개발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고 설비를 들인 것도 국내에서는 K2코리아와 데상트코리아 뿐이다.
신발연구소가 나아가려는 방향은 맞춤형 아웃도어화다. 아웃도어화는 발에 맞을수록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아웃도어화는 한국인 평균 발 사이즈 데이터로 신발을 제작했다.
평균 수치로 만든 신발을 신으면 어떤 소비자는 발목이 헐겁고, 또다른 소비자는 발볼이 조인다고 느낄 수 있다. 이 팀장은 같은 신발을 3종류(좁음, 평균, 넓음) 너비로 제작했을 때 소비자 만족도가 90%까지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를 언급하면서 “국내 아웃도어화 시장의 미래는 ‘다양성’을 충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체육학과를 거쳐 국민대 스포츠과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 팀장은 아웃도어는 스포츠와 특성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주로 편평한 바닥에서 이뤄지는 스포츠와 달리, 아웃도어는 바위와 나무뿌리, 미끄러운 흙으로 이뤄진 경사면이라는 여러 변수가 등장한다. 이 팀장은 아웃도어 환경에 맞춘 테스트 장비를 주문제작했다.
2020년에는 1차로 굴곡, 바닥면 마모, 오르막 버팀, 자외선 황변, 외부 충격 흡수 정도를 실험한다. 올해 1월에는 신발바닥 샘플을 만드는 3D프린터도 도입했다. 2차 테스트는 6개월간 전문 산악인에게 부착한 센서로 생체 신호를 수집하는 방식을 취한다.
발바닥 부위마다 가해지는 압력을 측정해 산악인이 이 신발을 신고 산행할 때 어떻게 느끼는지 분석한다. 앞으로 내리막 버팀과 오르막 걷기 분석 장비를 들일 계획이다. 특히 내리막에서 무릎이 온전히 하중을 버티지 않게 받쳐주도록 신발을 설계하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