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수정의 밀라노 스토리 (9)] 伊 패션은 변화에 쉽게 동조되지 않는다
[차수정의 밀라노 스토리 (9)] 伊 패션은 변화에 쉽게 동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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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패션샵, 이름값 못하는 경우 많아
수준 높고 클래식한 소비자 성향에 미흡
유럽내 대도시에서는 중저가 상권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상가나 브랜드샵 위치 이동이 적은 편이다. 거의 대부분 브랜드를 백화점 한 건물내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플래그십 스토어나 멀티 브랜드 스토어 시스템이 오랫동안 자리 잡아왔기 때문이다. 시내 한가운데뿐 아니라 구석구석 거리를 돌며 항상 같거나 비슷한 위치에 있는 샵에서 쇼핑을 하는 것도 유럽여행 중 흥미로운 부분이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밀라노 몬떼나폴레오네 근처 1~2km 반경 내에서 항상 마주치는 브랜드 스토어는 큰 변함없이 몇 년 후에도 같은 위치나 가까운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특별히 큰 변화가 없는 밀라노에서 시내 산책 중 우연히 기억나 들린 샵이 폐점된 것을 발견하는 일은 거의 쇼크에 가깝다. 이런 뉴스를 놓쳤다는 아쉬움과 함께 좋은 컨셉샵이 밀라노 쇼핑 트랜드 내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영원히 사라졌다는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의 패션 피플이 파리 방문시 항상 들리는 샵들이 있듯 밀라노에도 바쁜 일상 중 자주는 아니지만 근처를 지날 때 꼭 들리게 되는 샵들이 있다. 불행하게도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이들 중 몇몇 유명 스토어들이 불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가 종종 보도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밀라노가 세계적인 패션도시 중 하나임에도, 세계적인 패션 랜드마크로 불리는 샵들은 밀라노에서 크게 성공을 이어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이탈리아 의류 소비자들의 클래식한 패션 스타일과 수준 높은 패션 타겟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excelsior mil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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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탈리아로 여행 오는 해외 소비자들을 타겟으로 하는 특정 샵들도 많은데 이곳으로 모여드는 국제 소비자들의 현저한 감소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밀라노에서 개점해 서울 뉴욕 상하이 등 세계적인 도시에 개점된 디에치 코르소코모(10 Corse Como)는 밀라노의 대표적인 패션, 디자인과 문화공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디에치 코르소코모는 밀라노 아트 갤러리어 카를라 소짜니(Carla Sozzani)와 전 보그이탈리아 디렉터로 유명한 프랑카 소짜니(Franca Sozzani) 자매가 1991년 오픈한 멀티브랜드 스토어다. 패션뿐 아니라 디자인, 인테리어 소품, 레스토랑, 서적, 갤러리 등 다양한 문화공간 프로젝트를 실현해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코르소코모는 상업성에 치우치지 않고 독창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국제적 디자이너 브랜드만 입점할 수 있는 멀티샵으로 전세계의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멀티샵으로 유명세를 떨쳐왔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재정적 어려움을 겪던 코르소코모는 2015년 467만 유로의 세금 체납 사실이 알려지며 관련 사실들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10 corso como
10 corso como
이후 세금 분할 지불 등의 동의를 통해 상황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여전히 부채와 임대료 지불 지연 등으로 인한 법정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한편 엑스첼시어(Excelsior)는 코인 그룹이 밀라노 시내 중심 상권인 갈레리아 델 코르소(Calleria del Corso)에서 2007년 오픈한 멀티브랜드 스토어였다. 이곳은 1928년 이후 80년 동안 위치해 오던 시네마극장 엑스첼시어의 외벽만 남긴 채 내부를 완전히 개조해 7개 층에 걸쳐 4000㎡ 규모의 작은 백화점으로 탈바꿈하며 오픈했다. 당시 페이스북에 소개된 바와 같이 ‘패션, 디자인을 포함한 미용 액세서리 음식 와인 등 독특한 쇼핑 경험이 될 것’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출발했다. 지하에는 럭셔리한 슈퍼마켓 잇츠(Eat’s)까지 입점한 상태였다. 코인 그룹은 위치상 가까운 이탈리아 최대 백화점 리나쉔떼(Rinascente)와 차별을 두기 위해 패셔너블한 높은 타겟층을 겨냥했고 이렇게 세간의 관심속에 출발한 엑스첼시어는 몇 시즌이 지나지 않아 매출이나 호응도면에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 시작했다.
10 corso como cafe
10 corso como cafe
이렇게 시험적 컨셉의 멀티스토어는 10여년의 고전 끝에 2018년 폐점을 공식화했다. 개점 당시 밀라노에서 보기 힘든 상당한 고퀄리티 컨셉으로 셀렉된 브랜드를 선보였지만 극히 일반 소비자를 타겟으로 하는 리나쉔떼와의 경쟁을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됐다. 2018년 코인그룹(Gruppo Coin)은 밀라노의 새로운 상권으로 자리잡고 있는 시티라이프 내에 새로운 젊은층을 공략하는 구조로 코인 엑스첼시어를 오픈했는데 기존 구도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상업적 세일즈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파리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밀라노에서 일하는 패션 디자이너들은 보통 1년에 한두번쯤 파리 출장을 가게 된다. 소재 전시인 프레미에르비죵(Premiere Vision)을 보러 가거나 패션위크 기간 중 자신이 일하는 브랜드 세일링을 팔로우하기 위해 출장을 계획하는 것이다. 파리를 방문하는 디자이너들은 항상 다니던 곳에 호텔을 잡고 같은 노선으로 코스를 정해 샵들을 둘러보는 것이 시내 일정의 대부분이다. 이는 파리가 밀라노와 비슷해 같은 컨셉과 타겟을 겨냥하는 브랜드 스토어나 멀티브랜드샵이 항상 일정한 패션 디스트릭트 내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변함없는 파리에 익숙해지던 즈음 2015년경부터 조금씩 변하고 있는 파리의 모습을 발견하며 놀랍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던 빈티지 샵이나 로케이션이 인상적이던 서점이 없어진 것을 깨닫는 것은 파리도 피해갈 수 없었던 불황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걱정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나 밀라노 패션시장에서 느끼게 된 일련의 변화들이 단순히 불황에서 오는 현상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사실 오랫동안 살펴본 이탈리아와 밀라노는 생각보다 훨씬 새로운 것에 엄격하고 변화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 곳이라고 가끔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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