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대란으로 불신불만 팽배
토마스 홉스의 ‘만인투쟁’ 연상
살아남고자 하는 자기보존욕 강하면
서로를 이기려는 야만의 시대로 후퇴
섬유 단체와 경기북부 섬유업계가 협업해 생산한 항균마스크를 써 봤다. 주문한지 채 1주일이 되지 않아 물건을 받았다. 이 마스크는 국내 화섬메이커의 항균 원사를 사용했다. 숨쉬기 편하다는 평이 있는 반면 디자인은 크게 기대할 것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항균마스크(포도상구균 등 미생물 번식을 99.9% 억제)가 KF 등급 마스크(Korea Filter, 마스크가 먼지를 걸러주는 비율에 따라 80, 94, 99 등급으로 나뉨)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들렸다.
그러나 5개 들이 포장을 개봉하니 본딩 냄새가 나고 얼굴에 썼을 때 먼지가 많은 건 흠이었다. 생산업체에 문의하니 하루정도 숙성해 냄새를 날리고 재단 과정에서 생긴 먼지를 제거하고 포장해야 하는데 급하게 하다 보니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다만 친환경 본딩을 했기 때문에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항균마스크는 이미 수십종이 출시된 상태다. 가격도 나쁘지 않다. 내친김에 이리저리 좀 더 훑어보니 KF94와 동급으로 인정받는 중국산 KN95는 개당 단가가 2100원까지 내려간 제품도 있었다.
기자는 지난 1주일간 ‘중국인증 KN95 마스크 개당 0.95불, 최소 100개 주문가능’ 류의 중국발 메일을 10여개 가까이 받았다. 공포 상황까지 치닫았던 마스크 대란이 점점 안정돼 가는 느낌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정부의 미숙한 대응으로 품귀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이후 강력한 출고조정 및 수급 노력으로 더 악화되지는 않았다.
약국 앞에 수십미터씩 줄을 서던 장사진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중앙정부 및 지자체, 단위별 기관들이 사력을 대해 MB필터를 조달하고 민간 기업 및 단체들이 대체 마스크를 개발해 낸 성과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근본적 변화를 몰고 왔다.
정부가 개인을 지켜 주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고, 나와 매일 얼굴을 맞대던 친근한 이웃이 서로를 해할지 모른다는 불신과 불안으로 몰고갔다. 마스크 대란으로 옮아간 이번 사태는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시민론(De Cive, 1642)에서 언급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하 만인투쟁)’을 연상시킨다.
세상이 혼란해지면 사람들은 제각각 살아남고자 하는 ‘자기보존욕’에 매몰돼 기존의 도덕 윤리는 무너지고 더욱 혼탁한 상황을 맞게 된다. 홉스는 이런 자기보존욕을 인간의 기본적 권리, 즉 ‘자연권’으로 정의 내렸다.
그리고 이런 자연 상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상대방을 누르기 위해 서로 싸움을 거는 ‘만인투쟁’이 계속된다고 봤다. 결과, 서로의 안전을 약속하는 계약을 맺게 되고 이 계약을 강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의 등장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됐다. 국가의 힘이나 규범이 쇠퇴하면 다시 이전 단계인 ‘만인투쟁’을 불러오는 야만의 시대로 후퇴하게 된다는 사실을.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할 때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는 자기보존욕이 사회를 얼마나 불안하게 하는지, 패닉에 빠진 개인이 어떤 한계상황까지 내 몰리는지를 알게 됐다.
다행스럽게 코로나19가 불러온 마스크 대란은 ‘만인투쟁’ 시대에 대한 연상으로만 끝이 날 듯하다. 감염을 막기 위한 지역 사회의 노력과 문제 해결에 총력을 다한 민간의 실천이 벼랑 끝에 몰린 사회적 규약과 신뢰를 지켜낸 것이다.
대구 시민들은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 봉쇄’를 선택했고, 기업들은 존재 이유인 영리 추구를 뛰어넘는 헌신적 기부와 희생의 모습을 보여줬다. 코로나19 전쟁의 최전선인 의료 현장에서는 더 큰 헌신과 봉사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제서야 방역의 가장 기초인 마스크 수급 해법에 한발짝 다가섰을 뿐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며 해외 입국 확진자 숫자가 국내보다 더 많아 졌다는 새로운 사실이 확인됐다. 홉스는 ‘만인투쟁’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논한다. 강력한 지배권을 부여한 군주나 주권체제 앞에서 시민들은 모든 권리를 상실한다.
이 통치권에는 거의 무한대의 권력이 주어진다. 설령 전제적이고 폭압적인 통치자가 되어도 ‘무한투쟁’이 반복되는 무정부 상태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한가지 예외를 뒀다. 국가는 ‘자기보존욕’의 산물이므로 이 권리가 제한될 경우, 즉 개인을 보호해줄 만한 권력을 잃은 군주에게는 복종할 의무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코로나19의 망령에 사로잡혀 ‘만인투쟁’ 속으로 뛰어 들었다면 나의 생활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하마터면 국가의 실패가 야기한 ‘만인투쟁’ 탈을 쓴 야만의 시대를 볼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