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로는 입에 풀칠도 하기 힘든 시절이다. 일식 요릿집이나 음식점은 더 그렇다. 작년에는 일본 불매운동이 있었고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재난이 골목길 상권의 목을 죄고 있다.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에 있는 쇼헤이(小平, 작은 평화)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더 어려웠다고 한다. 지근 거리에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가 있어 잊을 만하면 거리 통제가 이뤄졌다. 이원선(38) 오너쉐프는 “그래도 단골 손님들이 가게를 지켜줘 10년간 한자리에서 영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 음식전문가 단체 연합회(NPO FBO)가 공인한 ‘키키자케시(사케 소믈리에)’다. 국내에 300여명 정도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러니 이 집에서는 사케를 안 먹을 수 없다. 이 쉐프는 ‘하기노츠루(100,000)’를 추천했다. 미야기현의 하기노(萩野) 주조 사케다. 올해는 딱 2병만 들여왔는데 1병은 이미 팔렸고 남아 있는 마지막 1병이란다. 살얼음 상태로 나온 하기노츠루는 처음에는 탄산이 강하지만 조금씩 얼음이 녹으면서 풍미를 더하며 3가지의 색다른 향과 맛을 선사한다.
함께 내온 곶감 호두강정 크림치즈(20,000)는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맛의 조화를 보여준다. 얼린 치즈 주위에 얇은 곶감을 두르고 큼지막한 호두 고명을 올렸다. 치즈가 녹으면서 식감과 맛이 또 달라진다. 술과 안주의 조화가 천변만화(千變萬化)다.
남은 사케는 일주일간 보관한다. 그 시간이 넘으면 향이 사라져 제 맛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단골 손님들은 그 사이 먹지 못하면 잠깐 들러 집으로 가져간다고.
주방 앞의 작은 홀 중앙에는 커다란 앙동(行燈)이 걸려 있다. 10년전 가게를 오픈할 때 한지공예 장인이 선물한 창작품이라는데 꽤 격조가 있다. 내 집에 가져가 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