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패션을 과학과 접목해 다양한 주제 펼쳐
격주로 13면에 실리던 ‘차수정의 밀라노 스토리’는 30회를 최종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이어 국내 최고 원단소재 전문가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안동진 現 건국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겸임교수의 텍스타일 사이언스(Textile Science)를 4월 12일자부터 새롭게 연재합니다. 안동진 교수는 섬유, 패션의 원리와 응용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지면 가득 펼쳐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정보에 대한 갈증을 풀어낼 ‘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에 많은 관심과 응원 바랍니다. <편집자주>
“패션회사 CEO나 디자이너는 이제 뒷주머니에 ‘지속가능(Sustainable)’이라는 자(尺)를 항상 꽂아 두고 다니며 우리 회사의 조직 또는 제품이 이 기준에 맞는지 일일이 대봐야 하는 때가 왔다. ‘지속가능이 도대체 뭐냐’고 많이들 묻는다. (정의를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다면) 환경과 건강, 자원절약 세가지만 생각하라. 이 기준의 잣대를 들이대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안동진 교수를 만나 인터뷰하기는 이번이 두번째다. 그 때가 2010년이었으니 무려 11년이 지났다. 당시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지치지 않는 호기심과 열정이다. 그는 본업인 섬유를 중심에 두고 물리에서 화학, 나아가 생물학까지 논리가 뒷받침된 실증 학문으로 끊임없이 지적 호기심의 세계를 탐험해 왔다. 이번 인터뷰는 앞으로 연재될 시리즈의 미리보기다. 코로나19와 지속가능의 상관관계부터 물었다.
-지속가능, 쉽지 않은 주제다.
“지속가능은 당장 눈앞에 닥친 집채 만한 파도와 같다. 이 파도는 천천히 오지 않고 순식간에 닥친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부르겠다. 즉, 패션이 특이점을 만난 건데 코로나19가 이를 더욱 앞당긴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 역할을 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은 지속가능이 왜 중요한지 잘 모른다. 설령 인지한다고 해도 그 정보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모르고 헤매고 있다.
유엔(UN)은 지속가능 개발 의제를 17개 항목으로 정리했다.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면 섬유패션 종사자들은 3가지 크리테리아(Criteria)만 기억해도 될 것 같다. 첫째 환경, 둘째 건강, 셋째 자원절약이다. 관념적으로 스쳐가지 말고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환경과 건강은 서로 대척점에 놓여 있다.
건강은 시제가 현재이며 나를 위한다는 면에서 이기적인 문제다. 환경은 시제가 미래이며 내가 아닌 주변을 이해하는 이타적 개념이다. 우리 물건이, 우리 조직이 지속가능한지 궁금하다면 이 셋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하는지 보면 된다. 기준 충족이 하나라면 괜찮고 두개 이상이라면 아주 좋다.”
-패션이 특이점을 만났다고 했다. 뭐가 달라지나?
“인류의 패션 역사를 7000년이라고 가정하자. 발견된 가장 오래된 옷이 그때라고 하니까. 그 7000년 동안 패션의 핵심이 아름다움과 멋짐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가격과 편리성? 부수적인 요소였다. 단적으로 하이힐을 보자.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이다. 이제 패션의 모든 요소위에 ‘지속가능’이 군림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예뻐도, 가성비가 좋아도 지속가능하지 않으면 쓸모 없게 된다.
유럽은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 미국은 교토의정서를 거부하고 파리협약도 탈퇴했다. 유럽은 그 사이에도 ZDHC(Zero Discharge of Hazardous Chemicals, 화학물질 제로배출) 등 다양한 환경규제 프로그램을 발전시켜왔다. 글로벌 메이저 패션브랜드는 모두 가입했다. 이 프로토콜을 지키지 않으면 소위 나쁜 회사가 되는 거다.”
-당신에게 패션이란 무엇인가.
“나를 다른 사람과 구분해 주는 두번째 아이콘이다. 첫번째 아이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눈? 얼굴? 키? 아니다. 사람을 처음 봤을 때 최초로 얻는 정보는 성(性)이다. 그 다음으로 얻는 정보가 옷차림이다. 얼굴을 보면 예쁘다 또는 잘 생겼다는 주관적 판단이 가능하지만 이는 빈약한 정보다. 그러나 옷차림을 보면 많은 정보가 입력된다. 자신의 정보를 타인에게 알려주는 두번째 아이콘이라고 말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