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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은 늘 그랬듯 흰 백지를 마주한 듯한 약간의 기대
와 불안과 자유로움 등이 믹스된다.
예전과는 달리 MIPEL과 MICAM이 함께 진행되어서
인지, 아니면 경기가 좋아진 탓인지 AIR FRANCE 기
내엔 IMF직후의 예년에 비해 훨씬 많은 낯이 익은 얼
굴들이 눈인사를 보낸다.
5박6일의 짧은 일정을 어떻게 요리할까 구상하며 파리
를 경유, 서울로부터 16시간 여만에 밀라노 말펜사
(MALPENSA) 신공항에 도착했다.
첫날(9월16일) 피에라(FIERA) 밀라노 - MIPEL 쇼 관
람.
트랜드 테마관 방문. 이태리 피혁조합(AIMPES)은
2000 S/S 테마를 여러 가지 비주얼적 자료와 함께 다
음과 같은 네 가지 테마를 제안했다.
▲SOLAR에서는 아프리카의 붉은 토양, 해돋이의 스파
이시한 이미지, 그리고 에로스와 여행, 이국적임을 상징
하는 테마로 컬러톤은 오렌지에서 레드까지를 주로 사
용한다.
▲LIME은 에너지와 낙천주의을 상징하는 테마다. 신맛
을 연상케하는 이미지, 옐로우와 야채의 녹색과의 조화
와 짚의 황금빛 갈색과 그레이의 뉴트럴 톤의 새로운
조합을 선보인다.
▲AURA는 흰색의 순수함을 주제로 선물용 플라스틱
상자의 흰 빛깔, 혹은 포장종이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시각적 느낌을 상징한다.
▲DREAM은 은은히 스며 나오는 빛의 느낌을 표현하
고 있으며 가벼움, 단순함을 상징하고 있다. 블루 톤의
바리에이션이 특징적이다.
이번 미펠은 각 브랜드 특성에 따라 CLASSIC,
GLAMOUR, ACCESSORIES, OVERSEAS,
GALLERIA, TRAVEL&BUSINESS, DOMANI 등으로
나뉘며 각 섹션은 깔려있는 카페트의 컬러대로 지도에
컬러가 표시, 그 색을 따라 밟아가면 원하는 섹션으로
갈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갤러리아 섹션에서는 「NANNINI」와 「FUTURA」
가, 글레머섹션에서는 「MAZZINI」, 「BIASIA」 등의
새로운 시도가 신선하다.
오늘 관람을 통한 2000년 백 스타일을 살펴보면 소재는
습식PU이 크게 부각되고 있으며 이외에 소프트 카프,
송치, 우레탄계 스판, 수지 코팅된 패브릭류가 주된 소
재로 사용되고 있다.
컬러는 아이보리부터 베이지톤, 레몬옐로우에서 카키
그린, 오렌지에서 레드까지를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영
화 오스틴파워를 연상케하는 위의 컬러들이 의외의 조
합으로 신선하게 다가오고 있다.
실루엣은 스포티브룩에서 주로 쓰이던 유틸리티 백이
고급정장 브랜드에도 접목돼 있으며 숄더가 짧은 중
(中)숄더백이 선보였다.
둘째날(9월17일) MONTE NAPOLEONE, 데라스피가
거리, 리나센테 백화점.
MONTE NAPOLEONE에서 데라스피가 거리, 그리고
마테오리 거리를 중심으로 한 유명 부띠끄 샵, 그 중
특히 남성용 샵과 여성용 샵이 구분돼 잇는 「구찌
(GUCCI)」의 지하 끝없이 미로처럼 얽혀있는 각 방들
을 돌아보며 이러한 불규칙 속의 자유로움이 지금의 예
술적인 이태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나가는 이탈리아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낯선 유틸리티 백이 내년 봄쯤엔 무리없이 소화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셋째날(9월18일) 피렌체.
트리니티 광장 부근 강을 배경으로 로마시대 신전처럼
서 있는 「베르사체(VERSACE)」매장.
토르나부오니 거리 주변의 유명브랜드 샵들과 마차가
달렸음직한 골목골목 가운데 숨어 있는 아름다운 광장
들.
심혈을 기울여 손님에게 어울리는 제품을 추천해주는
밀라숀 매장의 50대 후반, 혹은 60대 초반 샵 마스터의
노련하고 진지한 고객 응대법을 지켜보며 20∼30대의
젊고 예쁜 얼굴 위주의 샵 마스터가 대부분인 국내 샵
들의 정경이 떠올랐다.
양국 패션 역사의 대조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하는
자격지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피렌체는 밀라노에 비해 약간은 캐주얼하고 젊은층을
위한 샵이 많은 편이다. 집시가 없는 곳이라 마음 편하
게 시장조사를 할 수 있는 곳이란 점도 밀라노와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날(9월19일) 파리 샤르르 드골 공항.
5박6일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매
시즌마다 이 같은 출장을 다닌 지 올해로 12년째.
매번 출장마다 얻은 것, 느낀 것은 모두 다 제각각 다
양한 모습과 색깔로 내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러
한 자극이 항상 나의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의 줄을 팽팽
하게 긴장시켜 새로운 창조를 끌어내는 원천이 되어준
다.
이 세상 어느 곳에, 그곳이 밀라노이던 파리이던 뉴욕
이던 그 한 모퉁이에 내가 모르는 아름다운 장소가 있
고 나의 감각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요소들이 속속 숨어
있음을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그곳을 보물찾기하듯 뒤지고 파김치가 되어 출
장에서 돌아오는 길의 나의 눈동자는 더욱 빛나나보
다….
<저자약력>
▲ 이화여대 卒.
▲ 홍익대학교 산미대학원.
▲ F.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