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텐다드와 질서정립
불과 몇 년 사이에 세상이 크게 달라졌다.
듣도 보지도 못했던 IMF라는 단어와 혁명적인 정권 교체가 맞물리면서, 과거 50년 가까이
고착되어온 체제와 이념, 관습등이 글로벌 스텐다드라는 새로운 질서에 끝없이 용해되어가
는 엄청난 과정도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 변혁이 일었으며, 부동산 이외에 아무런 평가 지표를 갖고
있지않았던 은행들의 퇴출과 합명의 충격으로 뇌사 상태에 빠져버렸는가 하면, 체제의 판도
가 몽땅 뒤집혀서, 이전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재벌의 해체과정까지 목격해야 했다.
따라서 지금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벌과 금융기관은 절대 망하지 않는
다’는 신화가 사라지고, 미국과 IMF는 한국을 경제 위기 극복의 성공모델로 거론할만큼
상황도 급반전되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실로 극한 상황에 내몰리면, 드라마틱한 타협의 장면을 연출해 낸다는 소위 막판
뒤집기에 강한 한국인의 저력을 세계인의 머릿속에 다시한번 각인되기도 했다.
여전한 개혁 무풍지대
패션업계도 마찬가지이다.
흥청망청 잘나갈때는 몰랐는데, 위기 의식이 팽배해지자, 당장에 깡통소리를 내며 쓰러져 가
는 업체들이 속출했으며, 효율과 실속보다는 겉치례와 명분 유지가 더 중요했던 사람들은
제 손발을 잘라가며, 남들이 먼저 죽어가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머천다이징 능력은 없고, 생색은 생색대로 내면서, 리스크는 모조리 입점업체에게 부담을 주
는 무책임한 소매업자들은 여전히 무풍지대에 있고, 회계연도 말쯤되면, 브랜드사들은 의례
히 고액의 세금에 두들겨 맞지 않기 위해 ‘실은 정말 속빈 강정’이라며 징징거리며 매달
려야 하는 현실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말그대로 죽는 소리와 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개혁의 효과라는 것 보다는
이런 수많은 악조건과 나쁜 관행과도 잘 타협해 가면서, 요리조리 잘빠져 나가는 사람들에
게 관심이 더 집중되기도 했던 모순의 시대.
입에서 말하는 윤리와 내면속의 윤리가 엄청나게 달라도, ‘돈을 번다’는 기준이라면, 별반
아무 의식없이 흐름을 잘 타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로 인해, 사람들은 ‘세상은 다 그런것’
이라는 체념을 강요 당하기도 했다.
기본과 원칙 생각하기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은 많은데, 배는 언제나 산으로 올라가
고 있는 기분이 들때가 있다.
변화가 이토록 극심한 세상에서 현실을 냉정히 인정하고 낡은 상관습에 휘둘리지 않은채,
뉴 글로벌 스텐다드에 당당히 앞장서가는 작업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무모
함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개혁의 단계에서 탁상공론으로 좌절하든지, 어정쩡한 상태에서 그대로 밀어붙이
려는 다소 기형적인 의도에도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의 경제 정세와 외국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이런 어려움속에 국민의 한사람으로
써 느끼는 바도 많지만, 문제의 가장 심플한 해결은 언제나 기본을 숙지하는 데 있다는 것
을 믿고싶다.
이것은 패션 비즈니스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한국의 비즈니스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언제나 포인트는 가장 핵심을 외면한채 개혁을 바라고 부르짓는다는데 있다.
돈줄이 관심 갖는 조건 만들기
떠주는 밥을 먹으면서 반찬 타령하는 것만큼 얄미운 일도 없다.
뒷짐지고 비난을 하면서 ‘알아 모셔주기를 바라는 일’이나 ‘손안대고 코를 풀 수 있다’
는 황당한 발상이 아직도 이 업계에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개혁이 웬만큼 진행된 지금 어디에고 무풍지대는 없다.
적당히 이리저리 시류를 넘나들던 행운의 확률도 점차 희박해 지고 있다.
그리고 더 답답한 것은 지금 세계에는 갈곳 없는 자본이 보다 돈이 될만한 아이디어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간단하다.
앞으로 비즈니스의 향방은 외국 자본쪽에서 참가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없는가를 생각 하는것.
그를 위해서 프로젝트의 기본은 컨셉을 알기 쉽고, 자신이 있는 목소리로 강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설득력 있는 포맷을 준비 할수있느냐 없느냐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이미 물건너 간 이야기지만, 한동안 패션업계에는 컬렉션 통합문제로 시끄러웠을 때, ‘修身
齊家 治國平天下’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통합’이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성 때문에, 마치 그것만이 정답인것냥 모두가 허둥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이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편가르기 이전에, 우리는 각
자의 맡은 역할에 얼마나 충실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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