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2 추동 서울 컬렉션이 폐막된 시점에서, 국내 패션비지니스의 미래전망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게 일고 있다.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잇따르고 패션이 양적 팽창에서 질적 향상이라는 테마로 질주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 구심점 찾기가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1970년후반부터 프랑스 정부가 내놓은 전통 공예산업진흥책을 다룰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수공업 실내공업예술과 오뜨꾸뛰르를 포함해 많은 패션관련산업에 대한 제반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프랑스정부가 이런 진흥책을 내놓은 것에는 오일쇼크이후의 심각한 경제불황속에서 실업문제가 크게 부각되었고, 전통산업분야의 중소기업, 영세기업의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배경이 있었다.
즉, 제 2차대전후의 고도성장하에 오로지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 양의 확대에 치중하여 인간성이라든가 질의 향상문제를 아무래도 경시해 왔다는 반성이 전통산업의 가치재고로 이같은 정책이 나왔던 것이다.
미테랑정부의 구체적지원
이런 구체적인 비젼은 엉뚱하게 1981년 등장한 좌익연합의 미테랑 정권에 의해서 실현됐다.
미테랑정권은 특히 패션 비지니스에 대해서 일련의 보다 구체적인 지원책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82년초 루블궁 광장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프레타 포르테의 합동쑈가 바로 그것.
이 시기에 루블 궁의 일각에 모드 예술 미술관 Musee des Arts de la Mode와 레 아르 지구에 고도의 연수코스와 자료센타를 구비한 모드관 Maison Mode가 창설됐으며, 레아르 지구에 고도의 연수 코스와 자료 센터를 구비한 모드관 Maison de la Mode가 만들어졌다.
패션산업의 스폰서이자 파트너인 섬유 의류 산업에 대해서도 심각한 불황타개 지원책으로서 「플랜 텍스틸」도 내놓았다.
오뜨꾸뛰르 컬렉션에도 최근 미테랑 정권의 각료 부인들이 자주 모습을 보이게 되면서, 노동자의 대표인 사회당 각료의 부인들이 오뜨꾸뛰르 고객이 되고 있다는 주위의 맹비난도 있었지만, 패션비지니스의 대한 프랑스 정부의 열의를 나타내는데는 대대적인 효과가 있었다.
프랑스 정부의 이런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80년대 중반에는 파리 패션계가 일시적인 위기의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전에로의 비약이 시작된 것이다.
구심점을 찾아서…
한편, 일본의 도쿄패션디자이너 협의회의 역시, 32명의 디자이너들이 응집하여, 재미있는 도쿄를 만들자는 취지하에 설립되었다. 쇼를 단기간적으로 집중시켜 사람을 모으자는 것이 그 구체책의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CFD가 발족된 전후에 DC붐이 일어나고 전일본 속의 젊은이들이 디자이너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폭증한것도 순풍의 역할을 했다.
프랑스 패션의 경우는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섬유와 패션을 대대적으로 지원한 것에 기인하고, 일본의 경우는 언뜻 자생적으로 보이지만, 기업의 자금과 연계되어 전세계로 확산되어 나갔다는 차이점이 있다.
물론, 일본 CFD도 지금 난항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막강한 소비력을 바탕으로 전세계의 패션을 장악하고 있다.
이것은 대의를 위해서는 뭔가 거대한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것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에서의 파워게임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행착오는 더이상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이제 진정 모두가 패션을 21세기 미래산업으로서 가치를 인정한다면, 이제는 보다 체계화되고, 강력한 파워로 모래알 집단을 하나의 목표로 응집시킬 수 있는 힘의 구도부터 하루빨리 정비되어야 할 때라는 것에 대세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유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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