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네 같은 유순한 산길에 매료광활한 산상초원서 만끽하는 여름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이 만들어지면서 숲이 망가지고, 개발의 손길이 뻗치고 있지만 그래도 점봉산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는 숲이다.
한계령을 가운데 두고 설악산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모양새는 영 딴판이다.
깎아지른 암봉으로 마치 금관을 씌워놓은 듯이 빛나는 설악산에 비한다면, 점봉산은 색바랜 검정치마처럼 수수하기만 하다.
그러나 속깊은 산골 아낙네처럼 세속의 그 모든 번잡함을 한 순간에 끊어내는 깊고 깊은 품을 느낄수 있는 곳이다.
점봉산으로 드는 순간,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와 자연이 분출하는 생명감에 왈칵 정착해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것도 이런 하염없는 매력때문일 것이다.
기린면 방동리에서 8㎞ 쯤을 덜컹이며 한참을 들어가다 보면, 소가 바람에 날아갔다는 ‘쇠나드리’에 닿는다.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점봉산의 깊은 속내를 느끼기에 충분하지만 어렵게 찾아온 곳인 만큼 분출하는 자연의 깊은 맛을 느끼려면 ‘곰배령’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늘카페에서 왼쪽으로 강선골로 가는 길은 오지마을과 숲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갈림길에서 차도 들어갈 수 없는 오솔길로 20분쯤 가면 강선골 마을에 닿는다. 곰취나 더덕 같은 산나물로 살아가는 산골 사람의 순박한 삶을 엿보면서 들어가는 산길은 숲이 제 홀로 깊어지고 좁아지는 것이 마치 생과 멸의 끝없는 순환의 고리를 이어가는 모습같다.
연초록 나뭇잎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냄새, 하얀 바위를 감싸도는 맑은 물,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
야생화의 명소인 곰배령과 길조차 없는 계곡, 과거에는 꼭꼭 숨어있는 오지였지만 이제는 살아있는 생태계를 사람들에게 자연의 전시장으로 넉넉한 마음을 열어주고 있다.
설피마을에서 시작하는 곰배령 계곡길은 한나절 트레킹으로 알맞은 곳이며, 초여름의 신록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산행코스다.
산세도 완만하고 구간도 짧아 유순하기 짝이없다. 계곡의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녹음이 짙은 계곡을 걷다보면 선경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산행의 마지막 고비를 가파르게 넘으면 곰배령 고갯마루에 펼쳐지는 광활한 山上(산상)초원에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정상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이다. 완전히 탁트인 동산이다. 가슴이 터질 듯 시원한 여름이다.
/유수연 기자 [email protected]
<※이 코스는 휴식년제임으로 산행시 인제군의 사전승인이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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