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생들은 일백미터 경주대신, 일백미터 달리기를 한다. 선생들은 아이들 모두가 동시에 골인할 수 있도록, 수준이 맞는 애들끼리 조를 짜야 하며. 당연하지만, 운동회에서 1등에게 주는 상품도 사라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상처받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기 위한 교육방침의 배려에서 나왔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성적표에 순위가 나오지 않고 아이의 장점과 특기만 기록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궂이 숫자적으로 점수를 먹이면서 애들을 첨부터 기를 죽일 필요가 없다는 일종의 정책적인 배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어떤 경주에서 이긴 아이들이 상품을 독점함으로써 패배한 아이들에게 어떤 열등감과 상처를 주면 불공평하다는 말은 동정심과 경쟁의 차원을 혼돈하는 변질된 논리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를 반증하듯, 최근 일본의 청소년 연구소등이 일본 미국 한국 4개국의 고교생을 대상으로 작년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실시한 조사 결과가 흥미를 끌고 있다.
“훌륭해 지고 싶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중국의 학생의 34%, 한국 23%, 미국 22%, 일본 8%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다소 지루해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대답한 사람이 일본 43%, 한국 22% 중국 18%, 미국 14%였다.
어렸을적 대표적인 꿈인 박사 아니면 장관,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학생들도 사라졌다.
대신, 개그맨과 연예인, 그리고 수퍼모델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미국의 교육학자인 클라크 박사가 남긴 유명한 어록인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의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섬유패션업계에서도 섬유공학과는 거의 사라지고, 가정학과, 의류학과가 사라지면서 패션디자인학과와 뷰티학과로 이름이 바뀌고 있다.
학과의 이름이 바뀌는 것은 시류에 따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학문의 박사가 되고 전문가가 되어 업적을 남기는 것보다 스타일과 이미지에만 집중하며 살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현실도피적이다.
남이 가지 않은 길에 도전하는 젊은이가 줄고 있다는 것은 가슴설레는 희망이 그만큼 줄고 있는 것이 아닐지 우려가 더 큰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