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 위기와 우리의 대응
미국발 금융 위기와 우리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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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급진단 | 서상목 인제대학교 석좌교수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
작년 초부터 연기를 뿜어내던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부실문제가 드디어 대폭발했다. 미국 재무부가 양대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해 2천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이 인수 또는 도산되거나 그 형태가 상업은행으로 전환되는 일이 단기간에 발생하였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금융기관의 부실자산 매입에 7천억 달러를 투입하고, 국채발행 한도를 11조 3천억 달러로 늘리는 안을 만들어 우여곡절 끝에 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진정되기는커녕 오히려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 되었다. 미국과 주요 선진국은 물론 중국, 한국 등 신흥개발도상국들 모두에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곤두박질을 쳤고, 주요 금융기관들은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으며, 주요 기업은 물론 미국의 주정부마저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부실문제가 전세계 금융위기로 확산된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EU 등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이 공동으로 금리를 인하하였고, G7재무장관 모임에 이어 G20회담도 개최되었다. 또한, IMF는 신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공공부문에서 약 2조 달러의 지출이 필요하다고 진단하면서, 파키스탄, 아이슬란드 등 국가부도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 긴급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 13일에는 미국, 일본 및 유럽 중앙은행들이 금융회사에 달러 자금을 ‘무제한’ 공급할 것이라고 발표하였고, 각국 정부들은 대규모 구제금융안을 잇따라 마련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금융시장이 다소 진정국면으로 진입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위기해결의 선두주자는 미국이 아닌 영국이었다. 현대 금융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은 정부가 은행에 돈을 대주는 대신 주식을 사들이는 방법을 제시하여 현 위기해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위기대책 마련의 주역인 사회당 출신 브라운 영국 총리는 ‘금융위기의 해결사’로 부상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초기에 리먼브러더스 등 일부 금융기관을 구제대상에서 제외하였고 긴급지원법안도 처음에는 하원에서 집권당인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로 부결됨으로써 시장불안을 가중시켰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위기 대응을 하는 방법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미국에서 주식 대폭락사태가 일어난 1929년 ‘검은 화요일’ 당시 위기 발생 후 3년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해 위기가 대공황으로 확산되었고 세계경제가 이로부터 벗어나는데 15년이나 걸렸지만, 지금의 위기는 세계주요국가들이 신속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국제적 공조도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금융위기가 대공황으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낙관은 금물이다. 우선, 각국 정부가 금융기관에 대해 ‘무조건적’ 보호를 하는 최후의 수단을 꺼냈다는 사실 자체가 현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증거이다. 또한, 초강수의 처방으로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하더라도 위기상황이 종료된 것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이번 사태의 근원인 최근의 미국 주택시장의 침체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으며, 주택가격은 앞으로 15%정도 더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럴 경우, 많은 금융기관들이 추가로 위기를 맞을 것이며 금융시장의 불안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있는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를 더욱 악화시켜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위상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최근의 사태는 국제수지 적자를 겪고 있는 많은 국가들에게 외환관리상의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고 이들 국가들 상당수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위기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에 더해, 주식과 부동산 가격의 급락은 소비 침체와 투자 부진을 가져와 위기 발생 이전에 이미 하락국면으로 진입한 선진국 경제가 심각한 경기하락의 길을 가게됨을 물론 회복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IMF는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경기는 잘해야 내년 말부터 회복될 수 있을 것이며, 회복의 속도 역시 매우 완만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파급효과와 우리의 대응
미국의 투자은행이 몰락한 것은 상업은행에 비해 정부의 감시가 느슨한 틈을 이용하여 레버리지를 통한 신용의 창출과 파생상품을 기반으로 하여 막대한 이익을 올리려 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정치인들은 상환능력이 취약한 가계에게도 대출을 해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었고, 관련 금융기관들은 주택대출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금융상품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10배의 새로운 금융을 일으켰다.


주택가격의 거의 100%까지 담보대출을 해 준 서브프라임모기지가 주택가격의 하락으로 어려움에 봉착하자, 이를 기반으로 금융을 일으킨 투자금융회사 모두가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국제결제은행에 의하면 금년 초 기준으로 파생금융상품의 규모는 전 세계 GDP 10배에 달하는 600조 달러에 이른다. 그 결과, 국제금융거래규모는 무역거래규모의 50배가 넘으며, 금융분야 CEO의 보수는 제조업 CEO 보수의 수십 배에 이르게 되었다. 현대 금융이 실물경제 수준을 훨씬 넘어 자신만의 게임에 몰두하였던 것이다. 결국, 실물을 떠난 금융시장은 시장원리에 의해 무너져버린 것이다. 따라서 작금의 금융위기는 시장의 실패라기 보다는 오히려 시장을 악용한 일부 금융 전문가들의 탐욕과 이를 방치한 금융통화당국의 무능력에 대한 시장의 보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대공황이 1차 산업혁명과 자유무역의 확대로 인한 1차 세계화에 찬물을 끼얹던 것과 같이, 최근의 금융위기는 정보화 혁명과 금융의 세계화에 힘입어 지난 15년간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던 세계 경제 기관차에 급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대공황으로 케인즈 경제학으로 요약되는 정부 개입주의가 급부상한 것과 같이, 현 위기의 수습과정에서도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보수주의(미국의 부시 공화당 정부)는 공격의 대상이 되는 반면,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진보주의(영국의 브라운 노동당 정부)는 새롭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


경제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로 지적되는 현 사태는 세계경제는 물론 한국경제에도 많은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는, 미국의 부실채권을 보유한 한국 금융기관의 부실화이다. 그러나 다행히 이 문제는 미국 등 주요 선진국 정부의 신속한 개입에 의해 감당할 수준에 그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는, 외국투자가들의 한국시장 기피현상이다. 이는 이미 발생하고 있는 사안으로 국내금리를 상승시키고 원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야기하여 왔다. 외국 금융기관과 투자가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한 정부차원의 특단의 대책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셋째로, 신용경색이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외화자금의 조달이 어려워지고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다. 이 역시 현재 진행되고 있으며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미국, 일본, 중국 등과의 국제공조를 포함한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현재의 금융위기는 전세계적 경기둔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경제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내수경기를 진작하는 등의 보완대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끝으로, 투자은행의 몰락을 계기로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대전환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제금융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이에 걸맞은 방향으로 새로운 금융시스템 구축을 포함한 주요 정책과제에 대한 전면적인 재점검 작업도 병행시켜야 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 한국경제가 당면한 과제는 매우 어렵고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면 많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정부는 최근의 사태에 대해 지나친 낙관론으로 일관하여 왔으며, 대응방안 마련에 있어서도 사전예방보다는 사후수습에 급급하였다. 이에 더해, 경제사령탑의 부재로 해당 부서 간 긴밀한 공조체제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위기수습의 중심에 있는 기획재정부 장관은 몇 달 동안 외환보유고를 활용해서라도 환율을 잡겠다고 공언하였으나, 실제로 환율은 주요국가의 통화 중 가장 높은 작년 말 대비 30%이상의 급등세를 보임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심각한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국내금융의 총책임자인 금융위원장의 역할은 눈에 띄지 않고 있으며, 한국은행 역시 아직도 물가불안을 염려하여 금리인하와 국내유동성 확대에 대해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전문가 출신인 국무총리의 얼굴은 보이지 않은 반면, 금융이나 거시경제정책 분야의 문외한인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한 마디로,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불길이 한국으로 번지고 있는데 우리 소방관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어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현재의 위기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된다는 전제 하에 효율적 위기관리 시스템을 확립함과 동시에,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정도로 급변하는 세계경제상황에 걸맞은 방향으로 경제정책의 틀을 새롭게 재정립하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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