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직물업계는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화섬업계는 그야말로 한파 그 자체였다.
6월 이후 난기류 조짐을 보이더니 갈수록 심해져 시간이 갈수록 한파는 꼬리를 물고 연말까지 집요할 만큼 화섬업계를 괴롭혔다. 화섬업계는 올 상반기 역시 뚜렷한 회복세를 보여줄 만한 움직임이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있다.
콩값은 뛰는데 두부값은 오히려 하락조짐을 보여온데다 공급량이 크게 줄어들어온 터여서 올 상반기 이러한 난기류가 제자리를 잡을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화섬업계는 국내 수요든 수출 수요든 중국의 대량 생산설비 증설과 가동 흐름에 촉각을 곤두 세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섬유경기가 살아난다 하더라도 중국의 양적 팽창에 따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중동용 블랙(이란은 제외)과 화이트직물, ITY싱글스판 니트 및 복합니트류, 폴리에스터 강연 감량직물 등 국내 대표 수출 품목들이 2~3월경부터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터여서 화섬업계는 한 가닥 희망이 남아있다.
그러나 중국의 PTA 대량 증설이 올해도 확실시 되고 있는데다 화섬사까지 가격으로 밀어 부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국내 화섬업계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화섬원료
PTA 증설로 PX 가격은 상승한 반면 PTA 업계는 원사 상승과 판매부진으로 2중고를 겪었다. 고순도 테레프탈산(PTA)과 원재료인 파라자일렌(PX)의 희비가 교차한 한 해였다.
중국 동곤 집단과 항력집단이 PTA 신 증설을 다투어온 과정에서 원료인 PX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하면서 PX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 때문에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PX 제조사들의 대규모 신 증설이 이뤄졌다. 그러나 PTA는 PX 가격 인상과 화섬사 경기침체로 오히려 참혹한 한 해를 보내야 했다. 삼성석화, 삼남석화, 태광산업, 케이피케미칼, SK유화, 효성 등 PTA생산업체들은 채산성 악화를 견디다 못해 공장가동 중단과 감산을 여러 차례 단행하기도 했다.
삼남석화는 지난해 11월 전체 캐퍼(180만t)대비 20%에 달하는 30만t의 공장 가동을 한시적으로 중단했으며 태광산업과 케이피케미칼 역시 같은 시기에 월4~5000톤의 감산에 들어가거나 가동을 중단했다. 이에 앞서 3월에도 삼성석화와 삼남석화는 최소 1주일에서 한 달간 가동을 중단한 바 있다. 섬유경기 침체에다 중국이 PTA생산을 큰 폭으로 증산한데 따른 후유증으로 풀이되고 있다.
중국의 동곤 집단과 항력 석화는 지난해 9월 말 각각 150만 톤과 220만 톤 규모의 증설을 단행해 연간 생산능력이 2528만t에 이르렀다. 한국화섬협회는 중국의 지난해 말 PTA 총 생산량이 3158만 톤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도 증설은 이어질 것이 확실한 가운데 지난해보다 40% 이상 증가한 4500만t에 이를 것으로 화섬협회는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생산량은 연간 700만 톤으로 중국 생산 케퍼 대비 22%에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화섬사들은 섬유경기 불황으로 지난해 20% 감산에 들어간데 이어 신년에도 추가 감산을 예고하고 있다. 인도계 IPK는 12월 현재 2500톤의 원사 재고를 안고 있어 거의 기진맥진이라는 한 화섬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코오롱, 대한화섬, TK케미칼 등 화섬사는 지난해 6월 이후 손익 분기점을 위협받는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화섬업체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화섬사를 팔수록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 났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올 상반기중 화섬직물 수출이 고개를 들 것으로 전망돼 정상가동과 가격회복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열어놓고 있다.
나일론의 경우, 원료인 카프로락탐은 벤젠 가격 상승으로 인해 완만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나일론의 생산이 증가한데 따른 것이 아니라 중국의 소비 증가와 벤젠 원료인 페놀이 증설로 이어지고 있는데 따른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올해 싱가폴 상춘에 연산 54만 톤의 페놀 생산라인이 가동될 예정인데다 국내 LG화학도 대산 공장에 45만 톤의 페놀 증설계획을 세워놓고 있어 30만 톤의 추가 벤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페놀 생산증가에 따른 벤젠 수급이 타이트해지면서 가격상승 요인을 부추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결국 나일론 사 가격이 상승세를 탈것이라는데 이견은 없어 보이지만 수요시장의 물량 흐름에 따라 매우 유동적일 가능성이 높게 나타날 전망이다.
◆화섬원사
지난해 9월 이후 연말까지 가격 횡보 흐름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한 해 화섬업계는 일제히 20~25% 감산에 들어가는 등 극심한 물량감소와 채산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원료가격은 8월부터 다시 인상 추세로 돌아섰으나 화섬 메이커들은 원료가 상승 분을 원가에 반영하지 못한 채 오히려 감산이라는 결론으로 흘러 버렸다. 제값을 받지 못해 채산성에 적색등이 켜지자 생산량을 줄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은 셈이다.
경기 부진에 따른 국내 다운스트림 수요 감소로 인해 화섬업체들 재고는 평년 대비 50%나 증가, 감산이라는 고육책에도 불구하고 연말에는 6만2000톤 수준까지 올라갔다. 활황이던 2011년 말~2012년 초까지 이어지던 설비 증설은 결론적으로 무용지물이 됐다.
과거에는 불황이라해도 잘되는 아이템들은 오히려 두각을 나타냈었다. 그러나 지난해는 레귤러 원사는 물론 차별화 원사도 매출 부진에 시달려야만 했다. 업계에 따르면 kg당 2600원 이던 연사물은 12월 들어 2000원선에서 1800원까지 하락했다. 안감재 레귤러 원사도 야드당 600~700원이던 것이 연말에는 야드당 300원까지 내려가 반 토막이 났다.
특히 차별화 원사는 해외 바이어들의 고가존 기획량이 줄어듦에 따라 수요가 급감, 업체들은 ‘어떻게 싸게 만드느냐’는 화두에 매달려야 했다. 올해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의 작년 11월 ‘섬유패션산업 스트림별 기업경기 조사’에 따르면 화섬 BSI 지수는 올 상반기 43.8, 하반기 68.8이었다. 열명 중 6~8명은 올해도 경기가 부진할 것이라고 응답한 셈이다.
작년 한 해 화섬메이커들을 압박했던 생산원가 상승률은 올해도 가파른 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업체 관계자는 “해마다 에너지 가격 상승폭이 커지고 있어 올해는 전력 사정도 제약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난으로 인해 자가 발전량이 늘고 있는데 이는 원가 상승으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 화섬 메이커 관계자는 “과거 순수 에너지 원가 상승폭은 연간 20~30억 원 수준이었으나 작년에는 무려 180억 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에는 원료 절감 노력으로 커버할 수 있었지만 이미 이 수준을 넘어버렸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여기에 가파르게 오르는 비 정규직 급여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부담도 업체들 채산성을 위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올해 화섬 경기가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비관적이기는 하나 미국 경기를 판단하는 바로 미터인 소비자 지수가 서서히 호전되고 있어 기대를 걸고 있다. 특히 작년 한 해 불황에 크게 위축된 바이어들은 오더 발주량을 대폭 줄여 최소한의 물량만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시즌이 넘어가면 자연발생적으로 물량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업체 관계자는 이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근본적으로 수요와 수급 회복은 필수지만 작년 11, 12월 보다는 올 1월이 더 나을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올 1분기 중 국내 대표 직물 군들이 반등할 것이란 전망을 속속 내놓고 있어 화섬업계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러한 전망이 현실로 다가올 경우 화섬업계는 물량과 공급가격에서 점차 안정세로 돌아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셈이다.
차별화 원사의 경우 작년 여름 각광받았던 쿨 비즈의 영향이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절약 추세에 발맞춰 올 여름에도 흡한속건, 냉감, UV 차단 등 기능성 원사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부상하고있는 중국도 시진핑 시대를 맞아 내수 부양 정책을 강행할 것으로 보여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신 지도부는 내수 진작과 빈부·소득격차 해소를 위해 유동성을 강화함에 따라 수요가 확대될 전망이다. 다만, 중국 화섬업체들은 자국 수요를 충분히 충당할 만큼 증설을 해와 가격 경쟁이 벌어질 경우 우리업체들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안 그래도 수급이 불안한데 중국 업체들의 지나친 증설 때문에 경쟁이 심화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터키 FTA도 긍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세이프가드(긴급수입관세) 가 풀릴 경우 20%에 이르는 관세가 없어지고 일반 관세(8%)도 5년 내 단계적으로 철폐되는 만큼 우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힘을 얻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로 레귤러, DTY 위주인 터키 시장은 원사 직수출 보다는 국내 직물 업체들의 원단 수출이 늘어나면서 자연히 원사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관 기자 [email protected]
정기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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