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파워 키워 세계 시장 두드린 강소기업談
인천 남동공단에서 섬유기계 및 관련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A사는 업계에서 보기드문 강소기업이다. 직원 11명이 일하는 이 회사는 건평만 700여평에 직원들을 위해 러닝머신과 탁구대, 드럼 같은 건강과 취미를 위한 공간을 꾸몄고 자기 개발을 위한 학원비도 전액 회사에서 대주고 있다. 결혼한 직원에게는 1억원 무이자 주택자금 대출제도 오래전부터 시행해 오고 있다.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플렉시블 출퇴근제를 운영하는데 직원들 출퇴근 시간 갭이 무려 5시간까지 차이가 난다고 하니 진정한 의미의 자율 근무가 정착돼 있는 회사다.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제품 이라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관련 품목에서는 세계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해외에서 이름이 나 있다. 이미 40년 전 처음으로 기계를 개발했던 오스트리아의 원조 회사는 이 회사와의 경쟁에서 밀려 지금은 생산을 포기했다고 하니 그 저력이 실로 놀랍다.
회사 대표에게 영업이익률을 물으니 “세무사가 관리하는 500개 업체 중 우리가 항상 1등이라고 하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는 국내 유명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는 자동화공학을 전공한 고급두뇌다. 원자력발전소에 자동화시스템을 납품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던 그가 섬유기계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다름아닌 현장에 있었다.
“지금의 회사를 만들기 전 동대문 시장에 나가봤더니 할 일이 정말 많더군요. (당시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공정을) 자동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계를 만들었는데 너무나 잘 팔렸습니다.”
그에게는 기술을 개발할 때 몇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로 꼽는 것이 자체 개발이 가능한가이다. “아무리 우수한 인력을 뽑아도 2년을 못가더군요. 지금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춘 사람을 뽑아서 키웁니다. 우리 전 직원 평균 학력이 전문대학교 야간 졸업인데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아요.”
다음은 소비자 니즈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2004년 당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던 일본을 대표하는 모 섬유기계 업체는 딱 10년만인 작년 매출이 1000억원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인력을 대체하는 혁신적 무인 자동화 기계에만 매달리다 보니 시장 흐름을 놓치고 성장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기술 혁신이 모든 것을 대체하지는 못합니다. 기대치와 현실 변화에는 시차가 있고 기술 혁신이 상업화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과거 무인 기계가 사람을 대체할 것으로 많이들 예상했지만 실상은 반대로 갔어요. 중국 인건비가 오르니 동남아로 가고 이제는 아프리카까지 보고 있습니다. 인건비 상승으로 생산 지역이 바뀌면서 과거에 사용하던 낡은 기계들까지 함께 이동하고 있습니다. 혁신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가 꼽는 마지막 필수조건은 소프트웨어와 디자인 기술의 확보다. 영업사원은 1명도 없으면서 패션브랜드도 아닌데 디자이너를 뽑아 관리할만큼 관련 노하우 습득에 심혈을 쏟고 있다. “앞으로는 소프트 파워, 디자인 파워를 키우지 않으면 성장이 어렵다”는 지론이 녹아 있다.
바야흐로 지속가능성장이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기자가 만나는 섬유패션업계 대표들은 종종 묻는다. “앞으로 뭘해야 먹고 살 수 있을까요?” 그에게 똑같이 물었다. “한가지 잣대로만 고민하면 앞이 안보입니다. 과거의 지도로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시대가 왔으니 이제는 내가 지도를 만들며 가야합니다. 반발자국만 앞으로 내딛으면 문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걱정만 하면서 자리에 앉아 있지 말고 동대문시장 같은 현장이라도 나가보세요.”
그는 정부 지원은 자기 지도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배우지 않아서 모르겠다는 사람은 가르쳐도 모릅니다. 필요한 사람은 이미 알고 준비를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야 기업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들이 자기 지도를 개척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멘토를 만들어 주는게 정부의 더 큰 역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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