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지만 답답합니다. 봉제산업 지원을 위해 누구랑 대화를 해야 할지, 시급한 현안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힘들어요. 최소한 대화할 수 있는 상대방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동대문을 왔다 갔다 해봐도 그런 곳이 없어요. 산업 쪽에 정부와 대화할 수 있는 신뢰 있는 창구가 있다면 의지를 갖고 추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중앙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가기 전, 과천청사 시절 이야기다. 당시 기자는 산업통상자원부 섬유세라믹과 담당 공무원과 대화하며 국내 봉제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 지원이 미흡한 점을 지적했다.그 뒤로 수년이 흘렀고 지금은 당시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사회경제 패러다임의 무게중심이 경제민주화 쪽으로 옮겨 가고, 글로벌 경기 불황이 촉발한 극심한 내수 침체가 실업 문제로 번지자 중앙 정부와 각 지자체들은 일자리 창출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국내 섬유패션산업, 특히 봉제산업 일자리 창출 효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봉제 산업에 대한 지원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발한 양상을 띄고 있다.이전까지만 해도 다른 사업 예산에 덤으로 끼워지기 일쑤였던 對봉제 지원은 이제는 어엿한 독자적 사업 이름을 달고 다방면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영세 공장 근무환경을 바꿔주는 서울시 작업환경개선 지원사업, 작업 현장 안전사고를 미리 예방하기 위한 안전보건공단의 클린사업은 이미 5년 넘게 지속되면서 열악한 봉제공장 근무 여건을 바꿔 놓고 있다. 이제는 소공인 또는 봉제지원센터 같은 이름으로 지역별 거점까지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소공인특화지원센터는 전국 60여 곳에 설치돼 공용 장비를 대여하고 기술 개발을 위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활발한 사업 발굴에 나서고 있다. 지자체 차원의 지원도 줄을 잇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마포구가 서울시 지원을 받아 총 100억원을 투입해 ‘서북권 봉제지원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서울시와 마포구가 각각 70억원, 30억원을 마련해 봉제산업 진흥을 위한 인프라를 갖춘다는 내용이다.
이미 서울시를 비롯 강서구, 마포구, 중랑구, 강북구 등 봉제공장이 밀집한 지자체들은 관내 봉제 관련 단체 또는 조합 지원을 위한 예산을 마련하고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장 실정에 맞는 제대로 된 지원이 아쉽다는 반응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추이를 보면 괄목상대할만한 인식과 지원의 변화가 이뤄졌음에 틀림없다.
최근 수년 정부·지자체 봉제산업 지원 봇물
일자리 창출 효과 긍정적 인식 확산
관련 산업 ‘단체·조합’만 우후죽순 난립
이전투구 양상 심화 오히려 걸림돌 작용
업계 스스로 자정 시스템 작동해야
그렇다면 이제 결실의 공은 산업 사이트에서 맺어야 할 차례가 됐다. 며칠 전 기자는 서울시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은 이렇다.“동대문에서 활동하던 OOO봉제조합 OOO회장의 연락처를 알고 싶습니다. 이 곳이 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개인 휴대폰이나 사무실 어느 곳도 연락이 되지 않네요. 혹시 만나게 되면 연락 바란다는 말씀이라도 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단체는 서울시에 등록이 돼 있는데 수년째 아무런 활동이 없자 서울시가 직접 실태 파악에 나선 것이다. 이 곳 설립 과정과 배경을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그리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문제는 대외 지원이 크게 늘어나면서 ‘비 온 뒤 죽순 자라듯’ 단 기간 내에 설립된 수십 개 봉제 단체 및 조합들이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며 오히려 산업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서울만해도 봉제관련 조합은 파악된 곳만 이미 20여 개에 달한다. 심지어 1개 구에 2~3개의 동일업종 조합이 설립되면서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 협의체라는 이름을 달고 같은 사업으로 ‘한 지붕 세 가족’ 생활을 하는 곳도 있다.이들 조직의 장 중에는 개인적으로 음식점을 하는 사람도 있고 정치에 발을 담그며 관변 단체장 행세를 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또 다른 모 단체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지역 회원들이 유치한 사업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어깃장을 놓는 행태도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자 상대방을 음해하는 투서나 ‘카더라’ 식의 사건 제보도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나오는 물줄기는 하나인데 받아 먹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서로 자기 입을 대겠다고 상대방을 짓밟고 올라서야 되겠는가.
서울시가 등록 단체들의 활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이제 막 봇물이 터지기 시작하는 봉제산업 지원의 기조를 등에 업고,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을 보이며 눈앞의 이익을 탐하다 집안 살림 밑천 씨암탉 마저 잡아 먹는 우가 범해질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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