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상반기 처참한 성적표
상장기업 절반이 영업적자
실효성 떨어지는 정부지원
곳곳에서 돈맥경화 부작용
정책당국의 세심한 배려 필요
예상했지만 실제 지표로 나타난 섬유패션 상장기업의 상반기 실적은 처참했다.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절반으로 뚝 떨어졌고 무려 31곳(45%)이 적자를 냈다. 한집 건너 한집 꼴로 물건을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한계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흑자 전환된 곳은 단 두 곳에 불과했고 흑자가 났더라도 태반은 50% 이상이 줄었다.
코로나가 할퀴고 간 상흔은 대기업도 비켜가지 못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적자액은 300억원이 넘었다. 업계 부동의 1위 기업 효성티앤씨과 우량 수출 벤더 한세실업의 영업이익은 각각 52.7%, 84.6% 줄었다.
기업들은 일찌감치 상반기 장사는 포기하고 하반기를 기약했지만 8월들어 코로나 2차 대유행 조짐이 보이면서 그마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수년간 이어진 내수 불황에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선방하던 기업들이 코로나 한방에 나가떨어진 형국이다.
기업들은 패닉 직전의 상황에 놓였다. 영업이익으로 은행 대출 이자도 못 내는 한계기업 수준까지 몰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당장의 현상이 아니다. 지속적이고 막대한 영업적자는 기업의 건전한 펀더멘탈을 붕괴시키고 산업내 비효율을 야기하는 치명적 타격을 입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한계기업이 우리나라 제조업 노동생산성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18년 사이 섬유업종(의복 외 섬유제품)의 한계기업 비중은 14.8%에 달했다. 6년전과 비교하면 7.2% 포인트나 상승했다.
이에 따르면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은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한계기업이 퇴출되지 않고 좀비기업으로 연명하면 생산성이 낮은 기업에서 높은 기업으로의 물적, 인적 자원 이동을 제약해 정상기업의 노동생산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또다른 마이너스 요인은 신생기업의 더딘 진입이다. 한계기업은 생산성 대비 임금이 높고 생산하는 제품 가격이 시장 적정가격보다 낮은 특징을 지닌다고 한국은행은 분석했다. 이는 시장 평균 임금을 높이고 제품 단가를 낮춰 신생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는데 장애물로 작용한다. 한계기업의 증가는 시장에 장기적이고 치명적인 구조적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계기업은 무조건 청산해야 할 문제인가. 고토 야스오(Goto, Yasuo)와 윌버 스콧(Wilbur, Scott)의 2019년 공동연구(Unfinished business: Zombie firms among SME in Japan’s lost decades)에 따르면 좀비기업은 산업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되지만 이들 기업을 일률적으로 퇴출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 오히려 좀비기업 문제는 재활(revival)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이에 선행해 좀비기업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선제적 차단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경제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가 날로 심해지면서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을 허물어가고 있다. ‘경제 민주화’라는 명분 아래 정부 지원 효과는 반감되고 필요한 곳에 돈이 흐르지 않는 소위 ‘돈맥경화’ 현상이 곳곳에서 트러블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3000조원이 넘는 유동성을 시중에 풀고 있지만 이 돈이 선순환의 실물경제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예방보다 더 좋은 치료는 없다. 그러나 예방 단계가 지나갔다면 늦더라도 제대로 된 약방문을 써야 병이 나을 수 있다. 한계 상황에 몰린 섬유패션기업을 살리기 위한 골든 타임은 아직 남아 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되지 않으려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몸 뿐 아니라 마음까지 돌보는 심의(心醫)의 자세로 우리 기업들의 아픈 곳을 꼼꼼히 보살피는 혜량(惠諒)을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