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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이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지금 다가올 새 천
년을 기대하는 者의 관심은 유별나다. 시내 곳곳에 마
련된 전광판의 카운트다운 숫자가 하나씩 줄어 들 때마
다 흥분과 설레임으로 들뜬다.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꿈꾸는 者의 모습이다.
그러나 “새 천년이 온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
냐”며 그 의미를 평가절하 하는 비판론자의 시각도 만
만찮다. 새 천년은 日常의 연속이라는 의미이고 크게
변화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편찮은 심기도 마다 않는
다.
그렇다면 새 천년을 코앞에 둔 섬유업계는 어떤 모습일
까. 긍정과 기대, 희망보다는“이대로는 안된다”는 의
식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새 천년을 맞기
전에 버려야 할 것과 개선의 여지도 많다는 의미로 해
석된다.
새 천년을 앞두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채색하는
섬유인이 많다는 것은 단적으로 섬유산업의 근본이 흔
들리고 있다는 것을 直視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도 환부에 대한 치료나 대책은 없다. 이는 우리 섬유산
업이 세기말적 현상인 空洞化·漏水化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음을 입증하는 셈이다 .
새 천년을 앞두고 기대나 희망도 없이 무계획적으로 맞
겠다는 것은 우리 섬유업계의 큰 불행이다. 섬유업계가
2,000년 한국 산업계를 대표하는 업종으로 거듭나는 것
은 다름 아니다. 잘못된 것은 고치고 또 더 나은 경쟁
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섬유인들의 지혜를 모으는 길
뿐이다.
그렇다면 새 천년을 앞두고 섬유업계가 개선하고 버릴
것은 과연 무엇인가. 섬유산업은 업·미들·다운 스트
림의 역할이 다른 엄격한 구조로 짜여 있다. 이는 스트
림간 협력체제가 완벽해야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相扶相助·相生을 토대가 된 공감대가 섬
유산업의 근간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같은 의미서 섬유업계를 摘示하면 한심 그 자체다.
共助를 바탕으로 한 相生은 커녕 각 스트림만 살겠다는
의식만 팽배하다. 스트림간 삐걱대는 섬유산업 구조서
온전한 경쟁력 발휘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語不成說이
다. 그리고 제 밥그릇보다 남의 밥그릇이 더 크게 보이
는 곁눈질 근성은 섬유산업의 경쟁력을 송두리째 망가
뜨리고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연초 원사·직물업계는 동시
에 相生을 도모하자는 대승적인 뜻을 폈다. 원사·직물
을 축으로 하는 우리 섬유산업 구조서 양 업계가 相生
의 당위성에 목소리를 높인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으나
이를 보란 듯이 실현했다.
그러나 지금 양 업계의 相生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
오히려 相生을 외치기 전보다 더 못한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직물업계가 원사업계에 대한 원성을 갈수록 증폭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원사업계가 相生의 道를
깼다는 직물업계의 판단을 불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큰 이유다.
직물업계는 원사업계의 원사가 인상과 관련 직물업계를
농락했다고 여기고 있다. 원사가 인상을 앞두고 가수요
를 촉발시켜 재고를 소진하는 행위는 물론 범용·대중
품목은 채산성이 없다며 생산을 기피하는 등 있을 수
없는 짓만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직물업계는 국내 화섬업체들은 대만 지진사태와
관련 원사부족 사태가 예상된다며 가격인상에 나서는
苛斂誅求한 행위를 서슴치 않았고 이를 곧이 믿은 업체
만 손실을 자초케 했다는 아우성도 빗발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대만 화섬업계는 원사가격을 내리고 있는
판에 또 가격인상에 나서는 화섬업계의 몰염치성에 식
상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국내 원사업체가 원사가 인
상 명분으로 내세우는 원료가 인상도 한국이든 대만이
든 동등한 상황인데도 왜 국내 원사업체들만 인상을 요
구하는 지 도대체 납득이 안된다며 강변하고 있다.
직물업계는 국내 원사업체들의 행위는 다운스트림 산업
을 볼모로 한 극단적인 이기주의 경향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고 이는 원사·직물업계의 相滅을 앞당기는 극악한
추태라는 것을 서슴치 않고 말한다.
직물업계가 격분하는 이유는 또 있다. 국내 화섬업체들
의 수요업체에 대한 A/S 실종이다. 잘 팔리는 원사만
생산하고 채산성 없는 원사의 생산 기피현상이다. 직
물·원사업계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은 익히 알면서도
이를 외면하는 원사업계의 행위는 섬유산업의 기반을
뒤흔드는 것이라고 목청을 돋구고 있다.
그렇다고 자기 주장만 펼치는 직물업계는 제 정신인가.
한마디로 직물업계의 어긋난 상도의 역시 원사업계 빰
치는 수준이다. 잘되는 품목만 있으면 카피를 일삼고
시장을 망치는 거지같은 근성만 앞세운다. 남 잘되는
것 배아파하는 것이 지금껏 직물업계가 보여온 속성이
다. 이래서는 우수한 인력이 섬유산업을 찾지 않는다.
새 천년을 맞더라도 섬유업계가 이같은 풍조로 일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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