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위한 내의” 한영대 BYC 회장 타계
“국민을 위한 내의” 한영대 BYC 회장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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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 열악한 국내 상황에 국민 위생에 힘써
백양 브랜드 수출하며 BYC 브랜드 세계에 각인
한영대 회장
광복 직후 국민 보건에 이바지하겠다는 신념으로 내의를 만들었던 국내 내의 회사 BYC의 창업주 한영대 회장이 지난 16일 별세했다. 향년 100세. 한 회장은 1923년 전북 정읍에서 5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포목점 점원을 시작으로 자전거포, 미싱조립 상점 등을 운영하며 사업에 뛰어들었다. 광복 직후 1946년 ‘한흥메리야스’를 설립하며 내의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연간 내의 생산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국민 37.6명당 내의 1매 꼴로 보급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한 회장은 국민들이 추위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지 않도록 메리야스 내의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한 회장은 양말 편직기의 몸통을 키우면 내의를 생산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후 5개월 만에 국산 1호 메리야스 편직기를 개발했다. 기계에 맞는 바늘이 없어 직접 숫돌에 양말 편직기의 바늘을 갈아 끼우는 등 시행착오를 통해 내의 편직기의 생산성을 높였다. 사업이 어려운 6.25전쟁 발발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운영자금으로 다량의 원사를 구입해 미리 보관하고 전주로 사업장을 옮기는 등 미래를 대비했다. 국내 최초로 아염산소다를 활용한 표백기술을 개발해 ‘백양(白羊)’ 상표를 출시했으며 속옷 사이즈를 4단계(85·90·95·100cm)로 나누는 등 제품 규격화와 표준화를 정착시켰다. 한 회장이 내의 사업에서 가장 강조했던 원칙은 ‘속옷 외길’, ‘품질 제일주의’ 정신이었다. 이는 곧 기업의 경영 방침이 됐으며 BYC는 국내 대표 브랜드 이미지를 갖게 됐다. OEM(주문자 상표 부착) 사업 방식을 유지하는 대신 백양의 독자적인 브랜드를 앞세워 수출하며 해외에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세계 78개국에 8000만달러 규모의 메리야스를 수출했다.  백양이 BYC라는 이름으로 각인된 배경이다. BYC의 인기와 인지도에 한회장은 1996년 사명을 백양에서 주식회사 비와이씨로 변경했다. 한 회장은 1985년 경기도 평택시에 평택동중학교와 평택동고등학교을 한영학원으로 명의를 변경하는 동시에 이사장으로 취임해 학생들의 교육에도 힘썼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7억원을 투자하며 국가 인재 양성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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