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정부지원 스마트 의류·i패션
4차산업혁명·메타패션으로 명칭만 바꿔
시도 내용 및 결과는 열매 못 맺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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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콘텐츠는 시장 창출 돕는 도구
기술 융합에 맞는 새 비즈니스 창출돼야
오늘날 4차 산업혁명 시대, 흔히들 융합의 시대라고 한다. 섬유패션 산업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0년대 초부터 ‘섬유패션-IT 융합’이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년 전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으로 시작한 것이 ‘스마트 의류’, ‘i-Fashion’ 같은 것들이다.
2004년 시작된 ‘미래 일상생활용 스마트 의류 기술 개발’ 사업은 5년간 총사업비 150억 원(산업부 75억 원)이 투입됐고, 대기업 2개, 중소기업 11개, 대학·연구기관 8개 등이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또한 필자가 참여해 2006년부터 5년간 지원받은 ‘i-Fashion 의류기술지원센터 구축사업’은 총사업비 73억 원(산업부 50억 원)에 산학연 전문가 50여 명과 국내 유수의 패션 및 유통, IT 업체들이 참여하는 대형 국책사업이었다.
당시 정부 주도 사업들은 선진국들조차도 아직 분명한 개념을 잡거나 성공사례를 가지고 있지 않은 미지의 분야에 대한 혁신적인 도전이었다. 정부 지원으로 당장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난 국책사업들은 많은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연구개발 결과물이나 시범사업들은 세계적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고, 선진국들의 존경심과 함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 섬유패션 산업의 핑크빛 미래를 꿈꾸게 했던 정부 지원의 결과가 아직도 뚜렷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여전히 ‘섬유패션-IT 융합’에 관한 정부의 지원이 ‘4차 산업혁명’이나 ‘디지털 전환’, ‘메타패션’ 등으로 명칭을 바꿔가며 계속되고는 있지만, 시도하는 내용이나 결과는 필자가 보기에 20년 전과 지금이 큰 차이가 없다.
실제 20년 전 뉴스나 지금 뉴스가 거의 내용이 같다. “옷이 똑똑해 졌어요!”, “옷을 3차원 가상으로 입어보세요!” 전시회에서 20년 전 VIP들이 체험했던 가상거울과 지금 체험하는 가상거울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체험을 처음 해 보는 VIP들이야 매번 신기하겠지만, 전문가들이 볼 때 이제는 새롭지도 않다. 이런 소식들은 뉴스에만 있을 뿐 실제 이런 옷을 사서 입고 다니는 소비자들은 여전히 거의 없다. ‘섬유패션-IT 융합’은 아직도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을 기술집약적인 산업의 글로벌 리더로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
직접 이들 사업을 수행한 필자로서는 가장 큰 이유를 ‘인식의 오류’라고 지적하고 싶다. 우선 ‘섬유패션-IT 융합’의 산출물이 섬유패션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이상, 관련 소프트웨어나 디지털 콘텐츠 산업 등은 발전할 수 있을지언정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은 한 걸음도 진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적인 수준의 국산 3차원 가상착용 소프트웨어나 시스템들은 있지만 여전히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은 일류가 아니다. 소프트웨어나 디지털 콘텐츠 등은 새로운 섬유패션 제품이나 서비스 시장을 창출하거나 돕는 도구들일 뿐인데도 이를 ‘섬유패션-IT 융합’의 산출물로 인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재봉틀’이란 첨단 기계가 옷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재봉틀’ 업체가 돈을 잘 번다고 치자. 이게 섬유패션 산업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재봉틀’이란 기술이 나오면 그 재봉틀로 어떤 옷들을 디자인하고, 만들어서 어떻게 브랜딩하고 어떻게 팔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실제 재봉틀의 출현은 옷을 대량으로 생산해서 전 세계에 대량으로 유통시키는 기성복 시대를 열었고, 이런 옷을 시장에 내다 판 글로벌 섬유패션 브랜드 기업들이 오늘날 전 세계 섬유패션 산업을 이끌고 있다. 결국 재봉틀 자체가 아니라 재봉틀로 만든 옷을 잘 팔아야 섬유패션 산업이 발전한다.
한국의 ‘섬유패션-IT 융합’ 기술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제는 그 기술로 기존과는 좀 다른 새로운 섬유패션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팔아야 한다. 재봉틀이 기성복 시대를 열었다면 ‘섬유패션-IT 융합’ 기술은 맞춤주문형 옷, 재고없는 옷, 환경오염이 없는 옷 같은 새로운 개념과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그래야 섬유패션과 IT 산업이 윈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