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자 © 한국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해가 높이 떠도
일어나기 귀찮고
이불 겹쳐 덮으니
추위도 모르겠다.
유애사(遺愛寺)의 종 울리면
벼개 괴어 귀 기울이고
향로봉(香爐峯) 내린 눈은 발을 제치고 바라본다.
이곳 여산(廬山)은
이름 피해 살만한 곳
사마(司馬)벼슬 늙을 녘을
보내기 안 족하랴.
마음과 몸 편안하면
내 살 곳이니
어째 고향이
장안(서울) 뿐이랴.
▲이렇게 자연과 인생을 노래한 사람은 중국의 「백거
이(白居易=772~846」의 초당(草堂)이라는 詩다.
그가 태어난 것은 이태백이 죽은지 10년, 두보(杜甫)가
간지 2년이 되는 해이었는데 선배들 문장가들과는 달리
대중의 호흡과 언어에 접근함으로써 詩의 평이화(平易
化=좀 쉽게)를 이루어 보려했다는 점에서 좀 유별나다.
그는 신분이 낮은 관리의 집안에 태어나서 일찍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그는 낙관론자요 현실주의자로 결코 부귀를 탐내지 않
았으나 착실한 인생을 살며 청렴결백을 지향하는 관리
였다.
71세에 관직을 물러날 때에는 지금의 법무장관에 해당
되는 「형부상서(刑部尙書)」가 되어 있었다.
▲지나치고 과한 것을 바라지 않는 그는 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선비로 「삶」을 즐기며 자연과 벗하는 유유자
적한 말년을 시골의 한적한 초당에서 지냈다. 그래서뿐
아니라 위대한 시인으로서 중국 민중의 영원한 벗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대통령이다 장관이다하는 고관대작을 지낸 사
람들이 명예롭게 퇴임하여 말년을 알뜰한 초당에서 국
민들의 존경을 받아가며 살 수 있다는 사례의 하나쯤은
있을법한데……하고 탄식을 금치 못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