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은자의 몽매함 제정 러시아 시대 말.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폭동을 일으키는 백성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난리인지 영문을 물었다. 곁에 있던 시종이 답답한 김에 “저들이 빵이 없어서 그러는 것 같다”며 이유를 설명하자, 황제는 어의가 없었다. 그리곤 당장에 묘안(?)을 지시했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고 해라.” 후세 사람들은 이 니콜라이의 배부른 제안에 대해 ‘있는 자의 맹목’으로 두고 두고 비웃 고 있지만, 실지로 ‘있는 자가 없는 자의 절박함을 헤아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듯 하다. 이를 반증하듯 최근 몇 년동안, 호황의 절정을 누리고 있는 미국에서도 그동안 자선 활동의 기둥이던 중산층의 기부가 급격히 줄었다고 한다. 그것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 호주머니를 털던 300여만 가구의 중산층들이 은혜의 손길을 거 두고 있다는 내용으로,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고 당당히 주장했던 황제 니콜 라이의 몽매함이 아주 구체적이고 정당하게 되살아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과 내재된 현실 얼마전, 한국 패션그룹주최로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의 자선패션쇼가 열렸다. 패션디자이너들의 사회참여의식과 관심도를 반영하는 이행사의 올해 테마는 ‘굶지 않는 세 상 만들기’. 일류 디자이너들의 패션쇼와 만찬으로 ‘갖은 자에게는 풍요를, 없는 자들에게는 온정 을…’이라는 이런류의 자선사업은 ‘배고픔과 빈곤에서 벗어나 역사상 가장 축복받은 세 대’로서 추켜세워졌던 우리의 주위에 어둠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우는 하나의 자 극제임과 동시에, 나눔의 공식을 보다 리얼하고 명분있게 제공해 주는 경제적 논리의 하나 이 되어주기도 한다. 사실, 요즘은 때가 때인만큼,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보다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앞장 서겠다는 취지하에 실시되는 이런류의 자선행사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또, 말많고 탈많은 백화점들도 결식아동, 소년소녀 가장 돕기, 장애인돕기 등등의 이름으로, 각종 기획·기증을 통한 상품 할인판매를 비롯한 이벤트기획으로 소위,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양면작전에 한창이다. 물론, 백화점이 무슨 자선사업의 대표주자나 된 듯 눈물겹게 떠들어 댈수록, 입점 디자이너 들과 업체들은 자의든 타의든 뭔가를 자꾸만 내놓아야 하는 호구의 역할에 충실해져야 한다 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있는자와 없는자의 인식차이 이런 현상을 두고 대형할인점과 가격경쟁에서 고전하는 백화점들이 할인점과의 차별화 전략 의 일환이라는 명제하에 되지도 않은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 이라고 빈정대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하면, 한끼 먹고 사는 것이 지옥같은 사람들에게 디자인이니 패션이니 하는 말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좀 한다하는 디자이너의 작품 한점이 웬만한 서민의 한 두달치 봉급과 맞먹는다는 현실을 말하면, 당장에 핏대부터 올리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을 고지 곧대로 받아 들인다면,,‘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Winner Take All)’는 경기규칙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자선과 기부사업은 졸지 에 역설이 되어버리고, 모든 것은‘안하면 그만’이라는 부정적인 코웃음만 남게 되는 것인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기는 멋대로 살면서, 남은 성자처럼 살기를 원한다’는 이런 식의 관념은 때때 로 자선사업을 이렇게 코믹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의미에서 일생동안 흑인교육을 위해 5,357개의 공립학교 설립을 지원했던 시어즈 로벅 백화점의 소유자 줄리어스 로즌월드의‘나는 눈시울을 적시게 만드는 자선을 싫어한다. 아 니 메스꺼움까지 느낀다….’는 다소 드라이한 자선철학론은 이런 시점에서 참으로 적절하 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봉사하고, 자신과 남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 려운 일이지만, 진정으로 보람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처지는 눈물겨운 자선과 무자비한 자선을 가릴 형편이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IMF 이후 우리 사회의 게임 규칙이 ‘있는자’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과 이제부터는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의 지혜로운 결단 없이는 정신적 밸런스가 결코 오래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이다. 존경받는 디자이너의 조건 얼마전 한 신문 기사에서 명품의 공통된 요인에 대해서 읽은 적이 있다. 모방보다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창조정신, 때를 기다리는 장인 정신, 무엇보다도 명품을 탄생시키는 사회적 배경이 바로 그것이다. 흔히, 패션디자이너들은 패션도 하나의 문화로서 인정받고 자리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낮 이사회에 존경받을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