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자 © 한국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파리에는 세계 각국에서 <내노라>하는 화가들이 늘 3,4만
명을 넘게 모여들어 실력을 인정받으려고 동분서주하고 있
다. 우리나라서도 수십명의 화가들이 어려운 경제속에서 거
의 <고학>을 하다시피 해가며 그림공부에 정열을 불태우곤
했다. 특히 196,7십년대가 파리유학 한국화가들의 실상이었
다.
파리시내 아파트는 고사하고 교외의 방한칸얻기가 그리 간단
치가 않았다. 당시만해도 서울서 <달러>보내기가 힘들었고
한국의 <저명화가>라 해도 파리에서 그림팔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이에 비하면 IMF회오리가 몰아닥치기 전의 우리 해외유학생
들은 호강이 넘쳤던 셈이다.
▼재미나는 이야기 하나 있다. 경제학의 최모박사가 교환교
수로 독일가는 길에 파리에 들려 서울서 가까히 지냈던 <남
모 화백>을 만나 보고파 호텔에서 「속달우편」을 띠웠더니
파리를 떠나려던 사흘후인 어느날 초라(?)한 모습으로 찾아
왔더라는 것.
“왜 이제 왔느냐?”는 물음에 <속달>이 오늘 아침에야 배
달됐다고 했다.
남화백은 이렇듯 속달우편 배달부까지 찾기 어려운 「지붕밑
값싼 다락방」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공연히 여기서 지난날 <在파리>의 우리나라 화가들 얘기
를 늘어놓자는 것은 아니다.
-하도 복잡미묘한 요즘의 IMF한파로 허둥대는 우리의 형편
과 문화국가를 자처하는 프랑스 행정부의 확립된 처사와 이
에 못지않은 파리시민들 개개인의 멋과 여유만만한 생활모습
이 불현듯 뇌리에 떠올라서다.
-우선 불야성을 방불케하는 서울 강남의 환락가완 비교도 안
될만큼 <파리>의 밤거리는 어둡다. 네온이 없어서다.
몇몇 <레스토랑>을 빼고는 거의 전문점들은 문을 닫는다.(패
션점의 쇼윈도우만 불이 켜져 있다.)
파리시내 번화가 건물의 아래층들은 고급전문점들이 들어서
있다.
평균 5,6층의 이 건물들은 고색찬연한 석조건물로 「2층은
대체로 사무실-그리고 그위는 아파트다.(시에서 고층건립을
절대로 허가않는다)
한국같으면 번화가의 건물이라면 일류기업의 오피스가 자리
잡지 「주거」란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그렇다고 파리시민들은 1년내내 이 좁은 공간의 아파트생
활만은 아니다. 규모있는 생활을 근거로 여름의 피서-겨울은
겨울대로의 즐거움을 찾아 <엔조이>에 게으르지 않다.
남불(南佛)의 피서지뿐 아니라 지중해(地中海)에 면한 불모의
습지 1백80킬로의 해안선을 프랑스정부는 「국가 프로젝트」
로써 여덟개의 「리조트도시」와 천척이 넘는 <요트>와
<모터보트>가 정박할 수 있는 「매리너」등을 건설해서 시
민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것도 한가족 네명이 1주일동안에 드는 비용이 고작 1, 2십
만원정도라니 할말이 없어진다.
그러니까 국민들은 마음놓고 4,5주일의 장기 <바캉스>도 가
능한 셈이다.(다 아는 사실이지만 바캉스시즌에는 파리시내
전체가 텅텅 빈다고 했지 않은가)
▼프랑스정부의 한 행정관서에는 「자유시간청(自由時間廳)
」같은 것이 있어 <휴가>나 <여가>를 즐기려는 대다수 국
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프로젝트로서 국민들 이용에 도
움을 주고 있다. 「시설이용비」 「물가」등 이용하기 쉬운
싼값으로 고정돼 있어 예산짜기가 어렵지 않다.
-우리와는 <휴가>라든가 <즐긴다>는 개념부터가 다르다곤
하지만 부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프랑스뿐만의 일은 아니겠으나 그들은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
히 즐긴다.
그들 생활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것에 「열심히 일해서 저
축하고 노후에는 “세계일주”하는 일」이란게 있다.
따라서 규모있고 질서있게 마음것 즐길수 있는 휴가를 그들
은 스스로들이 만들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