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투지·장비·의복서 산악등반강국 과시
1日 높이 900m씩 등정…산소 부족속 강행군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가 창공을 향해 용솟음치고 있다.
평안섬유공업(대표 김형섭)의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가 서울산악조난구조대(대장 김남일)가 파견한 06 한국 네파 탈레이사가르 조긴원정대(단장 김형섭, 대장 박희영)의 구은수 부대장과 유상범 대원이 지난달 9일(현지시간)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 강고트리 지역에 있는 화강암봉 탈레이사가르(6,904m) 북벽을 통과 위용을 과시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표적 산악인들이 열 번 이상 도전했으나 그들 모두는 실패하거나 혹은 고인이 되어 돌아온 곳이기에 이번 성공은 한국 산악계의 숙원을 풀어냈을 뿐 아니라 산악역사에도 길이 남을 일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등반기술과 투지 장비 의복 등에서 산악강국으로 위상을 다시 한 번 세계에 과시 할 수 있게 됐다.
탈레이사가르 북벽은 산악인들에겐 난공불락의 요새로 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93년부터 도전이 시작되어 그 동안 등반을 시도했던 10개 팀이 모두 정상을 밟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1998년에는 블랙피라미드 구간을 통과하고 마지막 정상으로 이어지는 설면까지 진출했던 한국 산악인 3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까지 겪기도 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은 어려운 일로 꼽히고 있다. 1997년 호주-뉴질랜드 합동 팀이 처음으로 북벽에 올랐고 1999년 러시아 팀에 의해 재등 되었을 뿐이다. 해마다 빠지지 않고 탈레이사가르를 찾는 팀이 한두 팀 이상 되지만 모두 북벽을 완등 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정상 근처까지 갔다고 해도 블랙피라미드 아래에서 하산하거나 우측 서릉으로 우회해서 정상에 올랐을 뿐이다.
한국팀이 지금껏 10번의 도전에서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탈레이사가르를 2006 네파 원정대가 6,904m의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 탈레이사가르를 정복한 것은 상당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베이스캠프에서 북벽 등정 전 기상악화와 많은 눈으로 악재가 많았지만 그런 악재를 딛고 정복한 한국 산악계로선 10전 11기의 첫 쾌거이고, 세계적으론 세 번째 등정 성공인 것이다.
2006 네파 원정대의 구은수(36)부대장과 유상범(29) 대원이 해냈다. 해발 6,700m에서 침낭에 의지해 비바크를 한 구은수 부대장과 유상범 대원은 9월 9일 오전 4시 등반을 재개, 오전 11시쯤 이번 등반의 최대 고비인 정상부 하단의 블랙피라미드 지대를 통과한 뒤 오후 1시 17분 악마의 성벽정상에 도달했다.
2006 네파 원정대는 지난 7월 25일 서울을 출발한 뒤 8월 14일 조긴 3봉, 8월 17일 조긴 1봉을 등정했고 9월 9일 탈레이사가르 북벽까지 올라 당초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
한국 산악인들의 염원과 한이 서려있는 히말라야 탈레이사가르 북쪽 수직 절벽. 그 이름 악마의 붉은 성벽이라 불리는 이곳엔 지난 1998년 정상을 100m 앞두고 고 최승철, 고 신상만, 고 김형진 3명의 대원이 6,800M지점에서 5,500M 지점으로 추락사하여 운명을 달리한 곳이다. 1993년 이후 한국산악인들이 이곳 북벽에 붙어 본 것이 무려 11차례. 탈레이사가르 북벽은 단 한 번도 꿈쩍하지 않았다.
탈레이사가르는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 강고트리지역에 위치한 아름다운 봉우리다. 탈레 이사가르 북벽의 직등 루트는 탈레이사가르 정상(6904m)을 향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수직 등반 고도 1500미터인 직등이며 어려운 거벽 등반에다 기술적으로 완성된 등반을 해야 한다.
한국산악인에게만 인색한 탈레이사가르 북벽이 아닌 것이다. 북벽에 완벽한 오름길을 처음 내는 일은 1997년에야 가능했다. 호주의 린드블레이드와 뉴질랜드의 윔프. 두 산악인은 전 해의 실패를 딛고 마침내 악마의 성벽에 첫 문을 열었다. 2년 뒤 러시아 원정대가 초등 루트 왼쪽에 두 번째 길을 냈다.
세계적으로 단 두 팀. 1400m의 수직벽 그 중에도 해발 6,500m에서 시작 돼 정상부로 이어지는 블랙피라미드로 불리는 마지막 가파른 절벽이 사람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김임순 기자 [email protected]
{<2006 한국 네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