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술 앞둔 R&D사업 명암과 전망] 정부지원 연구개발사업, 이대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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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실무 전문가 평가위원단 위촉 실질 개혁안 반영 시급

지난해 4조 원. 올해는 4조4000억 원까지 늘어나는 정부지원 연구개발(R&D)사업예산. 그러나 ‘정부의 눈먼 돈 따먹기 경연장’을 방불케 할 만큼 정부지원 연구개발사업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듯 바뀌자 지난해 10월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연구개발 지원과 관련해 “깨진 독에 물 붓기 식”이라며 연구개발사업과 관련한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장관은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아무리 (지원을) 퍼부어도 성과가 안 나온다”며 “지금의 연구개발사업은 기술 융합이 강조되는 시대인데도 여전히 `칸막이`가 쳐져 있고, 한번 지원을 받으면 경쟁 없이 온정주의 평가에 지원금 나눠먹기 관행의 연속이었다”고 지적했다.

최 장관은 “과감한 R&D 지원에 앞서 차관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이 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며 “연말까지 획기적인 개선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행정편의주의의 연속인가
혁신을 향한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수박 겉핥기식 냄새가 물씬 풍긴다. 지경부는 그동안 직간접으로 연구개발사업에 참여한 대상 기업, 연구기관 ,대학들의 의견을 수렴하는데 인색했다. 마치 초가집을 짓 듯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하 산기평)에 연구개발사업 혁신방안마련을 요청하는데 그쳤다. 이후 지경부와 산기평의 행보는 가관이다.

산기평은 ‘연구개발사업 혁신방안’을 입찰에 공개(10.16일)하는 우스운 사건이 발생했다. 수십 년을 추진해온 곪아터진 연구개발사업이 어디 입찰로 해결될 일인가. 1년이 소요되더라도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것이 혁신방안마련을 위한 초석임에도 이를 간과하고 있다.

산기평은 이에 대해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차례 설문조사를 했다는 인색한 답변을 늘어놓고 있다. 지경부 역시 연구개발사업 혁신방안마련을 위해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연구개발사업 혁신추진위를 구성, 가동하고 있지만 추진위 구성이나 추진내용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산기평은 지난해 10월27일 혁신방안을 입찰 마감 후 지경부에 자료를 넘겨 12월7일 지경부가 주관한 R&D혁신공청회(12.7일)를 열었다.

공청회는 혁신과 거리가 있는 대기업 임원들이 다수 참석했다. 이후 아직까지 혁신방안은 도출되지 못하고 있다. 지경부와 산기평은 늦어도 1월 중순경 혁신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실속을 기초로 한 혁신방안 마련 행보가 크게 미흡했다는 점에서 혁신안은 참여기업들 입장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부지원 연구개발사업, 이것이 문제다

그동안 연구개발사업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신산업창출 등 경제적 성과로의 연결은 매우 미흡했다. 정부지원은 00년 이후 08년까지 매년 10%씩 증가추세를 보여 왔지만 성과는 제자리걸음에 그쳤다.

녹색성장 등 상위정책과의 R&D 사업간 연계가 미흡한데다 경쟁이 없는 사업추진방법에 따른 결과로 지경부는 진단하고 있다. 지경부는 온정주의적 평가가 R&D 지원방식의 비효율성을 초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창, 동향 선후배, 인맥 등이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러다보니 총 선정과제 중 최종 평가 시 성공 판정을 받은 건이 85%를 넘을 정도다. 최종 평가 시 50~60%만 생존하는 미국(DARPA)과는 크게 대조되는 대목이다. 그동안 과제선정 과정에서 전문성이 떨어진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함으로써 정부지원 연구개발과제는 현실성과는 거리가 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예산지원에 그쳤다.

중간 평가의 완만성도 정부지원 연구개발과제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 일조했다. 사업이 선정만 되면 그만이다. 중간평가가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를 간과하고 사업을 추진해 온 것이 실패의 주요인이었다.

완료 평가도 마찬가지다. 참여기업이나 관련 연구기관, 대학들이 완료보고서만 그럴듯하게 만들면 무사통과다. 그러나 이것은 행정편의주의의 소산일 뿐 완료평가결과에 따른 개발결과물이 신 수요를 일으키며 공급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이 같은 총체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연구개발사업을 정부가 나서 일반에게 혁신방향을 도출해 달라고 입찰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습기 짝이 없다.

■지경부, 산기평이 말하는 혁신방향
업계는 연구개발사업이 성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과제의 현실성·사업성·기술성 등을 들고 있다. 이를 현실적으로 과감히 개혁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자격요건을 갖춘 심사위원 물색이 급선무다.

지경부는 올해부터 사업선정 시 투명성과 경쟁심을 유발한데이어 R&D 기획의 전략성을 강화하고 경쟁을 촉진하는데 주안점을 둘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기획예산비중을 현행 R&D 사업비의 0.6%에서 2%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실효성 위주의 사업을 위해 R&D 기획단계시 경쟁을 유발하고 도입 및 과제진행 단계별 상시 기획 및 중간평가를 강화한다는 방침도 정했다. 상대평가를 통한 중간탈락을 확대하고 우수 혁신적 성과과제는 파격적으로 대우한다는 것도 골자다. 이에 따른 방안이 인센티브 제공을 비롯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는 격려형 R&D 추진방안 등이다.

기술혁신과제 수행기업(자)에 대해 차기과제를 통해 지원혜택을 부여하는 방안과 실패과제에 대해 제재조치 보다는 실패원인 분석보고서 작성을 통한 사례 공유로 성과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심사위원 요건과 자격도 대폭 강화된다.

기술 분야별 최고의 전문가로 핵심평가위원(Leading Group)을 구성하고 과제선정부터 종료시까지 책임지고 심사와 평가를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평가시 동료 평가위원을 이끌어 공정하고 전문성 있는 평가 수행을 하도록 역할을 강조한다는 계획도 담겨져 있다.

이를 위해 신년부터 R&D 연구비 사용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연구자 편의성 제고를 위해 국세청과 연계한 실시간 통합연구비관리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연구비 유용사례가 적발되면 국가 R&D사업 진입을 엄격히 차단하는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업계는 이런 개혁을 원한다
제대로 된 혁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연구개발사업에 참여했거나 참여하지 않았던 대상 기업(중소기업위주)을 참석시킨 공청회가 바람직스럽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들 기업들은 R&D과제의 혁신방안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연구개발사업에 크게 실망한 기업들이다. 각종 세미나 장이나 회식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로도 꼽힌다. 그들은 수십 년간 연구개발사업의 개선방안에 대해서 연구하고 의견을 개진한바 있다. 이 같은 기업들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은 연구개발사업 혁신방안 마련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된 연구개발사업의 혁신방안은 심사와 중간 및 완료보고에 이어 사후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철저한 사후관리를 통해 개발성과물이 팔려나가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야말로 연구개발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핵심 요소다.

수요 없는 개발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사후관리 과정에서 소정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에겐 합당한 패널티를 부여함으로써 향후 연구개발사업 참여를 일정기간 제한하거나 지원했던 예산일부를 환수 조치하는 등 강력한 대책이 시급하다.

이를 위한 급선무가 각 분야별 최고 실무전문가를 심사 평가위원으로 위촉하는 것이다. 그동안 자격 미달이나 전문성이 결여된 심사위원들로 인해 연구개발사업은 애물단지로 변해버렸다. 따라서 이러한 대책 없이 내놓은 개혁안은 자칫 참여기업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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