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타필드 이동만 대표
“맞춤양복은 건축물과 같아, 균형과 외관美 충족시켜야”
“맞춤복은 건축물의 구조와 같아서 균형을 맞추면서 외적인 미를 추구해야 하는 섬세한 분야입니다.” 이동만 체스타필드 대표(현 한국남성패션문화협회 부회장)는 17세에 맞춤양복계에 입문, 40년간을 한결같은 고집과 의지로 기술을 연마해 온 장인이다.
이동만 대표는 최근 소상공인의 날에 지식경제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40년간 외길을 걸으며 어떠한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자신을 다그쳐 온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인 셈이다. 1973년 맞춤양복업계의 대부로 불리우는 박정남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 기술을 연마했고 1989년 마침내 ‘체스타필드’를 개점해 23년간 운영해 왔다.
이동만 대표는 “제가 박정남 선생의 정통 수제자입니다”라며 자부심을 표명했다. 가장 중요한 기술은 바로 “고객이 제일 좋아하는 옷을 만드는 것”이라며 “간단명료하지만 어려운 과제”라고 덧붙였다.
맞춤양복은 사실 남성복 오트쿠튀르의 진수이다. 고객에게는 ‘오로지 나를 위해 지어진 세상의 한 벌 뿐인 옷’을 제공해야 한다. 체촌이나 가봉 때에는 고객과 대화하면서 욕구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봉제기법이나 스타일 등을 대화로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이동만 대표는 “맞춤양복은 고객과 제가 만드는 합작품”이라고 표현했다.
40여 년간 어려움도 많았지만 가장 큰 난관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고 한다. “모든 어려움의 원인은 나 자신이었습니다”라는 이동만 대표는 “나 자신의 철학은 고객이 부담스러울만큼 섬세하고 친철한 응대로 옷을 짓는 것”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동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약간의 섭섭함은 있어도 후회는 없다”고 지난 시간들을 회고했다. 4대째 기독신앙을 이어가고 있는 이 대표의 집안은 3남1녀로 위로 두 형님이 어릴적부터 양복점을 해왔다고. 이 대표만은 집안에서 목회자의 길을 가기를 원했지만 본인은 강력하게 맞춤양복 기술자가 되기를 소망했었다고 밝혔다.
“40년동안 현장에서 몸과 마음으로 축적한 노하우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이동만 대표는 이미 고3인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잇기를 희망하고 있어 대견함과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한국에서도 몇 대를 이어 백년역사의 맞춤양복점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 대표가 바로 ‘체스타필드’로 제 아들, 손자에 까지 계승됐으면 합니다”라고 꿈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