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성수동에서 출발한지 약 30분이 지나고 서울시계를 넘어 포천에 들어서자 간간이 내리던 가랑비가 옅은 진눈깨비로 바뀌어 흩날린다. 함께 동행한 일송텍스 신일호 사장은 “포천은 서울보다 3~4도 정도 기온이 낮아 흔한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포천은 양주와 더불어 경기 북부 섬유 산업을 이끌어가는 핵심 도시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경기도 섬유업체는 전국 대비 31.3%를 차지하고 이중 경기북부 지역이 60%를 점유하고 있다. 양주(34.5%)와 포천(35.6%) 집적도가 높고 업종별로 양주 염색가공과 포천 편직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경기도 북부청은 골프웨어, 스포츠웨어, 레저웨어 등 세계 고급 니트 시장에서 국내 기업 시장점유율은 40%이 달하며 이 중 경기 북부 공급 물량이 9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세계 최대 니트 생산지역으로 주목 받고 있는 경기 북부. 이유가 뭘까? 이 지역이 한국 섬유산업의 신 성장 엔진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 염색 및 후가공 용이한 집적 효과와 정부 지원
일송텍스는 올 2월 완공을 목표로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에 제2공장을 짓고 있다. 6600㎡(2000평) 대지에 건평 2480㎡(750평) 규모로 완공 후 이 회사 주력제품인 메쉬, 트리코트 아이템을 생산할 예정이다. 포천에는 이 곳 말고도 철골 구조를 올리며 신축 공사에 여념 없는 현장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일송텍스 이용원 상무는 “성수동 등에 있던 염색 및 원단 업체들은 수도권 개발 규제가 심해지면서 의정부로 몰렸다. 그러나 의정부도 점차 제약을 강화하면서 업체들이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 지금의 양주, 포천, 동두천 등지에 자리를 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기북부 지역은 이들이 몰리면서 날염 및 프린트, 환편, 경편 등 전문 업체들이 집적화를 이루게 됐다. 일송텍스도 신갈에 공장이 있었으나 2006년 염색 및 후가공작업이 쉬운 포천으로 공장을 옮겼다.
포천시 소홀읍에 있는 영레이스는 상계동에서 자수 제품을 생산했으나 주변 주택가 민원 때문에 이곳으로 옮겨온 케이스다. 심영윤 사장은 “상계동서 일반 주택 건물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서 공장을 운영해 왔으나 자동화 설비를 들이면서 기계 소음에 대한 민원이 자주 들어와 지난 2002년 아예 포천으로 공장을 옮겼다”고 말했다. 자생적 필요에 의한 이전 외에 정부의 지원도 한 몫 했다.
포천시 가산면에 있는 용정실업은 정부의 수도권 과밀지역 해소 정책에 의해 구로공단의 아파트형 공장에서 이곳으로 옮기게 됐다. 서광석 사장은 “2007년 포천으로 오면서 5년간 종합소득세를 100% 면제받는 등 정부 세제 지원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총 50여 대의 환편기를 보유하고 있는 용정실업은 이 덕택에 연간 1억~1억5000만 원의 세금을 절감하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 1998년~2003년 사이 양주시 남면 상수리 14만5300㎡ 일대에 총 580억 여원을 들여 섬유염색 및 가공업, 도금 업종을 대상으로 검준일반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염색 단지를 보유함으로써 후작업 공정 및 일반 니트, 편직 업체들 수요가 몰리는 계기가 됐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민선 5기 5대 전략 과제 중 하나로 이 지역 대표 산업인 섬유와 가구 산업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양주 검준, 포천 양무, 동두천 지역에 58만7000㎡ 규모의 섬유·가구 특화 단지 조성을 완료했고 대표적 무허가 염색밀집 단지였던 포천 신평 및 연천 청산 지역은 대기오염 방지 시설을 갖춘 첨단 섬유 특화 산업 단지로 변신이 진행 중이다.
■ 외국인 근로자 없으면 공장이 멈춘다
2009년 통계청 사업체 기초 통계조사에 따르면 경기북부 섬유업체는 6650개로 5만3291명이 종사하고 있다. 전국 통계로는 4만2265개 업체가 28만8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 업체들은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해 공장을 돌리고 있다. 용정실업도 근로자 20명 중 절반인 10명이 외국인 근로자다. 서 사장은 “서울 같으면 주부들도 고용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이마저도 안돼 인력 조달이 가장 큰 문제다”며 “외국인 근로자 고용폭을 확대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 사장은 “외국 인력 신청할 때는 아침 7시부터 줄 서서 배정받으려고 하지만 이것도 오후 5시면 끝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근로자들도 가능하면 같은 국적의 근로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무작정 아무나 받아들일 수도 없다. 용정실업에는 태국과 인도네시아 근로자가 각각 5명씩 있는데 이들은 기숙사도 따로 쓴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타 국가 근로자들에게는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국적이 늘어나면 근로자들간 의사 소통이 어렵고 더 많은 기숙설비를 필요로 해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올해 도입된 외국 인력은 전년 대비 41% 증가한 4만8000명이며 이중 4만 명이 제조업에 배정됐다. 섬유산업은 이중 3000명 대 인력을 확보했다. 업체 숫자 및 고용 인력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숫자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양주시 남면에 있는 광일섬유. 이 회사는 약 16500㎡(5000평) 부지에 대규모 경편시설을 갖추고 20명의 생산직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주, 야간 교대로 10명씩 일하며 이중 6~8명은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이 회사 장 운 사장은 “근로자 조달도 어렵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숙련 노동자 양성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장 사장은 “전에 5년간 일한 태국인 근로자가 있었는데 일을 워낙 잘해 계속 데리고 있을 수 있는 길을 찾았지만 방법이 없더라”며 “회사 보증으로라도 잡고 싶었는데 제도가 그렇게 안 돼 있더라. 체류 연한이 끝난 근로자들을 무조건 나가라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다”고 말했다.
이들을 다시 채용하려면 본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외국인 취업으로 들어와야 한다. 다시 허가를 받아 들어오기도 힘들뿐더러 그렇더라도 같은 사람을 지목해서 취업 시킬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불법 외국인 근로자를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2011년 7월 현재 정부가 파악한 불법 외국인 근로자는 16만5000명에 이른다.
■ 월 200만 원에도 사람이 안 온다
잘 못 알고 있는 상식 하나. 임금이 싸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선호한다는 건 옛날 얘기다. 대부분 업체들은 비 숙련 근로자 초임을 내외국인 구분 없이 150~160만 원을 준다. 내국인들은 출퇴근하지만 외국인들은 기숙사까지 제공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외국인 근로자 실질 임금이 더 높다.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로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용정실업 서 사장은 “내외국인 모두 첫 해 150만원으로 시작해 1년이 지나면 190~230만 원까지 월급이 오른다”며 “여기에 외국인들은 기숙사 및 추가 냉난방비가 들어가 오히려 돈이 더 들어가므로 내국인이 손해일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개 기숙사 운영비로 월 평균 100만 원을 지출하고 있다. 냉난방비는 별도다. 광일섬유 장 운 사장은 “숙련공들의 경우 250~270만 원까지 월급을 준다”고 말했다.
일송텍스 신일호 사장은 “일자리 없다고들 하는데 여기오면 일자리가 널렸다. 취업난 얘기는 다 배부른 소리”라고 일축했다.
■ 도로 인프라 턱없이 부족
포천과 양주를 잇는 주요 도로인 일명 투바위고개(회암고개). 평일 오후 3시임에도 불구하고 양주에서 포천으로 넘어가는 편도 1차선 도로는 밀려드는 차량들로 꽉 찼다. 산을 가로지르는 게 아니라 끼고 돌기 때문이 굽이굽이 진 길을 어렵게 넘어야 한다.
턱없이 부족한 도로 인프라는 이곳에 있는 업체 관계자 대부분이 답답해 하는 부분이다. 일송텍스 신일호 사장은 “여기서는 이동하려면 2~3시간은 기본”이라며 “포천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출퇴근 시간이 3~4시간씩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지역 도로 개선을 위한 뚜렷한 대책은 나와 있지 않다. 경기도청에 따르면 포천에서 양주로 넘어가는 지방 국도는 56호선(투바위고개)와 360호선에서 379호선으로 갈아타는 2가지 방법이 있다.
이중 360호선에서 379호선으로 갈아타는 도로는 지난해 11월 ‘마전-삼숭동간 도로공사(터널공사)’가 완공돼 일부 교통 여건이 개선됐을 뿐이다. 포천에서 동두천을 지나 양주시 운현면으로 우회하는 광안-마산간 지방도로 건설(지방도 364호선) 사업은 총2000억 원을 들여 공사에 들어가 2014년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경기도 도로계획과 관계자는 “국도 건설은 국가 계획의 일환이라 아직 경기도 차원에서 신규 도로 건설 계획은 없다”며 “경기 북부 지역은 아무래도 도로 사정이 원활치 않은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소재개발·해외마케팅 지원 활발
한국섬유소재연구소
경기북부 섬유업체들은 임가공 및 OEM 형태 생산으로 인해 수출 비중이 낮고 소규모 수출 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역 내 업체의 76.3%가 100만 달러 이하를 수출하고 있고 그나마 컨버터나 에이전트를 통한 수출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섬유소재연구소는 이들 기업에 소재 개발 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