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재원 마련 세금폭탄 “영세봉제공장 다 죽인다”
복지재원 마련 세금폭탄 “영세봉제공장 다 죽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업자 없는 수십개 봉제공장들 1억대 세금 고지 ‘날벼락’

서울 만리동에서 시아게(봉제 마무리) 공장을 운영하는 박유석(38) 사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8세부터 봉제공장에서 일하다가 5년전 1000만원을 모아 독립해 공장을 차렸다. 지난 10월 그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약 3년6개월간 내지 않은 세금을 내라는 고지서가 배달됐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와 소득세에 가산금까지 붙은 세금은 총 1억원이다. 박 사장은 “지난 2년간 직원 급여를 위해 대출받은 돈만 6500만원인데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 공장은 옷 숙녀복 한장당 공임이 1300원 안팎이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 일대 봉제공장 수십곳이 비슷한 시기에 용산세무서로부터 적게는 5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5000만원까지 세금 폭탄을 맞았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강화된 기업체 세무 조사가 영세 봉제 공장 사업주들의 기반을 날려버리는 생존 차원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올 한해 내수 패션기업뿐 아니라 수출 벤더들은 강화된 세무조사로 등골이 휘었는데 이제 3~4명이 가내수공업 형태로 일하는 영세봉제 공장들까지 불똥이 튀어 사회문제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한 인터넷 쇼핑몰에 의류를 납품한 5개 봉제 공장 사장들은 지난 10월 일제히 1억원 안팎의 세금납부 고지서를 받았다. 여성 빅사이즈 의류 인터넷 쇼핑몰인 U사가 세무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들과의 거래 내역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곳은 업계 수위를 달리는 대형 쇼핑몰이다.

문제가 된 것은 부가가치세다. 이곳에 옷을 납품한 봉제공장들은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아 물품 대금을 받는 과정에서 부가세를 받지 않았는데 U사는 이 공장들에 부가세를 지급한 것으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세무서는 이들이 부가세를 받고도 신고하지 않아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봉제 공장 사장들 중에는 ‘부가세가 포함되지 않았음’이 명기된 영수증을 근거로 U사와 관행적으로 부가세 없이 거래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이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장 사장들은 “소득세는 당연히 내겠지만 받지도 않은 부가세를 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단체 행동에 나설수도 있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들의 법률 지원을 맡고 있는 서울봉제산업협회 차경남 회장은 “사업자등록증 없는 봉제공장들은 관행적으로 부가세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전형적인 갑의 횡포”라고 지적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모 세무회계사무소 관계자는 “시장은 대부분 무자료 거래를 하고 있는데 작년부터 세무조사가 강화되면서 세금폭탄을 맞은 영세 봉제 공장들이 엄청나게 늘었다”며 “법원을 통해 소송을 하거나 국세청의 고충민원제도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해결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너명이 가족과 함께 일하는 영세 봉제 공장들은 인력과 정보력이 없어 미연에 사태를 방지하거나 사건이 터지더라도 이를 대처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현장의 목소리는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이번에 지난 3년간 매출에 대한 부가세와 소득세, 가산금으로 5900만원의 세금 폭탄을 맞은 김덕순(52) 사장은 “사업자등록증 없이 거래해 온 잘못은 있지만 지금 상황은 억울하다. 사업자 등록이 없어 부가세를 받지 않았는데 5년이나 지난 시점에 이에 대한 근거를 대라니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자등록을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공장을 얻으려면 임대주가 사업장으로 신고되는 것을 싫어해 공장을 내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4대 연금을 납부하자고 하면 아예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옮기기 때문에 공장문을 닫아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여성복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김원만(44) 사장은 “공장이 사업자 내고 거래하라는 얘기는 맞다. 그러나 비수기에는 일감이 없어 직원 월급을 주느라고 손해를 보는데 정부가 업계 상황에 맞게 세금을 적용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라고 항변했다.

봉제공장은 우리나라 사회경제 최하단 취약계층의 마지막 버팀목이자 일터이다.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정부의 무차별적인 세금 폭탄이 이들 서민 경제의 보루를 허물어뜨리는 뇌관으로 작용하는 사이, 이들은 당장 한겨울 차가운 거리로 나앉을 걱정에 한숨을 쉬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명 : ㈜한국섬유신문
  • 창간 : 1981-7-22 (주간)
  • 제호 : 한국섬유신문 /한국섬유신문i
  • 등록번호 : 서울 아03997
  • 등록일 : 2015-11-20
  • 발행일 : 2015-11-20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 234 (밀스튜디오빌딩 4층)
  • 대표전화 : 02-326-3600
  • 팩스 : 02-326-2270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종석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 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김선희 02-0326-3600 [email protected]
  • 한국섬유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한국섬유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