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후 매출 절반 이하로 ‘뚝’…공장 90% 일감 감소
인근 근린생활 업종까지 동시 붕괴…지역경제 파탄 불러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이 서부지역인 만리동, 청파동, 서계동 등지에서 봉제산업에 종사하는 5000여 근로자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나 시급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이 곳은 중구, 마포구, 용산구 등 3개구가 인접한 서울 서부지역 최대 봉제벨트로 지역 산업경제뿐만 아니라 인근 상권을 떠받치는 주요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는 도시형 소공인 업종 밀집 지역이다.
그런데 작년 10월 서울시가 당초 철거하려던 고가를 녹지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1015개에 이르는 서부지역 봉제공장들은 매출이 반토막 나는 등 피해가 커지고 있다. 고가가 철거되기도 전에 교통 불편을 우려한 시장 거래처들이 일찌감치 하청 공장을 바꾸면서 일감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9면 PDF참조>
청파동에서 여성복 의류를 생산하고 있는 이상태 락어패럴 대표는 “작년 10월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이 발표되면서 11월부터 일감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며 “월평균 5~6000만원이던 매출이 지난달에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월에만 주변 17개 공장이 서부지역을 떠나 동대문 일대로 옮겼다”며 “우리 옆의 50평대 사무실은 봉제공장이 신당동으로 이전한 뒤 6개월째 비워져 있다”고 했다. 청파동과 인접한 만리동의 조봉기 강남패션 대표는 “이 지역 봉제공장의 80~90%는 대부분 매출이 감소했다. 고가 철거로 접근성이 떨어지면 서부지역은 ‘서울의 섬’으로 붕 뜨게 됐다”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만약 서부지역 봉제벨트가 부실화 될 경우 이 일대는 공장뿐만 아니라 이들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 상가 등 근린생활업종에 종사하는 영세 상인들도 함께 무너져 내린다는 점이다. 아예 지역 상권이 초토화되는 것이다. 봉제공장 오더를 직접 관리하는 디자이너들이 창신동, 숭인동, 신당동 등 동대문과 가까운 공장으로 거래처를 바꾸는 이유는 교통불편으로 인한 경쟁력 하락 때문이다.
서울역을 가로지르는 고가가 막힐 경우 서부 봉제벨트에 접근하려면 남대문에서 시청을 돌아 공덕동으로 넘어가는 염창교나 더 먼 거리를 돌고 돌아 남영동 굴다리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염창교는 하루종일 교통이 밀리는 대표적인 교통체증 길목이고 남영동은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다.
당일 오더를 내리고 바로 납품하는 단납기 시스템이 정착된 동대문 시장 가게들을 상대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의 손실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실제 이 지역과 거래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은 앞으로 고가가 철거되면 거래선을 바꿀수 밖에 없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중구 신당동에서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정진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들은 시간과의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라 동선이 매우 중요하다. 주변 디자이너들이 교통 불편을 우려해 실제로 거래선을 창신동쪽으로 많이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 역시 만리동 거래처를 모두 정리하고 지금은 창신동 봉제공장 거래처를 늘려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최근 동대문 시장은 딜리버리(납기)가 촉박해지고 있기 때문에 가까운 공장을 선호한다”며 “고가도로가 막히면 실제 많은 디자이너들이 서부지역 거래처를 동대문과 가까운 곳으로 거래선을 옮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봉제공장 사업주들은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과 관련, 서울시나 자치구로부터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며 현장을 무시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 이뤄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아현동에 공장이 있는 백경석 마루패션 대표는 “시나 구청은 한번도 우리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며 “모두 세금을 내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지역 경제가 무너지면 지자체나 국가차원에서도 큰 손실 아니냐”고 지적했다.
지난달 19일 ‘서울역 7017 프로젝트’ 발표 이후 중구와 마포구, 용산구 3개구 주민들은 ‘서울역 고가 공원 반대 3구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대체도로 건설과 서부역세권 사업 추진 등 대안을 마련 중이다. 봉제공장 사업주들 역시 봉제지원센터 같은 지원 시설을 만들어 공장들 일감이 끊기지 않고 디자이너들과 긴밀히 업무 협조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