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가 공원화 후폭풍 거세다 - 교통지옥에 단납기 포기할 판… “마른하늘에 날벼락”
서울 고가 공원화 후폭풍 거세다 - 교통지옥에 단납기 포기할 판… “마른하늘에 날벼락”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태 락어패럴 사장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며 유망 디자이너 브랜드들에 여성복을 납품하고 있다. 그는 작년 11월부터 이유도 없이 매출이 급전직하로 떨어지기 시작해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했다. 설상가상으로 올 1월 매출은 이전과 비교해 반토막이 났다. 지난 몇 달간 이리저리 뛰며 원인을 파악해 보니 그 전달인 10월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역 고가 공원화 계획이 직접적 원인이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보통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그는 지난 1월 서울봉제산업협회 서부 회원사들과 함께 실태 파악에 나섰고 다른 대부분 사업주들도 매출이 크게 격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가 지난 2주간 회원사들과 발로 뛰며 조사해 보니 서부 봉제벨트 봉제공장 숫자는 1000여개가 넘고 관련 종사자만 5000명에 달했다. 부양 가족까지 따지면 수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봉제로 먹고 살고 있다는 답이 나왔다.

평균적으로 6명 정도 고용하는 본공장 형태가 690여개, 부부같이 2인 가족이 일하는 가내수공업 형태 하청업체가 415개로 파악됐다. 실태 조사를 해 보니 서울시의 무성의에 부아가 치밀었다.

“지난 1월 만리동에서 동대문 근처 신당동으로 이전한 공장만 17개나 됐다. 어차피 동대문 쪽으로 갈거 고가가 막히기 전에 미리 옮겨 간거였다. 작년에 이 지역에서 무허가 봉제공장 양성화를 위한 사업자등록증 캠페인을 펼쳐 약 40여곳이 사업자로 전환했다. 이제 우리도 법에 따라 세금을 내고 정당한 기업 활동을 하고 있는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일대 봉제공장 사업주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오질섭 탑패션 대표는 “영원무역 사옥 인근이 재개발되면서 주변에 있던 공장들은 길 건너편으로 이사를 왔는데 오자마자 또다시 이사를 준비해야 할 판이다”고 허탈해 했다.

이상태 대표는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시나 자치구는 우리 의견을 듣는 공청회도 한번 안 열었다”며 “얼마전 아현고가가 철거되면서 차량 정체가 심해졌는데 서울역 고가까지 막히면 이제 여기는 교통지옥이 된다. 서울역 고가를 통하지 않고 염창교로 돌아오면 약 30분 정도가 더 걸린다”고 말했다.

이곳 봉제공장들 매출 하락은 진입로 폐쇄로 인한 접근성 저하가 직접적 원인이 됐다. 단납기로 빠르게 돌아가는 동대문 시장 시스템에서 이는 치명적인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특히 동대문 디자이너들이 주로 오가는 오후 5시 염창교 일대는 직장인들 퇴근 차량까지 몰려 교통 지옥으로 변하는 곳이다.

뿐만 아니다. 봉제공장과 동대문 시장을 오가는 의류 제품 수송용 탑차의 납기 지연은 물론 공장당 하루 5~6건씩 원부자재를 실어 나르는 퀵서비스는 아예 슬로우서비스가 돼 버리고 만다.

조봉기 강남패션 대표는 “우리는 오후 5~6시까지는 물건을 받아야 되는데 길이 막힐수록 작업 시간이 더 늦어진다. 야근을 매일 밥먹듯이 해야할 판이다. 동대문은 납기가 짧아 당일치기 납품도 많은데 이제 이런 일감은 잡지도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동성이 떨어짐으로써 경쟁력이 저하되고 이는 동대문 일대 봉제공장과 시간 싸움에서 지게 된다는 뜻이다. 아현동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백경석 마루 대표는 압박감이 심하다고 말했다. “예전에 고가도로 버스 노선이 중지되면서 피부로 느낄만큼 매출에 타격이 왔다. 시장은 딜레이가 용납 안된다. 회현동에서 택시타고 오면 시간이 두배로 걸린다. 택시비도 더 나온다. 누가 여기에 일감 주겠다고 오겠는가.”

그렇다고 서부 봉제벨트에서 떨어져 나간 일감이 창신동이나 신당동 공장들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다. 한 봉제공장 사장은 “여기서 줄어든 일감이 동대문 창신동 일대로 몰리면서 물량을 무기로 공임을 깎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아직 서울역 고가 공원화까지는 시간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공장들이 이사를 하고 디자이너들이 거래처를 바꾸는 까닭은 뭘까? 제품 생산이 안정되고 오더를 내리는 디자이너와의 협조가 원활하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봉제공장에 당장 오더를 낸다고 원하는 수준의 품질이 바로 나오는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들은 서부지역 봉제공장이 망하면 지역 경제 상권이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만리동, 효창동의 뒷골목을 가보라. 공장에 밥대는 식당들, 상점들 모두 함께 공멸한다. 대로변에서 장사하는 점포를 제외하고 공장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서민형 근린생활 업종 종사자들은 모두 문 닫게 된다.”

실제 도시정비 사업으로 깔끔하게 변모한 청계천변이나 기존의 고가를 철거한 지역은 임대료와 부대비용이 상승함에 따라 소형 점포들은 외곽으로 밀려나고 막강한 자본을 가진 대형 업체들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소규모로 이뤄지는 봉제산업 특성상 종사자들은 공장 근처에서 집을 얻어 살고 있다. 서부지역뿐만 아니라 동대문 창신동, 숭인동, 보문동, 신당동 같은 지역도 대부분 직장과 일터가 한 동네인 경우가 태반이다. 조봉기 대표는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대부분 공장 가까운 곳에 집을 얻는다. 일 끝나고 쉬다가도 사고 터지면 해결하러 바로 뛰어 나가야 된다. 거래처에서 급하게 물건 뽑아 달라고 하면 무조건 일하러 나가야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공장 이전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공장 사업주들은 거시적인 차원에서 결정된 정책을 뒤집기 힘들다면 최소한의 대안은 마련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태 대표는 “고가도로 이용이 불가능해지면서 일거리가 끊기게 생겼으니 디자이너들을 유인하고 공장들이 이를 만회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동대문에는 각종 지원센터들이 많이 있지 않나. 이쪽에는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봉제지원센터 같은 시설을 만들어 공장 경쟁력 향상을 지원해 주고 디자이너들이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명 : ㈜한국섬유신문
  • 창간 : 1981-7-22 (주간)
  • 제호 : 한국섬유신문 /한국섬유신문i
  • 등록번호 : 서울 아03997
  • 등록일 : 2015-11-20
  • 발행일 : 2015-11-20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 234 (밀스튜디오빌딩 4층)
  • 대표전화 : 02-326-3600
  • 팩스 : 02-326-2270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종석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 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김선희 02-0326-3600 [email protected]
  • 한국섬유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한국섬유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