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디자인 경영에 삼성魂을 담다
삼성그룹에서 디자인 경영은 이제 철학으로 자리잡고 있다. 삼성의 휴대폰과 TV가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비결도 바로 디자인 경영에 있다. 삼성이 디자인 경영을 본격화한 것은 13년 전.1993년 신경영 선언을 통해 양(量)에서 질(質)위주로 경영 패러다임을 바꿀 것을 지시했던 이건희 전 회장은 1996년 ‘디자인 혁명’을 선언했다. 그는 “우리 상품을 보면 ‘디자인 마인드’가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아직도 제품을 기술적으로 완성한 뒤 거기에 첨가하는 미적 요소 정도로 디자인을 여기고 있다”고 경영진을 질타했다. 단순히 제품 외형을 예쁘게 치장하는 게 아니라 삼성만의 혼을 담은 디자인을 만들어내라는 요구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5년.이 전 회장은 제2의 디자인 혁명 선언이라 할 수 있는 ‘밀라 노 선언’을 발표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그룹 각 계열사 최고경영진을 불러모은 그는 “CEO부터 현장 사원까지 디자인의 의미와 중요성을 새롭게 재인식해 세계 일류의 명품을 만들 것”을 강조했다. 독창적인 디자인과 사용자 편의성을 높인 제품 개발,디자인 핵심인력 확보,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 조성 등이 밀라노 선언에서 나온 전략이었다.
삼성은 이런 디자인 철학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디자인 연구조직도 만들었다. 대표적인 게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2001년에 만들어진 이 조직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바를 미리 파악한 뒤 이를 토대로 제품을 개발하는 곳이다. 삼성전자 휴대폰으로는 처음으로 누적 판매량 1000만대를 돌파했던 ‘T100’(일명 이건희폰)과 보르도 LCD TV 등이 이곳을 통해 개발됐다. 삼성은 또 미국(LA,샌프란시스코),영국(런던),이탈리아(밀라노),일본(도쿄),중국(상하이) 등 5개국에 글로벌 디자인연구소를 두고 있다.
디자인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관심과 풍부한 연구조직은 삼성 제품의 경쟁력을 일거에 높이는 원동력이 됐다. 보르도 LCD TV,블루블랙폰,햅틱폰 등은 모두 이런 디자인 철학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 권위의 디자인 공모전인 IDEA(Industrial Design Excellence Awards)에서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총 35개 제품으로 수상했다.
현대·기아자동차, ‘DNA 만들자’ 디자인 혁명 올인
현대·기아자동차는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품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디자인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자동차 성능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특색 없는 디자인 탓에 고유 고객층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최근엔 부품 모듈화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기술력이 점차 평준화됨에 따라 디자인 경쟁력 확보가 차별화를 위한 핵심 요소가 됐다.
현대차는 2005년부터 본격적인 ‘디자인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세련되고 당당한 이미지’를 디자인 컨셉트로 내걸고, 쏘나타·그랜저 등 전 차종에 현대차만의 디자인 DNA를 심 는 데 주력했다.
쏘나타는 절제된 세련미를 강조한 모던한 스타일을, 그랜저는 역동적 이미지와 풍부한 볼륨감을, 아반떼는 물이 흐르는 듯한 유선형 디자인을 통해 젊은 이미지를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차체뿐만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에도 동일한 디자인 코드를 접목했다.
현대차는 디자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내의 남양연구소를 비롯해 미국 캘리포니아,독일 뤼셀스하임에 디자인 전문 연구센터를 설립해 각 지역 소비층이 선호하는 차량을 디자인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현대차와의 차별화와 브랜드 정체성 확립을 위해 2006년 ‘디자인 경영’을 선포했다. 기아차는 같은 해 7월 아우디의 TT와 폭스바겐 뉴비틀을 디자인한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총괄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은 곧바로 ‘직선의 단순화’를 모토로 내걸고 본격적인 디자인 경영에 착수했다. 기아차가 2008년부터 내놓은 신차엔 그의 디자인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지난해 1월 선보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모하비는 곧게 뻗은 후드와 그릴을 통해 강인하고 터프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또 6월 출시한 로체 이노베이션은 호랑이의 코와 입을 형상화한 라디에이터 그릴을 적용해 날렵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세련미를 가미했다.
로체 이노베이션은 ‘피터 효과’에 힘입어 구형 로체보다 2배 이상 판매량이 늘었다. 지난해1~5월까지 판매량은 월평균 2711대에 그쳤으나 로체 이노베이션이 나온 6월(5117대)부터는 판매량이 뛰면서 7월엔 7000대를 넘어섰다.
기아차는 2008년 6월 미국 디자인센터를 완공함에 따라 아시아(한국)와 유럽(독일),북미(미국)를 잇는 글로벌 디자인 네트워크를 완성했다. 남양 기아디자인센터가 디자인경영의 구심점 역할을 맡고 유럽과 미국의 해외 디자인 센터에선 글로벌 최신 트렌드를 수집하고 현지인 입맛에 맞는 디자인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LG그룹, 디자인으로 고객 감성 잡아라
“고객의 감성을 사로잡는 디자인을 통해 LG가 최고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2006년 신년사를 통해 ‘디자인 경영’을 천명했다. 2006년 이후 구 회장은 매년 LG전자와 LG화학의 디자인센터를 방문하며 계열사의 디자인 전략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구 회장의 ‘디자인 경영’골자는 디자인에 대한 투자확대와 슈퍼디자이너 제도 등을 통해 디자인 인력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슈퍼디자이너제도는 구 회장이 2006년 LG전자 디자인센터를 방문, “디자인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이후 LG전자가 이 제도를 도입했다. 슈퍼디자이너는 임원 수준의 대우를 받고 디자인과 관련한 의사결정에도 참여한다. 트롬 세탁기를 디자인한 성재석 책임연구원(41)과 비너스폰을 만든 김영호 책임연구원(43),샴페인 잔의 곡선을 홈시어터 제품에 반영한 배세환 책임연구원(41) 등 LG전자에만 5명의 슈퍼디자이너가 있다.
LG그룹은 개별 제품을 예쁘게 디자인하는 것에서 한발 나아가 주거공간과 제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다. 2007년 7월 LG전자,LG화학,LG생활건강 등 3개사가 참여하는 ‘LG디자인협의회’를 만들었다. 디자인협의회는 미래 주거공간의 디자인 트렌드를 분석하고 가전제품과 인테리어제품 생활용품의 디자인을 미래 트렌드에 맞게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디자인 경영을 강조한 이후 계열사들의 디자인 역량이 크게 향상됐다는 것이 LG그룹의 평가다. 국내외에서 디자인 관련 상을 수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증거다. LG 계열사들은 국내외에서 2007년 총 80건의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LG 계열사들이 받은 디자인상은 2005년 41건,2006년 58건 등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2008년 초 지식경제부 ‘차세대 디자인 리더 31명이 뽑은 아트디자인 베스트 5’에는 LG전자 프라다폰이 1위,LG화학 붙박이장 슬라이딩 도어가 3위,LG전자 휘센에어컨이 4위에 올랐다. LG 계열사의 제품이 전체 디자인상의 60%를 차지했다.
세계 양대 디자인상인 ‘레드닷 디자인상(Reddot Design Award)’과 ‘iF디자인상(International Forum Design Award)’ 수상작들 상당수가 LG 계열사의 제품이다. LG전자는 독일 에센 디자인센터가 주관하는 ‘2007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프라다폰이 대상을 받는 등 총 29개 제품을 수상작 리스트에 올렸다. 독일 산업디자인협회가 주최하는 ‘iF 디자인 어워드 2007’에서도 21개 제품이 디자인상을 받았다.
GS그룹, 공간·서비스까지 디자인하라
“GS 브랜드를 자타가 공인하는 ‘밸류 넘버원’으로 육성해 나가야 한다. 이 모든 활동은 기업 본연의 성과로 뒷받침된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회의 때마다 임직원들에게 브랜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디자인 경영을 위한 노력을 당부하며 강조하는 말이다. GS는 2005년 출범 이후 GS만의 차별화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디자인 경영을 강화하고 본격적인 브랜드 가치 제고에 힘을 쏟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GS칼텍스는 석유제품의 물리적 특성에 따라 제품 용기나 포장 등의 디자 인뿐만 아니라 제품에 부가되는 서비스 디자인에도 고객들의 잠재적인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고급 휘발유 ‘킥스 프라임(kixx prime)’이다. GS칼텍스는 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