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가상각이 끝났는데도 제조원가가 판매가의 98%까지 올라갑디다. 항우장사라 한들 적자를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해외에서 살길을 찾아보려 합니다.”(A 사장)
“요즘처럼 제직 협력공장 찾는 데 힘든 경우는 없었습니다. 경기가 좋아 협력업체 수배가 어려운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지금 상황은 이게 아니에요. 아예 공장을 돌리려 하지 않습니다.”(B 사장) 마른 수건 짜듯 바이어 가격은 떨어지기만 한다. 물량까지 줄여나가 감당을 더 어렵게 한다. 문제는 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롯트 다품종 주문에 가격은 싸게, 품질은 높여 달란다. 바이어 주문에 응할라 치면 허리가 휠 정도다. 섬유산업 곳곳에서 공장 문 닫겠다는 아우성이 빗발친다. 섬유산업에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채 하나 둘 제조업 포기사태가 줄을 잇는다.
간판 굴뚝산업 섬유산업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치솟는 제조원가 충격 탓에 공장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폭만 확대되는 데 공장 돌리면 되레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섬유산업이 밑바닥부터 붕괴의 굉음을 드높인다. A·B 두 사장의 말은 지금 섬유산업을 대변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섬유산업의 엔진이 동력을 잃어간다. 자칫하면 올 스톱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돈다. 너무 과장된 게 아니냐는 반론도 있지만 조바심 타는 속내까지 숨기기가 쉽지는 않다. 애써 말하는 게 레드오션 상황에서도 블루오션을 누비는 업체들이 많다는 정도다. 사실 이 말은 틀린 게 아니다. 오히려 산업의 발전적인 측면에서 보면 대단히 바람직스럽다. 다만 빙산의 일각만 아니길 바랄 뿐이다. A사장은 국내서 손꼽히는 고부가가치 화섬 직물업체 대표다. 회사 이니셜만 대도 단박 누구라고 인지할 정도다.
그렇지만 쌓여가는 적자 앞에 개발의 귀재라는 그 마저 더 이상 국내 생산은 못하겠다며 해외생산에 눈을 돌린다. 봉제에 이어 밀 기반까지 엑소더스 사태를 맞았다. 업 미들 스트림의 생산설비 해외이전은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크게 다르다는 데 있다. 자발적인 과거의 투자와 등 밀려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현 상황은 비교할 수가 없다.
B사장은 모직물 전문 원단업체 대표다. 그가 개발한 원단은 국내 신사복 브랜드 모두가 찾을 정도로 독보적인 품질을 자랑한다. 그렇지만 그는 요즘 큰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납기를 맞출 수가 없어서다. 애써 오더를 받았지만 제직업체 구하는 게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라는 하소연까지 토해 낸다. 브랜드의 주문은 까다로워지는 데 납기 맞추기가 초비상 사태다. 소위 잘 나가는 원단업체들 마저 공장 수배하랴 하루 25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자칫하면 브랜드에 납기 클레임을 당하는 불상사가 줄 이을 전망이다. 섬유산업 전반에 납기 스트레스가 몰아치는 상황을 맞았다.A·B 두 사장이 겪는 현실은 단지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세계경기 침체 탓에 섬유수출이 8개월 연속 전년동월대비 역성장 레이스를 이어간다. 수출 평균단가 역시 하락세를 멈추지 않는다. 섬유산업의 엔진이 식어가는 게 전조가 아니라 현실로 다가왔다. 제직공장이 살아야 업·다운 스트림이 원활히 돌아간다. 허리가 튼튼해야 라는 뜻은 사람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섬유산업도 이에서 자유롭지가 못하다.
제직의 엑소더스나 납기 스트레스가 뜻하는 의미는 다름 아니다. 국내 섬유산업의 제조기반이 바람 앞의 등불신세나 다를 바 없다. 불황속에서도 잘 나가는 기업은 많지만 현실과의 싸움은 크게 다를 바 없다. 답은 다름 아니다. 제조기반 없는 한국섬유산업, 미래는 더더욱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