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스무 살에 취업해 미얀마의 한 의류봉제 공장을 일터로 가진 A씨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일을 한다. 월~금요일은 하루에 1시간~1시간30분, 주말인 토요일에는 통상 3시간을 초과 근무한다. 이렇게 해서 받은 급여 중 5만짯(약 5만원 안팎)을 와케마(wakema, 미얀마 남서부에 위치한 에이야르와디의 작은 마을)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고 나머지 4만짯은 방세와 밥값으로 쓴다. 원하지 않으면 초과 근무를 안 해도 된다. (overtime is optional) 그러나 한 달 생활비로는 충분치 않아 지출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작업장에는 선풍기가 돌아가지만 우기에는 많이 더워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는 현장 책임자(line supervisor)에게 말을 해 공장에 상주하는 의사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상태가 심각하면 인근 병원으로 가기도 한다. 최소 6개월 이상 일을 하면 병가나 연차 휴가도 허용된다. 여성의 경우는 45일간의 출산 휴가를 가질 수 있다.그런데 A씨가 일하는 공장에는 학생 신분의 15~17세의 미성년자들도 있다. 대부분 부모가 농사에 종사하는 집 아이들이다. 이들은 보조로 다른 성인 근로자들과 똑같은 시간을 일한다.
오늘자(30일) 본지 3면 기사인 미얀마 인권실태 조사 보고서 ‘Under Pressure’에 실린 내용 중 일부이다. 미얀마 노동인권 단체인 ALR(Action Labor Rights)가 작년 4~6월 사이 한국계 의류봉제 공장 39곳의 근로자 1200여명을 인터뷰하고 전문가 의견을 취합해 만든 자료다.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실제로는 지난 3월에 발표됐음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현지 진출 기업들 조차 이 보고서의 존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KTNC WATCH)에 따르면 미얀마 한인봉제협의회는 불과 2주전 ALR측에 반박 자료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는 지난 수년간 해외에 진출한 우리 의류봉제기업들의 노동 인권문제를 심도 있게 들여다 보고 있는 한국의 노동인권감시 NGO다. 의류봉제 분야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과 데이터가 쌓여 있다는 점에서 우리 업계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미얀마 인권실태 조사 보고서 발간
초과 근로 시간 법규정 위반 지적
현지 한인봉제협의회 ‘사실과 다르다’ 반발
韓벤더는 바이어 ‘오딧’ 최고 준수기업
양측 의견 조율 과정에 관심 쏠려
그런데 미얀마에 진출한 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보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작년 미얀마 정부가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면서 근로자 임금은 평균 50% 상승했고 통상 임금의 2배에 달하는 초과 잔업 수당으로 인해 일주일에 16시간씩 잔업을 시킬 이익 구조가 안 나온다는 것이다. 주 6일을 일한다는 가정하에 16시간을 넘으려면 최소한 하루 잔업이 2.5시간은 넘어야 한다. 잘 해봐야 옷 한 장 납품 가격이 몇 천원에 불과한데(1~2000원 짜리 옷도 많다고 한다) 이렇게 시간당 2배의 임금을 주고서는 도저히 납품 가격을 맞출 수 없다는 주장이다. 사실 미얀마를 다른 동남아시아 봉제 생산 국가와 똑같은 기준으로 바라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해외 진출한 의류봉제기업들은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바이어들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공장 환경을 조성한다. 일명 ‘오딧(audit)’이라고 부르는 작업 표준에 따라 의류 납품이 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선다. 이 기준이 가장 강력한 국가가 바로 미국인데 미얀마에서 생산되는 의류는 대부분 EU와 일본으로 수출되는 까닭에 공장 근로 환경이 다소 쳐지는 면이 있다고 한다.
미국 바이어들은 통상 social, health, safety와 관련된 철저한 컴플라이언스 오딧(compliance audit)을 실행하는데 만약 이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악질 공장’으로 낙인 찍어 거래를 완전 차단한다. 미성년자 취업, 과도한 노동 착취 등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 대단히 크리티컬(critical) 한 사안이다. 화장실 변기 숫자까지 체크하는 바이어도 있다고 한다.믿을 수 있는 현지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얀마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근로환경과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업체들은 사소한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여론의 타겟이 되곤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 미얀마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모 기업 대표자의 한숨이 귓전을 때린다. “보고서 내용에 공장이 너무 덥다는 내용이 있더라. 우리도 생산성 올리기 위해 에어컨을 둬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지만 대안이 못 된다. 납품가는 정해져 있는데 에어컨까지 돌려가며 일할 수는 없다. 한국 직원들도 현지 근로자들과 똑같이 더운 공장 안에서 같이 일한다. 이런 문제까지 거론하면 공장 하지 말란 얘기다.”
외국을 나가보면 봉제공장 지붕에 워터 쿨링 시스템을 설치한 곳이 많다. 지붕에서 물을 흘려 내림으로써 공장 내부 온도를 낮추는 설비다. 이것만 해도 설치비가 수천 만원이 넘는다. 그러나 미얀마 뿐만 아니라 봉제를 주력으로 하는 개도국 어느 지역에서도 에어컨이 설치된 봉제 공장은 본 적이 없다.
저작권자 © 한국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