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기계 출발에는 영원무역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1989년 나원기계 설립 당시를 서기원 대표는 이렇게 회상했다. “성기학 회장님이 심실링기 개발을 의뢰했다. 아마 영원무역 납품이 없었으면 한국서 생산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거다. 방글라데시 등 영원무역 거의 대부분 봉제 공장에는 우리 기계가 들어가 있다. 지금은 노스페이스를 비롯, 나이키 등 국내외 봉제 기업이 주요 거래선이다.”
심실링기와 무봉제기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나원기계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 회사가 최근 대형 사고를 쳤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2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부응해 단기간에 방호복 생산에 필수 장비인 심실링기 1000여대를 납품하면서 한중 양국간 민간 가교 역할까지 하고 있다. 5월 연휴가 끝난 직후인 지난 6일 경기도 파주의 나원기계 본사에서 서기원 대표를 만났다.
-심실링기 수출 배경과 과정이 궁금하다.
“2월 8일 우리 중국 법인 청도나원기계유한공사로 중국 중앙정부의 공문이 접수됐다. 코로나로 인해 의료용 방호복이 필요한데 적극적으로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현지 우리 공장이 20년이 넘다 보니 중국에서 위기 대응 매뉴얼로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1200대 요청이 들어왔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관련 부품을 많이 확보해 둔 상태였는데 그래도 이만한 물량은 맞출 수 없어 우선 550대를 납품했다. 기존 거래 업체들에 양해를 구하고 한중 양쪽 공장에서 우선적으로 요청 물량을 실어 냈다.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 각각 40피트 컨테이너 1개씩을 한달 보름간 중국으로 보냈다. 3월 13일 기준으로 550여대를 공급했다. 지금도 계속해서 공급하고 있다. 오늘(6일) 기준 약 1000여대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셧다운에 들어간 상태였다. 부품이나 인력 운용이 쉽지 않았을 텐데.
“핵심 부품은 파주 본사에서 모두 생산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파주 공장 직원 25명은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엄청나게 일했다. 중국에서는 현지 위생 관련 공무원들이 생산에 투입될 우리 직원 70여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해 빠르게 가동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중국 세관까지 나서 핵심 부품이 신속하게 통관될 수 있도록 도왔다.
당시 중국은 공장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춘절 연휴가 2주나 지속되고 이동마저 막혀 있었다. 설령 인력이 있더라도 현지 기업은 부품 조달길이 막혔다. 우리가 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의료용 방호복은 하루 10만장이 필요한데 조달할 수 있는 양이 3만장 밖에 안된다고 하더라.
방호복이 없어 의료진이 병원 출근도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심실링기 1대는 하루 100여벌을 생산할 수 있다. 550대면 5만5000장을 감당할 수 있는 물량이다.”
-중국 정부가 많이 고마워하고 있다고 들었다.
“중국 비즈니스에 대해 크게 배웠다. 신뢰의 힘에 많이 놀라기도 했다. 납품할 때 코로나로 인해 부품 조달이 쉽지 않아 원가가 많이 높아졌는데 정부는 두말 않고 납품가를 20%나 높여 받아 줬다. 1차 납품이 끝난 3월경 정부로부터 적극 협조해 줘 고맙다는 감사장을 받았고 고마움의 표시로 마스크 1만장을 선물로 보내왔다.
현지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취재를 왔다. 그때 우리는 청도 공장 증설을 계획 중이었는데 중국 정부가 선뜻 무상 지원을 제안했다. 160만불을 들여 라인을 증설하고 마스크 완전자동화 기계 생산 라인도 들일 예정이었는데 투자비의 50%를 무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나원기계의 중국 청도 법인이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해 고맙다는 뜻도 포함됐다.
이 지원을 받아 현재 증설은 70%가량 완료했다. 증설이 끝나면 생산 캐퍼를 30% 올릴 수 있다. 마스크 생산설비 라인이 완공되면 정부에서 특별 구매하겠다는 의사도 전해왔다.”
-다른 지역 수출은 어떤가.
“중국 납품 물량을 돌리면서 인도 선적분 150여대도 추가로 생산하고 있다. ”
-나원기계 심실링기와 무봉제 설비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심실링기는 장당 1~2만원 하는 의료용 방호복뿐만 아니라 1벌에 수백만원 하는 핵방제복 생산에도 필수 설비다. 이런 곳에도 우리 장비가 들어가 있다. 심실링과 무봉제 관련 모든 생산용 설비의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생산하고 있다.”
-코로나로 한국 섬유패션기업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우려가 많다.
“코로나 사태가 터질 때 수요를 내다보고 필요한 원자재를 미리 비축했다. 다른 곳은 많이 어려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과 상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는데…여타 해외 바이어들은 오히려 우리 기업들을 궁지로 몰고 있다. 미주지역 바이어들은 이미 발주된 오더까지 취소해 어려움이 더해졌을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 등 해외 바이어는 우리에게 일방적인 ‘갑’의 입장이었다. 상생의 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단순 노동을 제공하는 곳으로 여기지 않았나 싶다. 노동을 제공할 곳은 어디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우리 기업들이 너무 믿고 의지해 온 것은 아닌가. 우리 산업이 바뀌어야 한다. 도둑을 맞으면 도둑 나쁘다 하지 말고 문을 뜯어 고쳐야 한다. 이번 기회에 우리 섬유산업도 위기에 대처하고 상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쪽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번 일을 두고 “(나원기계가) 한국 파주에서 중국 청도까지 양국에서 바람 한점 샐 틈 없는 코로나 방호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기원 대표는 세계적 수준의 심실링기와 무봉제 생산설비에 이어 완전 자동생산이 가능한 마스크 생산용 설비까지 개발을 마치고 방호설비 기업으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