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마, 가공에 물·에너지·노동량 적게 들고
21세기 플라스틱·합성섬유 대체 소재로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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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향후 10년 황마산업 성장률 30% 이상
커피자루 새활용 하이사이클이 한국 프라이탁
“황마보다 더 친환경적인 섬유는 없다. 자연은 이제 패션이 됐다.” 뉴욕 타임즈의 델리 주재 기자 샤미르 야시르는 2022년 10월 10일자 기사에서 인도황마공업협회 라가벤드라 굽타 회장 말을 인용해 최근 늘어나는 황마 수요 경향과 원인을 다뤘다.
전 세계 수요의 대부분이 인도 서부 벵골지역과 방글라데시에서 생산되고 있는 황마는 면보다도 훨씬 친환경적이다. 생육기간이 짧고 가공 공정에 필요한 물과 에너지 및 노동량도 훨씬 적기 때문이다. 황마잎은 수확 전에 식용 야채로 팔리고, 내부 줄기는 종이를 만드는 데에 쓰인다. 거칠다는 단점이 있지만, 내구성이 좋아 곡물 포장과 튼튼한 가방을 만드는 데 제격이다. 버릴 것이 별로 없는 순환자원이다.
지난 수십 년 황마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전 세계를 휩쓴 플라스틱과 비닐 등 값싼 포장재의 공세 앞에 황마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수요가 줄자 가격은 떨어지고, 고막을 찢는 소음과 찌는 듯한 더위로 열악한 작업환경을 버텨낼 젊은이들은 없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정부는 설탕이나 쌀을 포장할 때 황마 사용 의무비율을 법으로 강제하거나, 가공 기계 지원과 공장 환경 개선 등으로 황마 생산량과 노동자 임금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 찾는 이가 적을 때 그 산업을 살릴 묘안은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런 흐름이 급변한 것은 플라스틱이 환경과 생명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낙인찍힌 뒤부터 시작됐다. EU 국가들이 2022년부터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을 금지했고, 수출포장 재료가 서서히 예전의 황마로 대체되고 있다. 각국 경제연구소들은 향후 10년 동안 황마 산업 성장률이 30%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19세기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황금기를 구가했던 인도 벵골지역 황마 공장 기계들이 또다시 굉음을 뱉어낼 준비를 한다.
우리나라는 생산국이 아니어도 황마를 쉽게 만날 수 있다. 100% 수입하는 커피의 원두 포대가 바로 황마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작년 커피 수입액이 1조 원을 돌파했다. 세계 10대 커피 수입국에 이름을 올렸다. 웬만한 유럽 국가들보다 더 커피를 즐긴다. 원두를 볶거나 커피를 내리는 고소한 냄새는 매장에 손님을 끌어들이는 마케팅 기법이다. 하지만 커피를 담았던 황마 포대는 빈티지 인테리어에 쓰이는 일부를 빼면 대부분 쓸모없어 폐기되는 아까운 자원이다.
하이사이클 김미경 대표는 버려지는 커피 원두 포대로 가방과 화분 등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업사이클 기업을 2013년에 창업했다. 어릴 때 조개껍데기나 조약돌을 주워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드는 취미가 있던 김 대표는 미술대에 진학해서는 버려지는 소재를 조합해 입체 작품을 만드는 ‘아상블라주’를 즐겼다. 커피 원산지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매개로도 안성맞춤인 커피 자루를 비즈니스 소재로 발견했으니 우리 모두에게 여러모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원래 황마는 면과 함께 1, 2차 세계대전 중 부상병들의 상처를 감싸는 붕대 원료로 쓰이면서 대량 생산됐다. 이제 21세기에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플라스틱 포장재와 합성섬유를 대체하며 지구의 상처를 감싸줄 소재로 다시 조명받고 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커피 자루로 재생 원단을 만드는 공정은 신소재를 사용할 때의 3%, 일반 합성섬유의 1.6% 정도의 이산화탄소만 발생시킨다고 발표했다.
오는 11월에는 충남 부여에 커피 자루를 재생하는 하이사이클 원단 공장이 문을 연다. 순환자원의 확보에서부터 가공 보관 유통까지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1993년 스위스에서 시작된 업사이클 기업 프라이탁은 대형트럭 방수포를 가공해 명품 가방을 만들어낸다. 효율적 원료 확보와 가공 유통의 체계화는 그들의 세계적 경쟁력이다. 하이사이클을 한국의 프라이탁이라고 부를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