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사람을 살리는 길, 자연을 살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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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으로 대장 치료제 만들고 병원에 공급
정원에 퇴비로 뿌리는 부엽토 변기

낡은 아파트, 바람구멍 내고 자연과 공존
물사용 최소화, 똥 퇴비되는 비비화장실
똥이 약이 되는 시대다
미국 보스톤에 오픈바이옴(OpenBiome)이라는 ‘똥은행’이 있다. 이 은행은 건강한 사람들의 똥을 기증받아 불순물을 걸러내고 만든 대장 치료제를 매년 1만여 개 이상 병원에 공급한다. 2008년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폐렴 치료 후 항생제 부작용으로 15분마다 설사를 해서 생사의 기로에 있던 환자가 다른 사람의 똥을 대장에 이식한 후 이틀 만에 살아났던 기적으로부터 출범한 비영리단체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이 분변미생물이식법을 승인한 후 전 세계 많은 병원과 제약회사들도 후속 연구를 시작해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관련한 신약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100조 개가 넘는 대장 내 세균 생태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더 많다고 하니 앞으로 관련 분야에 대한 탐구는 인류 수명 연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은 평소 하찮게 보던 것도 급히 찾으면 없다는 뜻이지만, 이처럼 똥이 약이 되는 시대에는 새로운 속담이 나올 법도 하다. 
자연에 직선은 없다고 주장한 훈데르트 바서의 곡선으로 이루어진 건축물. 제주도 동쪽의 작은 섬 우도에 세워진 훈데르트 바서 공원 전경.
자연에 직선은 없다고 주장한 훈데르트 바서의 곡선으로 이루어진 건축물. 제주도 동쪽의 작은 섬 우도에 세워진 훈데르트 바서 공원 전경. 사진=윤대영
화가이자 건축가인 훈데르트 바서(1928~2000)는 자연을 닮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1986년 작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는 오스트리아 빈 시내의 낡은 아파트를 위해 서로 다른 색과 질감으로 칠하고 지붕과 벽면에 실제 나무가 자라도록 고쳤다. 서민들의 숨 막히는 주거 환경에 바람구멍을 내고 자연과 공존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가 남긴 환경과 관련된 작품은 세계 여러 곳에 있지만, 그의 생태주의 여정이 마지막으로 가 닿은 곳은 의외로 보잘것없는 작은 화장실이었다. 그는 용변을 본 후 흙으로 덮어 냄새를 없애고 정원에 퇴비로 뿌리는 부엽토 변기를 만들었다. 그가 탐구한 똥은 나무를 살리는 자원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유언대로 뉴질랜드에 있는 자신의 정원 튤립나무 아래에 거름으로 묻혔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공과대학 조재원 교수는 비수세식이면서 냄새 없는 ‘비비화장실’을 만들었다. 화장실 이용자들에게 에너지 공급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똥본위화폐’도 개발했다. 분리된 오줌은 액비가 되고, 미생물에 분해된 똥은 퇴비와 바이오가스로 재이용된다. 물 사용량을 최소화하여 미래 건축 기준에 적용할 친환경 화장실로 평가받는다.  조 교수는 똥을 통해 과학의 영역을 확장한다. 변기는 냄새나는 것, 화장실은 냄새나는 곳이라는 편견을 바꾸고자 한다. 똥은 에너지이자 경제라는 생각이 가능하도록 과학과 언어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훈데르트 바서와 마찬가지로 조재원 교수에게 똥은 폐기물이 아니라 순환하는 자연이다.
비비화장실과 똥본위화폐를 소개하는 과학+환경 융합 공연 실황모습. 사진= UNIST 조재원 교수
비비화장실과 똥본위화폐를 소개하는 과학+환경 융합 공연 실황모습. 사진= UNIST 조재원 교수
미국 극작가 줄리아 로젠블라트(Julia ROSENBLATT)는 똥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대본을 썼다. 우연히 한국에서 만든 비비화장실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과학과 연극을 융합하는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 탱크(The Tank)의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 12월 초 공연된 Science in the theatre Festival에서 이 연극은 공연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우리 조상들은 환자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똥의 색깔과 냄새를 살폈다. 영화 ‘광해’에는 가짜 왕 이병헌이 싼 똥을 의관이 조심조심 다루며 가져가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나온다. ‘더러운 똥’이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되는 순간이다. 실제 동의보감 탕액편에는 흰 개의 똥을 태워 술에 타서 마시면 배가 딱딱하게 뭉친 것을 풀어주거나, 상처 치료에 좋다는 기록도 있다.

경기도 포천에서 생명역동농업을 하는 평화나무농장의 원혜덕 농부는 지난해 농사를 마무리하며 기후 위기로 황폐해가는 들판과 줄어드는 추수에 아쉬움을 절절히 표현했다. 그의 글 속에는 소똥에 대한 예찬이 들어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농장에서 나오는 풀과 밭에서 거두고 난 채소를 먹고 자란 소의 똥 모양이 잘 잡혀있고 윤이 난다고 했다. 농장의 소똥은 발효 후 퇴비가 되고 다시 밭으로 돌아가 채소를 키워내며 순환한다. 
똥으로 사람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버릴 것인가, 아니면 자연으로 되돌려 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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