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흔들던 ‘인더스트리4.0’
‘4차 산업혁명’ 현재 걸음마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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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메타버스와 인공지능 등 용어 난립
시대 관통 철학·가치 제대로 수립돼야
섬유패션 산업의 미래 경쟁력 대비 가능
2010년 독일에서 시작한 ‘인더스트리 4.0’이 섬유패션을 포함한 제조기반 산업의 화두가 되더니, 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언급된 ‘4차 산업혁명’은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대결로 불이 붙었다. 급기야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주요 공약으로 대두되면서 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모든 이들이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등을 도입한다고 서로들 난리였다.
섬유패션 산업도 원사에서 패션 유통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 영역에 걸쳐서 빅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공지능 활용방안을 만들고, 스마트 섬유·의류 등의 사물인터넷과 로봇을 활용한 스마트 팩토리 등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됐다.
그런데 또 2020년쯤부터 갑자기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한국어로 잘 번역도 안 되는 신조어가 등장하더니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처럼 다들 난리다. 안타깝게도 ‘인더스트리 4.0’이나 ‘4차 산업혁명’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하는 수준이고, ‘디지털 전환’은 새로운 것이 아닌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선진국들이 사용하던 용어다.
정부나 기업, 단체들이 너도나도 ‘디지털 전환’ 전략을 내놓았고,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2022년 2월 ‘섬유패션 디지털 전환 전략’을 내놓은 바 있다. 이번에 새로 주목받은 키워드는 메타버스(Metaverse)였고, 이에 따라 메타패션 등이 떴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나 변화를 반영해 계획과 전략을 수립하고 수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것들을 잘 모르는 채로 너무 급하고 가볍게 다룬다. 이런 기술이나 시대적 흐름의 변화는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엄청난 단어들이다. 이런 변화들이 나타나게 된 배경이나, 지향하는 가치와 패러다임의 변화, 사회 구성원들의 역할과 책임의 변화, 향후 전망 등은 매우 심오하고 인문학적, 사회적 합의, 법률, 교육 등의 기본부터 다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산업·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을 포함한 인간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섬유패션에서서 빅데이터가 과연 무엇인지, 인공지능은 어떻게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자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는 지, 면밀히 기초부터 공부하고 현황과 미래를 예측한 후 우리의 현실을 감안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마찬가지다.
소위 메타패션의 전문가로 자처하는 필자조차도 여기저기 전략보고서에 등장하는 메타패션이 뭔지 궁금할 지경이다. 메타패션을 통해 옷을 팔겠다는 것인지, IT 솔루션을 팔겠다는 것인지, 유통 브랜드나 플랫폼 산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인지, 디지털 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인지도 헷갈린다. 메타버스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 배경과 지향하는 가치에 개인들이 만드는 탈중앙화 세상이 있고, 주어진 세상을 거부하는 MZ 세대들이 있다. 가상세계를 통한 사회적 소통방식이 있고, 기술적으로는 3차원 콘텐츠 및 가상현실, 블록체인 등이 메타버스를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도 우리의 메타패션은 너무 급하고 가볍다.
이러한 큰 흐름에 대한 전략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기초부터 다져야 한다. 큰 흐름을 파악하고, 인문·사회학적 고찰은 물론 이 생태계를 구성하는 이들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단순히 3차원 아바타가 디지털 패션을 입고 메타버스에 진입하다고 해서 우리 섬유패션 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이런 변화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고 행해왔던 것들이 어떤 결과들을 내고 있는 지를 보면 우리의 과오를 알 수 있다.
우리의 섬유패션 산업은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많은 시도를 했지만 아직 그 흔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 하나가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무겁고 깊이 있게 제대로 된 전략을 수립하고 대응해야 한다.
흔히들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 즉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한다. 섬유패션 산업의 사회적 구성원 대부분이 여전히 ‘인더스트리 4.0’나, ‘4차 산업혁명’ 그리고 ‘디지털 전환’을 잘 모르면서도 안다고 착각하고, 잠시의 유행처럼 용어를 구사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한, 우리는 잠시 미래를 대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새 시대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