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입은이 메시지 전하는 효과적인 수단
정보와 지식을 시각화 하는 인포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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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대 직면한 문제 시각화
더 나아가 우리 관점 시각화
옷은 입은 이의 메시지를 주위에 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추위나 더위를 피하기 위한 본래 목적 외에도 옷이 담고 있는 색채와 패션 등 이미지가 타인에게 강력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과거 독일과 일본에서 파시즘 권력이 국민 동원을 위해 제국의 권위를 강화하고 상징하는 각종 장치로 제복을 이용한 것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강렬한 색채와 충격적 이미지로 독창적 그래픽디자인 세계를 선보여온 오스트리아 태생 스테판 사그마이스터(1962~)가 최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지금이 더 좋다(Now is better)’라는 전시를 열었다. 지난 20세기와 21세기의 전쟁과 부흥, 민주주의와 환경문제 등 시대의 화두를 담은 작품이다. 그는 자기 집 지하실 창고에서 잠자던 100여 개의 골동품 유화 위에 아크릴 등 혼합매체를 덧칠하여 근현대 사회경제의 변화상을 읽어내는 입체적 인포그래픽 작품을 탄생시켰다.
전시 개관일에는 자신이 디자인한 코트를 입고 방문객을 맞았다. 그의 회색빛 반코트 겉에는 살인 흉기가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고, 코트 속 핑크빛 안감에는 유럽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숫자가 나타난다. 1400년대부터 50년 단위로 2000년대까지 순차적으로 흉기 크기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 중세에는 타인의 손에 살해될 확률이 지금보다 20배나 높았던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어느 시대나 신문과 잡지, 방송을 보면 그 시대의 가장 심각한 사건이 머리기사에 오른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다.
언론은 밝고 따뜻한 소식보다 궂은 뉴스를 더 좋아한다. ‘뉴스는 역사의 초고(草稿)’라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지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의 말처럼 언론에 남은 기사를 모아보면 모든 시대는 암울한 기록의 연속이다.
부정적 언론 기사의 끝은 늘 부정적 전망으로 끝난다. 열악한 노동 현실, 남녀 차별, 환경파괴, 세대 갈등, 전쟁과 질병, 우발적 살인사건 등 인류가 겪고 있는 과거로부터의 유산은 미래를 어둡게 한다. 과연 이렇게 만들어진 여론과 인식이 그 시대를 특징지을 수 있을까. 사그마이스터는 그렇지 않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현재가 과거보다 훨씬 살기 좋아졌다는 여러 통계를 보여준다.
자연재해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는 1900년에 15만 명이 넘었지만, 100년 뒤인 2000년에는 7만 5천 명으로 줄었다.(2017년, 벨기에 루뱅 가톨릭대학교의 재난통계). 이탈리아에서 1500년부터 2000년까지 일어난 인구 10만 명당 살인사건은 65명에서 2명으로 크게 줄었다. (2003년, <범죄의 역사적 추이>, 시카고대학 출판부)
낙관적 세계관을 위한 통계를 찾는다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미래 사회가 계속 좋아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이르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세계의 사망자는 인구 10만 명당 2018년 94명에서 1990년 150명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2020년 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년 전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었다. 브라질에서 사라지는 원시 밀림 면적과 호주 연안의 산호초 소식을 들으면 마냥 긍정적일 수 없다.
거대 도시는 출퇴근 거리가 길고 교통량이 많아 배기가스도 늘어난다. 환경론자들은 도시에서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농촌과 자연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자는 주장을 하지만, 그렇다고 농촌에서의 삶이 반드시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나뭇잎 청소기와 정원을 가꾸는 기계들이 유발하는 오존 오염량은 주 전체 승용차가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다는 통계도 나왔다.
인포그래픽(Infographic)은 정보와 지식을 시각화한다. 사그마이스터의 인포그래픽은 현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시각화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관점을 시각화하고 있다. 미래가 희망이 되는가, 혹은 절망으로 변하는가는 우리의 관점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