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해방과 샤넬의 전설>
‘머리에 총을 댄 기분으로 살아간다’
20세기 초. 열정적인 신여성들의 겪어야 했던 격렬한 감정에 대해 프랑스 작가 앙리 지델은 전기 ‘코코 샤넬’에서 이렇게 규정했다.
시대와 삶에 투쟁했던 여성들의 폭력적 에너지와 극적인 사건들을 함께 묘사하여 주목을 모으고 있는 이책에서 여성해방주의자 샤넬은 마치 생생한 염료로 그려진 그림처럼 탐욕적이며, 예측하기 힘든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단순히 재능있는 패션 디자이너라기 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혹은 한 여자로서의 삶과 사랑을 샅샅이 훑어 내리듯 표현된 샤넬은 분명 패션을 통해 남자들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코르셋을 벗게 하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제시했던 강인한 여자였다.
톰보이 스타일의 머리, 동백꽃, 캐시미어 카디건, 투톤 슬링백 슈즈, 긴 진주 목걸이, 베레모, 블랙 앤 화이트 컬러, 트위드 코트, 인조 보석, No. 5의 주인공 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는 감성의 이면에는 언제나 디자이너로서 교란된 많은 삶의 방향성과 고독한 내면이 있었다.
<디자인 소스는 투쟁의 산물>
확실히 그녀의 생애는 역설적이다.
강철같은 여자였지만, 명성에 너무도 집착을 보였던 그는 가장 화려한 자리에 위치하면서도 그자신은 언제나 모두에게 외면받는 늙은 매춘부 신세가 될까봐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들에게 잔인할만큼 표독스러웠지만, 평생 한 마리의 동물도 죽이지 못했던 성정을 갖은 여자로서 표현되기도 한다.
장돌뱅이 아버지가 차가운 고아원 잿빛 담 안에 딸을 버리고 간 그날부터 처량한 양재 보조사, 그리고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성장하기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삶은 언제나 서로 다른 상징들로 대치되어 있었다.
니진스키, 막스 자코브, 스트라빈스키, 피카소, 사티, 장 콕토 같은 당대 예술가들이 그녀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지만, 그녀는 평생 독신이었으며, 단 한번도 그녀가 원한 사랑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최고의 지위에서도 그녀는 언제나 남자들의 요새 속에서 여전히 갖혀 있었으며, 나이와 성에 제한되지 않은 영원성의 작품을 만들면서도 정작 그녀의 표정은 언제나 접근을 인정하지 않는 불안한 고양이의 표정을 연상시켰다고 한다.
“난 삶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터득한 맹수였다”라고 스스로를 밝혔던 샤넬. 짧게 자른 숱진 까만 머리, 거의 이어진 두 눈썹, 놀라울 만큼 빠른 허스키 보이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샤넬의 생애를 이해하더라도 그녀를 좋아하긴 힘들었다고 술회할 만큼 그녀의 진모습은 까탈스러웠을 수 있다.
그러나 샤넬의 패션은 지금도 경이로운 내적 집중속에서 한번도 안식을 얻지 못한 모든 여자들의 영원한 꿈이라는 아이러니를 남겼다.
<20세기 패션의 뒷모습.>
한편, 코코 샤넬과 함께 20세기 패션의 양대 산맥을 이룬 이브생로랑의 이야기는 좀더 현실적이다.
1958년, 스물 한 살의 나이로 디오르(Dior) 하우스를 지휘하기 시작한 그는 이후 40년간 여성용 턱시도 정장(‘르 스모킹’·66년), 어깨에 힘을 준 파워 수트, 최초의 유니섹스 향수 등을 선보이며 20세기 패션을 이끌은 거장으로 남아있다.
모들리안 룩과 대퇴부까지 올라오는 롱부츠, 사파리룩등 대표적인 엘레강스룩을 비롯하여 고자크 룩, 포크로아풍을 표현하는데 끊임없는 재능을 보이던 그는 색채를 조정하는 테크닉이 풍부한 모드계의 제왕이기도 하다.
코르셋으로부터 해방된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 준 세기의 패션디자이너는 그의 마지막 자리에서, “불안과 지옥을 지나온 세월이 끔찍히도 고독했다”며 개인적인 심경고백을 해 샤넬보다 더 슬픈 뒷모습을 보였다.
르 몽드 등 세계 언론들은 그가 은퇴함으로써 이시대의 진정한 오뜨꾸뛰르가 사라졌다고 크게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없다”는 솔직함으로 이미 ‘꿈’이 아닌, ‘일상’이 되어버린 ‘패션의 대중화 시대’를 선언해 버린 것이다.
<충돌한 비즈니스와 꿈>
그러나 사실 이브 생 로랑은 지난 10여년간 비공식 은퇴 상태였다.
이번 이브 생 로랑의 은퇴와 함께 문을 닫는 그의 오뜨 꾸뛰르 라인 역시 연간 1000만 달러의 적자를 내는 아픔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이브 생 로랑 기성복 라인을 지휘하기 시작한 미국 텍사스출신의 디자이너 톰 포드는 이미 몇해 전 구찌 브랜드를 되살려 내면서 이브 생 로랑의 고전적인 디자인에 현대식 섹시함을 더해 이브 생 로랑의 기성복 라인은 대성공을 거두고 있었지만, 이브생 로랑 자신은 영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비상한 비즈니스 감각으로 무장한 톰 포드와 패션을 영원한 엘레강스로 머물게 하고 싶었던 이브 생 로랑의 꿈이<
저작권자 © 한국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