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ZARA, GAP, 바나나리퍼블릭, 유니클로 등 글로벌 SPA브랜드들의 한국 시장 진출이 속속 확정되고 있다. 극심한 경기 침체 속에 포화 상태에 이른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국내 의류업계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뛰어난 디자인으로 엄청난 물량 공세를 퍼붓는 글로벌 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한국형 SPA의 미래를 동대문에서 찾아보았다
한국의 패션산업을 이끌었던 동대문 봉제공장들은 언제부턴가 싼 인건비를 좇아 중국으로 넘어갔다. 한국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인건비를 바탕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동대문에는 많은 봉제업체들이 남아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 규모는 영세하고 가격경쟁은 힘들지만 이들에게는 그간 축적된 뛰어난 기술과 중국공장보다 빠른 시간 내에 작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원단 거래 시장인 동대문종합시장과 인접해 있어 원단과 부자재들의 확보가 쉽다는 점 역시 이들의 시간 경쟁력을 높여주는 요인이다.
이들 프로모션 업체들은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글로벌 SPA브랜드들 역시 대량 생산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다양한 디자인을 소량 생산해 급변하는 소비자들의 구매 트렌드에 맞춰가는 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SPA브랜드들은 소비자들에게 중저가로 최신유행을 제공한다는 비즈니스 철학으로 소비자들의 욕구와 관심에 귀 기울인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정보들을 디자인팀에 전달해 기존 컬렉션을 업데이트하는 한편, 새로운 컬렉션 제작에 반영한다. 매장에는 2주에 한번 씩 신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는데, 이는 디자인·구매·생산·물류·판매를 직접 책임지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유연성과 수평적 생산 및 유통구조를 강조하고 있다.
동대문 SPA시스템의 구축
현재 동대문의 많은 도매업체들과 프로모션 업체들은 그들만의 SPA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중이다.
그들의 시스템은 어떤 면에서 ZARA나 H&M의 그것보다 더 빠르고 소비자와 더 밀착 돼 있다. 저녁에 영업을 시작해 새벽에 끝나는 도매시장의 영업 사이클에 맞춰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은 디자인을 아침에 오더하면 오후 2시경 봉제공장에 패턴과 원단이 넘어온다. 그렇게 작업이 진행돼 다시 저녁이면 새로운 물건이 도매시장에 풀리게 된다. 도소매가 동시에 이뤄지는 동대문시장의 특성상 소매소비자 뿐만 아니라 도소매 상인들의 반응까지 한 번에 파악이 가능해 오히려 글로벌 브랜드들보다 더 폭넓고 다양한 정보를 입체적으로 얻을 수 있다. 글로벌 브랜드에서 2주가 걸리는 일들이 동대문에서는 하루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가격경쟁력으로 공습해오는 중국공장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동대문의 영세한 공장들이 건재하는 힘의 원천이 바로 이것이다. 중국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대형화된 중국 공장에서 다양한 아이템의 생산이 가능하더라도 그것이 한국에 들어오는 데는 며칠의 시간이 걸리게 된다. 동대문이 갖고 있는 시간의 장점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반면 동대문의 SPA시스템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디자인의 무제한 자기복제다. 반응이 좋은 디자인이 생기면 그와 비슷한 종류의 디자인들이 우후죽순처럼 시장에 쫙 깔리게 된다. ZARA 등의 글로벌브랜드들은 제품이 인기가 있더라도 재출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그러나 동대문 시장에는 이런 희소성이 없다. 물론 완벽히 통제가 가능한 하나의 브랜드와 각각 다른 유기체들이 모여 움직이는 형태의 동대문시장이 완전히 같아 질 순 없다. 하지만 발전이 동반되지 않는 지속적인 디자인의 자기복제는 결국 전체의 도태를 낳을 뿐이다.
분업화 된 생산인프라
현재 동대문 주변 창신동, 신당동, 숭인동, 신설동 등은 골목마다 영세업체들이 자리하고 있다. 봉제업체 뿐만 아니라 패턴, 다림질, 단추 등의 완성 작업들로 분업화 돼 있다. 예전에는 한 공장에서 모든 작업이 이뤄 졌으나 요즘은 분업화·전문화 된 것이다. 이와 함께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을 활용한 디자인 분업까지 이뤄진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중국으로 갈 필요 없이 바로 수정이 이뤄지는 패턴실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숭인동에서 보문동과 창신동에 이르는 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