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5년 여름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갔을 당시 그들의 할인율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알던 유럽 원산지 가격대와 다른, 마치 한국의 동대문보다 더 저렴한 가격대를 보고 바잉과 마진율에 대해 상식을 깨는 혁신을 보았다.
유통은 규모의 차이일 뿐 방식은 흡사했다. 그 후로 1990년 중반 일본 백화점에 방문했을 당시에도 이탈리아 브랜드 편집샵이 많았는데 어디에서 물건을 바잉하면 저렴하고 어떻게 컨셉을 정해서 팔면 되는지 눈과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편집샵에 대해 신사업을 구상하던 중 2001년에 ‘몬테밀라노’를 창업해 이탈리아 밀라노 근교에서 물건을 구매해 브랜드를 전개했다. 그 당시 바잉하는 곳이 여러 곳이어서 그들의 오리지널리티가 살아있는 네이밍을 그대로 팔기를 원했지만 메인 유통에서는 편집샵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라벨과 매장명이 동일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만약 그 당시 한국의 메인 유통에서 편집샵을 하겠다는 나의 제안을 OK해주었다면 현재의 ‘몬테밀라노’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2010년 이후로 국내에도 편집샵이 봇물처럼 쏟아졌고 매장 내 여러 개의 브랜드가 공존하게 됐다. 우리가 인지를 못할 뿐 모든 분야의 큰 흐름은 계속 바뀌고 있다.
변화의 흐름을 타지 않고 실무자들이 기존의 해오던 방식만을 고수한다면 암울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나만 아는 노하우였던 것이 스마트폰의 등장과 기기의 발전으로 ‘노하우가 일반 하우’로 바뀌게 되었다. 모든 것들은 손안에서 쉽게 찾을 수 있기에 중저가 SPA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세계 전시장에 다니면서 나의 경쟁 대상은 디자인이 아니었다. 디자인에 따른 가격 경쟁력이 없다면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방글라데시 같이 노동력과 원부자재가 충분한 곳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 ‘글로벌 현실’이다. 돈을 버는 행위와 남다른 생각을 남에게 주입시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글로벌 전시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더욱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한국 시장은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글로벌 SPA 브랜드들의 각축전이 되고 있고 그런 브랜드들이 단시간에 한국에 정착해 이익을 냈기에 제2, 제3의 중저가, 저가의 글로벌 소싱 노하우가 있는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쏟아지고 있다.
그로 인해 국내 브랜드들은 가격 비교에서 열세를 보이며 비슷한 브랜드들은 디자인력이 좋더라도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매출이 떨어지고 손익을 내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아울렛 급증, 마트의 고급화, 몰의 등장, 그리고 온라인 쇼핑몰들의 백화점 진출 등은 소규모 대리점들의 존재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다. 앞으로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한국 95%의 대리점은 100% 반품을 허용하는 위탁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서구에서는 직영이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만의 독특한 방식이고 모든 대리점주나 본사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현실에 대비해야 할 것인가!
3~4개의 브랜드가 집결해 위탁 판매 회사가 점주들을 상대로 대형 대리점을 모집하거나 판매대행 회사가 직접 매장을 직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캐주얼 브랜드 3~4개 또는 엄마브랜드와 아이 그리고 잡화 브랜드를 믹스한 매장 등 새로운 유통 브랜드를 육성해 대리점주들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방법이다.
자금과 신용이 있는 판매대행 회사가 영업 기획을 잘 한다면 분명히 새로운 방식의 유통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도 불경기는 지속될 것이고 점점 매출대비 이익은 줄어들 것이다. 현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새로움을 모색하지 않으면 남는 것은 불평과 실패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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