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한국소비트렌드 10가지
미국발 금융 위기의 파고가 전세계 실물 경기로 확산되며 소비 심리가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불확실성이 극대화될 2009년, 한국 사회를 관통할 핵심적 소비 가치는 무엇일까.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김난도 교수는 2009년 우리 사회의 소비 트렌드가 ‘불황형 실증주의’로 흘러갈 것으로 예측했다.
‘나를 지켜줄 것은 결국 나밖에 없다’는 인식 아래 △급변하는 세계에서 소외되지 않으려 자아를 적응시키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 타인과 차별화하며 △자기 내면으로 침잠해 상황적 불안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실존적 자아 찾기’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2009년 한국의 소비트렌드를 10가지로 예상했다. △Better Me(스펙을 높여라) △I’m So Hot(난 너무 멋져) △Gotta Be Cocooned(다시 집으로) △Cross-Internetization(생각대로 인터넷) △Alpha-Mom, Beta Dad(아빠 같은 엄마, 엄마 같은 아빠) △Simply·Humbly·Happily(소박한 행복 찾기) △Hobby-Holic(취미 대한민국) △Casual Classics(고급문화, 일상 속으로) △Off-Air Attitude(무심한 듯 시크하게) △Wanna-Be-Star, Wanna-Be-Mass(스타와 대중, 자리 바꾸기)다. 키워드의 첫 글자만 모으면 ‘BIG CASH COW’가 된다.
‘캐시 카우’란 현금을 짜내는 젖소로, 기업에 막대한 현금을 제공하는 상품이나 사업 분야를 가리키는 경제 용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지만 시장에서 강세를 유지하는 흑자 사업을 한번 사와서 키우기만 하면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암소에 비유했다.
쉽게 말하면 기업의 ‘돈줄’이다. 김난도 교수는 “암울한 전망이 가득한 2009년, 우리나라가 넉넉한 수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이라고 했다. 각각의 키워드를 통해 올해 소비트렌드의 맥을 짚어봤다.
전상열 기자 [email protected]
Better Me ; 스펙을 높여라
‘더 나은 나’를 향한 경쟁적인 자기계발 트렌드는 2009년 그 정점을 향해 치달을 것이다. 새로운 지식을 따라가지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된다. ‘구직난 속의 구인난’이라는 역설이 말하듯 대체 노동력은 넘쳐나지만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한 고급 인력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무엇이든 지도 받아서 해결하려는 ‘튜터십 세대(tutorship generation)’다. 입시·고시학원에 친숙하고 1 대 1 영어회화 튜터, 헬스 트레이너, 이미지 컨설턴트, 재테크 전문가를 두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학습 열풍이 IT 기술과 접목되며 이러닝(e-learning) 시장이 급성장할 전망이다. 지독한 불경기 속에서도 학습기기 시장만큼은 호황이 기대된다. MP3·휴대폰 등 개인용 전자기기의 학습기능이 크게 강화될 것이다. 출판·교육업계는 관련 지식과 교양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기존의 종이책 이외에 다양한 유형으로 상품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학습형 사회로 이행할 것이다. 각계 각층에서 다양한 스터디 그룹이 더욱 활발히 조직되고 각종 학습·취미 동호회와 사교 모임의 학구열도 뜨거워질 것이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대학원·사회교육원·최고위과정 등록을 포기하는 대신 저렴한 이러닝이나 국비지원 강좌, 문화센터로 관심을 돌리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I’m So Hot ; 난 너무 멋져
자아도취에 빠지는 셀프홀릭(self-holic)족이 늘고 있다. 나는 타인과 다른 감성을 지닌 영혼의 소유자라고 믿는 일종의 정서적 사치를 누리려는 태도다. 자기표현적 나르시스트에게선 개인 출판과 같은 다양한 자기 표현 수단이 예상된다.
여러 가지 자아를 뜻하는 멀티미(multi-me) 현상도 늘어날 전망이다. ‘디지털 호모나랜스(digital homonarrans·디지털 공간에서 이야기하는 사람)’, 소비자들이 인터넷상에서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만들고(story-telling) 공유하며 전파해 나가는 경향도 나타날 것이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콘텐츠를 재구성하며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항상 ‘나’ 자신을 둔다는 점이다. 청년 백수 200만 시대. 위안추구형 나르시시스트들에겐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고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주며 잠시 날개를 접은 이 시기를 유쾌하고 보람있게 만들어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들을 위한 위로형 대중문화 상품도 속속 선보일 것이다.
개인의 갈증과 고독을 위로하고 합리화하거나 소통의 노하우를 전하는 책, 자기성찰 도서가 주목 받을 것이다.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이미지 컨설팅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소비자의 궁핍하고 ‘주변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문화상품으로 오타쿠적인 감수성이 투영된 독특한 컨셉트의 수집물이나 체험 상품의 출현도 예상된다.
Gotta Be Cocooned ; 다시 집으로
‘코쿠닝(cocooning)’이란 사람들이 누에고치(cocoon)처럼 보호막 안에 칩거하려는 현상을 말한다. 구(舊)코쿤족이 실업이나 소극적 성격 때문에 사회와 단절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했다면 신(新)코쿤족은 안전한 환경에서 안정을 취하고 육체적·정신적으로 재충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집에 머무른다. 외부 사회와의 연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집에서도 즐겁게 놀거나 자기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네오 코쿠닝은 소비자가 더욱 능동적으로 가내 체험을 활성화한다는 면에서, 홈시어터·게임기 등의 디지털 기기에 의존해 수동적·소모적으로 시간을 때우던 기존의 디지털 코쿠닝과 차별화된다. 먹거리 안전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커지면서 홈쿠킹도 주목 받고 있다. 가정에서 천연 페인트나 비누, 화장품 같은 일상용품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 컴퓨터 게임도 일부 매니아만을 위한 전문가적인 게임에서 온 가족이 모여 쉽게 즐길 수 있는 내용으로 진화 중이다. 호텔이나 레저업계엔 위기이면서 기회다. ‘도심 속 휴식(urban retreat)’을 화두로 소비자의 힐링 라이프 스타일(healing lifestyle)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실내 파티, 실내 클리닉, 명상, 요가 등 실내 치유 프로그램이 늘어날 것이다.
Cross-Internetization ; 생각대로 인터넷
2009년은 모바일 연계성(mobile connectivity)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휴대전화를 TV·PC·게임기·프로젝터 등 다른 기기와 연결해 인터페이스(interface)의 제약을 넘어서려는 시도다. 소비자들의 온라인 여가생활과 정보탐색이 잦아지며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은 한층 더 길어질 것이다. ‘24시간 유비쿼터스 인터넷 시대’에는 패턴화된 생활 시간, 구획된 공간의 개념이 힘을 잃는다. 일상생활의 효율성과 수월성이 혁신적으로 향상된다. 대신 소비자들은 삶의 여백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상시 연결’은 ‘상시 여백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다양한 기기를 통해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그만큼 더 많은 정보와 광고에 노출된다는 것을 뜻한다. 기업의 마케팅 전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소비자들은 폭주하는 정보, 더 많은 선택지 때문에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Alpha-Mom, Beta Dad ; 아빠 같은 엄마, 엄마 같은 아빠
알파맘은 자녀교육·재테크·정보수집 등 가정생활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적극적인 엄마다. 이들은 학원·사교육 선택에서 세세한 하루 스케줄까지 자녀의 모든 일상을 관리하려는 통제형·리더형 엄마이자, 살림에도 기업 경영적 요소를 가미해 최대한 효율성을 추구하며 적극적으로 재테크에 나서는 가정의 CEO다. 베타대디는 알파맘을 보완해주는 새로운 유형의 아빠로 부드럽고 자상하게 자녀를 돌보고 언제라도 가사를 맡을 수 있는 따뜻한 아빠를 말한다. 가정 내 부모의 성(性) 역할이 달라지며 이런 변화상을 반영한 소비재 광고가 급격히 늘고 있다. 여심(女心)을 잡기 위해 자상한 남성 모델을 내세우는 생활용품 광고가 부쩍 늘어날 것이다. 가사 도우미 서비스, 급식당번 일일 도우미, 가족 식사를 유기농 식단으로 짜주는 푸드 플래너, 주간 계획표·숙제검사·쪽지시험까지 관리하는 학습 도우미 등 엄마의 역할을 도와줄 직업군의 성장이 예상된다. 문화센터에는 아빠와 함께 하는 요리교실, 보드게임, 놀이영어 강좌가 속속 개설되고 있다. 남편이나 ‘돌싱남(이혼남)’을 위한 가사상품인 ‘우렁(색시) 가전’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Simply·Humbly·Happily ; 소박한 행복 찾기
불확실성에 지친 소비자들은 작은 행복의 소중함에 눈을 돌린다. 정서적·심리적·신체적 불안을 해소하고 안전과 안정을 추구하는 행복 추구(secured happiness) 트렌드가 소비시장의 주동력이 될 것이다. ‘가족의 재조명’ 현상도 현저히 나타나 문화·마케팅·광고 등 여러 영역에서 가족관계에 대한 되새김질이 두드러지고 특정 제품의 마케팅에서도 가족은 화두 중의 화두가 될 것이다.
스파·리조트·템플스테이·명상여행 등 치유상품(healing product)이 각광 받고 있다. ‘가능한 일탈’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계약직 등으로 1~2년간 잠시 일해 번 돈으로 다시 1~2년간을 쉬며 여행이나 취미 등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누리는 생활을 반복하는 프리커족(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