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신년 좌담회-韓패션봉제산업 활로는…전문가 9人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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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라벨갈이·최저임금’ 문제 해결해야 산다”
中서 수입한 의류, 매장 보다 곧장 완성센터 보내 원산지 세탁
업계 차원 라벨갈이 철퇴 운동본부 출범…적극적 대처 천명
제조·판매뿐만 아니라 소비자에도 큰 불이익
국내 봉제산업계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같은 제도적 문제와 아울러 수십 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열악한 공임, 날로 늘어가는 수입산 의류의 범람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위기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본지는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근간이 되는 국내 봉제산업의 현실을 되짚고 구체적인 산업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신년 특집 좌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7일 동대문패션비즈센터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현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대책으로 일명 ‘라벨갈이(수입 의류를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제품으로 원산지를 속이는 행위)’ 근절을 꼽고 향후 여러 단체들이 힘을 모아 대책수립에 나서기로 했다. 2월경 가칭 ‘라벨갈이 철퇴를 위한 의류봉제인 운동본부’를 출범시켜 업계 차원에서 공동대응 한다는 방침이다. 좌담회 참석자는 다음과 같다.
/정리=정기창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조동석 기자 [email protected]

전완수(사회 진행) : 오늘 바쁘신 와중에도 많은 조합 및 단체장들께서 대담 자리에 참석해 주셨다. 국내 봉제업계는 내외부적인 요인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감은 부족한데 임금은 올라가고 근로시간마저도 줄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및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옷들이 원산지를 속이고 메이드 인 코리아 라벨을 붙인 채 유통되고 있어 봉제공장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우리 봉제업계가 처한 현실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해 주시기 바란다.

신종화 : 언급된 것처럼 라벨갈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현재 봉제업에 종사하고 있는 각 지역별, 업종별 조합 및 단체장들도 문제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하다. 국내 봉제업계를 고사시키는 라벨갈이 심각성에 대해 논의가 돼야 할 것으로 본다. 최저임금도 짚어봐야 할 문제다.

이덕희 : 라벨갈이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짚어야 한다. 동대문 시장 상인들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제품을 저급으로 인식해 판매하기 어렵다고 한다. 베트남,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다. 이 제품들을 메이드 인 코리아로 바꾸면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인줄 알고 자부심을 갖고 사 입는다고 하더라. 상황이 이렇자 약 10년 전부터 시장 주변에 라벨갈이를 하는 완성센터들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들어온 의류는 보통 2~3일만에 인천항으로 들어온다. 예전에는 여기서 바로 매장으로 제품이 풀렸는데 지금은 이 옷들이 곧장 완성센터로 간다. 이 곳에서 아예 폴리백 포장까지 한다고 한다. 비용도 장당 300원에서 지금은 1000원까지 올랐다. 라벨갈이 수요가 그만큼 커진 것이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봉제업계로 돌아온다. 국내 생산할 물건을 해외에서 만들어 오면서 원산지를 속이고 있다. 우리 일감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한성화 :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이 작년에 (퇴사하고) OOO상가에 가게를 냈다. 계속해서 물건을 해 가더니 가을부터 생산주문을 안 하더라. 알아보니 중국 제품을 가져다 판다고 한다. 여기는 라벨갈이 제품이 많이 도는 곳이다. 장사 시작하는 젊은 친구들이 벌써부터 이런 방식이다. 점점 확산되는 단계로 보인다. 중앙정부 장관도 만나고 시장도 만나 심각성을 이야기했지만 어느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농수산물은 원산지를 속이면 크게 처벌받는데 라벨갈이는 잘못됐다는 인식을 안 갖는다.

김동석 :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가 단속할 때 짝퉁에 대해서는 (업자) 구속도 시키고 벌금도 부과한다. 그런데 원산지 표시 위반인 라벨갈이의 심각성은 인지하지 못한다. 서울시만해도 작년에 공식 단속이 3~4건 밖에 안됐다고 한다. 얼마전 서울시 관계 공무원을 만난적이 있다. 인력만 있으면 신념을 갖고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하더라. 이런 분들도 있다. 이번 기회에 원산지를 속이는 라벨갈이 문제를 한번에 뿌리 뽑아야 한다. 우리는 직원 고용하고 세금까지 내는데 라벨갈이는 세금도 안 낸다. 벌금이라도 내게 해야 되지 않는가.

박귀성 :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은 올해 이 문제 해결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운동본부를 만들어 실행단계를 논의하고 있다. 의류를 제조하는 공장뿐만 아니라 판매자들도 라벨갈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많은 전화를 해오고 있다. 시장 상가 상인회장님들도 이런 저런 조치를 취해달라고 수 차례 요청해 왔다. 제조하는 공장에서 먼저 시작하면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시장 상인 중 약 30%는 라벨갈이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조정남 : 우리 같은 공장이나 봉제 조합들은 힘이 없다. 사회 이슈화가 필요한데 자금도 문제다. 우선 각 조합별로 플래카드라도 붙이고 분위기 전환에 나서야 한다. 신고하고 단속되면 소문이 나서 다들 경각심을 갖게 된다.

박귀성 : 우리 조합이 먼저 솔선수범하겠다. 이번주 조합 사무실에 플래카드를 먼저 부착할 계획이다. 팜플렛도 만들어 상가와 공장 밀집 지역에 배포할 생각이다. 서명 운동도 병행하자.

김왕시 : 먹거리는 원산지 문제에 민감한데 의류는 일반 소비자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원산지를 속이는 라벨갈이가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계도홍보가 필요하다. 관련 관공서도 업무 협조에 우호적이다. 수사권을 가진 기관들은 수사 개시를 위한 정보제공이 필요하다. 구체적 정보 없이는 조사를 나갈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운동본부에서 내부적으로 신고 포상제를 운영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현행법상 3000만원 이하의 포상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귀성 : 통일되고 강력하게 문제 해결을 추진할 중심체가 필요하다. 원산지 라벨갈이 철퇴운동본부(가칭)를 만들고 힘을 모아 대처해 나가야 한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면 효과를 얻기 어렵다. 추진단체를 중심으로 액션플랜을 세우고 준비해 나가야 한다.

전완수 : 최저임금 및 근로시간 단축도 현안으로 다가왔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일자리 안정자금지원은 별 소용 없다는 말들이 많다.

김동석 : 올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하면 월 197만원을 급여로 줘야 한다. 여기에 4대 보험을 감안하면 약 30% 늘어난 260만원이 고용유지 비용이 된다. 외국은 우리의 1/5 수준밖에 안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13만원을 지원한다고 고용을 유지하거나 늘릴 곳이 있겠나. 우리 회사는 직접고용 20명, 간접고용까지 약 40명이 일하고 있다. 작년에만 4억원 적자를 봤다. 심각하다. 회사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이제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된다고 한다. 지금 수준으로도 약 6000곳에 이르는 중랑구 봉제업체 중 95%는 문을 닫을 형편에 놓여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업체를 조사해서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한다. 왜 중소기업인을 죄인 취급하는지 모르겠다.

한성화 : 식당 가서 최저임금 올라가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니 밥 값을 1000원 올리겠다고 대답하더라. 그런데 우리는 직원 월급 올려야 하니 공임을 높여 달라고 하면 “중국산 의류는 더 싸게 파는데 어떻게 공임을 올리냐”는 답이 돌아온다. 공임은 절대 못 올라간다. 무슨 수로 월급을 올리나. 최저임금 올라가면 폐업할 수 밖에 없다는 말들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 동대문 인근 봉제공장 오바사(오바로크를 다루는 사람) 월급이 최소 250~280만원인데 최저임금이 200만원에 육박하면 이들에게 얼마를 줘야 하나 고민된다. 6시 이후에는 150% 임금이 적용된다. 사업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겠나.

김동석 : 인력 노령화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요꼬 티셔츠의 경우 똑같은 인원으로 예전에는 1000장을 생산했는데 작년에 보니 400장만 나왔다. 우리 공임은 7000원인데 베트남은 1200원이다. 라운드 티셔츠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1800~2000원을 받는데 베트남산은 900원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맞추며 어떻게 직원을 유지하나.

김용수 : 올 1월 들어 제대로 공장 돌리는 곳은 몇 군데 없다. 공장을 폐업하면 기계를 정리하는데 1/3 값에도 안 가져간다. 은행서 대출받고 기계 샀는데 중고제품도 처리가 안 된다. 작년 새로운 거래처를 만들었다. 자켓을 1만6000원에 해 달라고 하더니 아무 말 없다가 11월경 8000원에 해 줄 수 없겠냐고 다시 연락이 왔다. (국내 생산이 비싸니) 중국서 만들어 왔다가 사이즈 빠진 제품을 추가하려고 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렇다.

이날 좌담회는 원산지를 속이는 불법 라벨갈이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라는 결론점에 도달했다. 향후 각 봉제 조합 및 단체들은 앞으로 ‘라벨갈이 철퇴를 위한 의류봉제인 운동본부(가칭)’를 출범시켜 확실한 단체 행동에 돌입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1차적으로 공장과 상인이 밀집한 지역에 인식 전환을 위한 플래카드를 내 걸고 팜플렛을 돌리는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했다. 또 국회 및 지자체 등에 현 봉제산업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알리고 이들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수단을 적극 강구하기로 했다.

동북부스웨타연합협동조합 이덕희 이사장<사진>은 이날 대담이 끝난 후 기자에게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메일 도착 시간을 보니 17일 밤 11시 48분이었다.

그는 이 글에서 “(봉제산업에 몸 담고) 참 오랜 시절을 보냈다”며 “우리는 70년대 100만불 섬유수출산업을 이끌었고 이제는 K-패션을 이끄는 동대문 시장의 주역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제조 인프라는 중국 및 동남아시아로 빠져 나가고 저임금에 따른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원산지 표시위반 행위는 한국 패션봉제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릴 위험으로 다가왔다”고 했다.그는 ▲최저임금 16%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전안법 실시에 따른 비용 부담 ▲패션봉제인 노령화로 인한 인력 공동화 현상심화 등을 국내 봉제산업계의 당면 과제라고 썼다. 아울러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은 패션봉제 산업 생태계 변화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자신들의 불찰도 있지만 앞으로는 지난 잘못과 과정을 되풀이 하지 않고 동대문 패션이 거듭나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사장은 “우리는 큰 자본은 없지만 아름다운 옷을 만들 수 있는 손재주 기술을 갖고 있다”며 “그래도 우리가 살아 남아야 대한민국 패션봉제산업 생태계를 지킬 수 있다”는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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