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헤라서울패션위크·패션코드 2019S/S 최저 성적표
경계 허물고 하나로 뭉쳐 ‘아시아패션위크’로 큰 그림 다시 그려야
대한민국 하이패션계가 총체적 난국을 맞았다.
대한민국 패션의 미래에 대해 뼈 아픈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다. 패션계는 이번 2019S/S 헤라서울패션위크와 패션코드를 “전진하지 못하고 후퇴한 행사”로 평가 한다. 패션계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내지도, 비전과 희망적 기대감도 제시하지 못했다.
세계 5대 패션위크로 도약하겠다던 서울패션위크는 후발 주변국가 도시들이 의욕적으로 패션위크를 육성하는 사이 목표와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질적 하향평준화한 글로벌패션위크
2019S/S헤라서울패션위크는 모던하고 세련되게 플레이팅된 식탁 같지만 차려진 내용물은 기대 이하였다. 정구호 총감독 체제 출발은 종전 산적했던 문제점들을 과감하게 해결하고 진정한 선진국형 글로벌 패션위크로 도약한다는 청사진 앞에 ‘비전과 희망적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헤라서울패션위크는 한국 고유의 하이패션의 특성마저 희석됐고 질적 ‘하향평준화’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서울패션위크는 K-패션의 종주국으로서 한국패션의 정체성과 수준을 대변하는 글로벌 행사가 아니라 말그대로 ‘서울’이라는 동네잔치에 머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션위크는 특정 유명디자이너 그룹이 큰 목소리를 내서도, 그렇다고 반대편에 치우쳐서도 안된다. 대한민국의 패션 수준을 가늠하고 국격을 대변하기 때문이고 향후 섬유패션산업 발전의 고부가 전초 기지이기 때문이다.
2019S/S헤라서울패션위크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의 중견디자이너와 격차가 심한 신진들의 조합으로 허리가 없는 기형이었다. 선배부터 후배까지 다양한 특성을 가진 디자이너 브랜드의 패션쇼를 통해 다양성을 충족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몇해전 부터의 지적이 무색할 만큼 이번 시즌은 더욱 불균형을 이뤘다.
서울패션위크 기간 동안 한국을 찾았던 중국 패션기업 대표는 “한국은 역동성이 있지만 젊은 디자이너 위주의 스트리트 패션에 국한됐다” 면서 “세련되고 모던한 유럽이나 미국적 디자인을 느낄 수는 있지만 한국적인, 한국만의 색깔을 찾기는 어려웠다”고 느낌을 전달했다.
한 동안 꽤 문턱이 높아 중견디자이너들 조차 참여를 포기했던 헤라서울패션위크가 이번 시즌에는 낮추기보다 없앤 듯한 느낌이다. 실력있는 기성디자이너들은 대부분이 서울패션위크에서 발을 뺐다. 중견은 물론이고 기성, 한때 주목받았던 신진들까지 서울패션위크에서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비단 그들만의 잘못이나 직무유기는 아닐 것이다.
불과 몇시즌 전 한국은 물론 뉴욕과 런던 등에서 활약했고 서울패션위크에서 주목받았던 모 디자이너는 “서울컬렉션에 참여할 때는 홍보효과나 바이어들과 상담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지만 그 두가지가 충족되지 않는 데 굳이 패션쇼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아직까지 디자이너나 의상, 패션쇼보다는 ‘헤라’와 ‘연예인 누구누구’가 더 부각되고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신진들의 전시장은 아무리 1대1 매칭에 중점을 뒀다고 해도 글로벌소싱을 독려하는 자리로는 초라하다.
헤라서울패션위크의 큰 성과도 있다. 대한민국 신진들이 데뷔무대로서 꿈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제너레이션 넥스트(GN)을 통해 수많은 신진들이 기성으로 올라서는 역대 전무후무한 결과를 냈다. 또한 정구호 감독이 앞장서 신진들의 해외진출 및 성장을 위한 펀드를 구성했다. 그 어느 대기업도 할 수 없는 공공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진성 바이어를 파악하고 질적인 성과를 도출하고자 애썼고 다양한 시도들도 많았다.
이같은 노력들에 비해 한국패션산업이 나아가기 위한 화합과 참여, 공감대를 얻는것에는 실패했다. 건물은 튼튼한 기초공사와 기둥이, 나무는 뿌리가 중요한데 서울패션위크는 근간을 잃었다. 모 중견디자이너는 “잘한 부분도 많지만 뭔가 큰 것을 놓쳤고 기둥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라는 극한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신진들의 실력 격차도 커서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자격을 낮춘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10회째에도 뒷걸음치는 패션코드
2019S/S 패션코드는 10회째를 맞았지만 심화과정에 돌입하지 못하고 퇴보된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 패션문화축제라기에는 걸음마 수준의 학예회 같은 서운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한국패션을 대변하거나 신진들의 멘토가 될 중견디자이너 한 명의 참가도 볼 수 없다. 지난시즌 임선옥 디자이너의 클로징 무대는 많은 관심을 불러모았고 더불어 전시장도 북적이는 일시적 효과를 가져왔다.
천정이 낮고 어두운 패션쇼장은 신진들의 작품이 빛나 보이지 않았다. 전시장 역시 형식적으로 몇벌의 옷을 내건 기성 디자이너 부스부터 실망감을 안겨줬다. 참가 신진들은 가격경쟁력과 오더수행 능력을 갖추지 않은 경우가 많고 바이어 역시 오더할 수 없는 입장인 전시회에서 과연 어떤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독특한 이색공간이라는 성수동 에스팩토리가 과연 패션쇼와 전시에 적합한 명소인지는 다시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전시장을 다녀 온 유명 중견디자이너는 “회의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행사의 취지를 다시금 되짚어 봐야 한다”는 평가를 했다.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나”란 헤밍웨이 소설 제목처럼 “누구를 위해 전시를 하고 패션쇼를 하는가?”라는 원론적 질문을 해 본다. 서울패션위크건, 패션코드건 주최·주관·지원하는 측에 따라 명분은 “시민과 혹은 패션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축제”여야 하고 “글로벌 오더수주의 장”이어야 한다. 명분은 그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고 실현돼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서울패션위크 침체의 수혜는 가까운 중국
가까운 상해패션위크는 5년전부터 정부의 지원아래 지속 몸집을 키워왔고 한국은 물론 해외유명브랜드들까지 온 타임 쇼에 참여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중국 자체의 바이어만으로도 충분히 상해에서 패션쇼를 할 명분이 있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한결같은 답변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퇴보했다. 예산이 줄어 들까봐, 혹은 책임이 전가될 까봐 애정담긴 조언도 삼가란 말을 하며 비판을 두려워 하는 사이 대한민국 패션계는 위기에 봉착했다.
표류하는 디자이너연합회, 흔들리는 뿌리
이 가운데 대한민국하이패션계를 대변하는 디자이너들의 단체인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가 부초처럼 떠돌고 있다. 지난 5월 회장직에 오른 정구호 감독이 최근 직무를 수행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9월말까지 15명의 디자이너로부터 총 45억원의 투자를 받아 펀드를 조성하고 수익사업을 창출하겠다던 정구호 감독은 선배 디자이너들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지난 8월 연합회 사무실도 폐쇄하고 내놨으며 업무연계도 중단한 상태다. 총체적 리프레시를 다짐했던 정감독은 지난 5월 회장직 수락이후 회장 등기를 미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회원들은 “이런 결과를 도출할 바엔 회장직을 수락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입장과 “송지오 전임 회장부터 현재 이르기까지 무리한 절차를 따른 결과”라는 격론을 나눴다.
뿌리와 역사를 중요시하고 진정성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수립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울패션위크에서 디자이너들이 패션쇼를 하는 한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는 건재해야 한다. 결과에 대한 절반의 책임은 패션계 종사자 모두의 방관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여하고 개방하는 글로벌행사 만들자
서울패션위크는 명실상부 글로벌 비즈니스의 장이고 세계 유수의 컬렉션으로 거듭나야한다. 중견과 기성, 신진이 적극 참여하고 해외 디자이너 참여도 독려하기 위해 개방해야 한다.
서울이라는 지역이 아닌 ‘아시아패션위크’가 돼야 한다. “행사를 하기위한 행사진행”이나 “기관이나 단체의 영역”을 벗어나 효과위주로 ‘컨트롤 타워’를 세우고 뭉쳐야 한다. 또한 디자이너가 자발적 중심이 되도록 연합회의 재건과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 발전을 위한 비판을 수용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 하이패션산업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