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시장과 타협보다 독창성에 집중…해외 팬덤 형성
해외 홀세일은 디자이너 부담 적은데
국내 유통은 수수료 높은 위탁판매 리스크
‘1064스튜디오’는 사이즈가 크고 볼드한 디자인이 특징인 핸드메이드 패션 액세서리 브랜드다. 매 시즌 새롭고 독창적인 소재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시즌마다 감각적인 룩북을 찍는다. 온라인상에서 좀 더 주목받을 수 있는 아트피스를 제작해 오피셜 계정의 에디토리얼을 완성했다.
이는 세계적인 패션 인스타그래머들에게 리그램되면서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해외 세일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현재 1064스튜디오는 일본·뉴욕 MOMA에 입점하고 국내 패션 쥬얼리 브랜드로는 최초로 네타포르테에 몇 시즌 째 홀세일을 진행 중이다. 167만 팬덤을 보유한 해외 유명 패션 인플루언서가 협업을 제안해 상품 라인 제작에도 들어갔다.
1064스튜디오 노소담 대표는 “해외 홀세일 마켓은 글로벌 장벽이 없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끝없이 새로운 신상품을 어필하며 개척해야 한다. 하지만 고유의 정체성을 흔들림 없이 구축해 나간다면 분명 기회의 시장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퍼스트레이디가 들어서 유명해진 가방 브랜드 ‘구드’는 네타포르테 바잉 디렉터가 오피셜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직접 연희동 쇼룸까지 찾아오는 극적인 사례를 만들어낸 케이스다. 네타포르테 입점과 제1회 더 뱅가드에 선정되는 행운까지 거머쥐었다. 볼드한 캔디스트랩과 빈티지한 쉐입의 믹스매치, 뉴 클래식의 정의를 새롭게 제안한 점을 신선하게 평가받았다.
구드 구지혜 대표는 “구드만의 시그니처 컬러와 호마이카 재질의 스트랩, 견고한 삼나무프레임으로 섬세하고 특별한 차별화가 세계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르917’도 첫 해외 세일즈에서 단숨에 네타포르테 입점과 더뱅가드에 선정된 사례다. 그라치아, 모노클, 마리끌레르 등 수많은 해외 매거진과 홀세일러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깨끗하고 동양적 색채가 있는 어드밴스드 컨템포러리 장르로 불리운 고유의 미니멀하지만 유니크한 디자인 영역이 높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르917 신은혜 대표는 “지금 패션 시장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스토리와 감성, 그 브랜드만이 주는 감도가 정말 중요하다. 나의 정체성을 룩북에서 어떻게 녹여내느냐도 완성도를 높이는 필수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런던 패션위크에서 세 번째 쇼와 상하이 컬렉션까지 마친 푸시버튼은 예술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브랜드로 평가받으며 활발한 글로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디자이너 박승건은 “패션에 있어 한국적인 것은 과거의 전통적 스타일이 아닌, 동시대의 흐름과 감성을 반영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브랜드 고유의 아카이브를 담아야 한다. 아카이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속에서 대중적인 타협보다 독창성에 집중하겠다는 결단과 선택이 만들어낸다. 세계무대에서 ‘푸시버튼 패션· 푸시버튼 스타일’로 정의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앤더슨벨’은 2015년부터 유럽, 미주, 일본, 중국 등 활발한 해외 세일즈를 진행해왔다. 올해부터 하이 컨템포러리 장르로 점프 업 한 후 성공적인 신고식을 마치고 네타포르테와 쎈스에 속속 입점했다. 해외 세일즈 확대를 본격화하고 도산스토어는 오는 3월 퍼포먼스형 아트 공간 겸 쇼룸으로 한 번 더 디벨롭한다.
앤더슨벨 최정희 대표는 “쟁쟁한 브랜드와 견주는 글로벌 각축장에서 얼마나 다름을 보여주는 것이 브랜드의 성패를 가른다. 매장의 집기 하나, 단추 라벨링 디테일 한 끗 차이를 알아봐주는 시대가 왔다. 글로벌 장벽이 없는 만큼 잠재력을 잘 메이킹하고 어필한다면 세계무대에서도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밝혔다.
국내 유통환경은 디자이너 성장에 장애
국내와 해외 플랫폼의 온도차는 상당하다.
해외 플랫폼은 모두 홀세일 방식의 매입구조라 물량에 대한 책임이 플랫폼에 있다. 때문에 자체적으로 물량 소진을 위해 활발한 마케팅과 착장 모델컷 촬영까지 모두가 플랫폼이 책임진다.
브랜드 발굴을 위한 전문 바잉팀이 체계적·전사적으로 움직이며 다양성이 공존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입점 디자이너들은 오직 개성과 정체성을 살려야 소비자들에게 픽 될 수 있기 때문에 다채로운 장르의 디자이너들이 경쟁하고 생존하는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마련된다.
국내 플랫폼의 경우 30% 이상 수수료 지불과 위탁 입점의 판매 중개 개념이다. 화보와 모델컷, 배송, 반품까지 모두 디자이너가 책임진다. 자생하기 녹록치 않은 환경이다. 최근에는 국내 플랫폼 입점을 포기하고 자사몰과 해외 세일즈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신진 디자이너들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홀세일 개념 자체가 없는 국내 플랫폼들은 입점과 동시에 무조건 많이 팔아야 살 수 있는 구조다. 매스 마켓화가 갈수록 심화되며 다양성이 공존하기 쉽지 않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보다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해외에서 한국 패션에 대한 존재감이 생기고 볼륨업이 되고 있는 추세지만 감도 있고 수준 높은 브랜드가 배출되기 쉽지 않은 유통들의 후진적이고 구조적인 환경이 디자이너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 네타포르테 엘리자베스 바잉 디렉터 독점 인터뷰
“서울, 젊고 트렌디한 도시가 탄생시킨 창의적 디자인 높이 평가”
- 한국 디자이너에 대한 평가는?
한국 디자이너들은 우아함과 컬러풀함, 남성성과 여성성 등 콘트라스트적인 요소를 조화시켜, 대담하지만 멋지고 완벽한 룩킹을 보여준다. 글로벌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한국 디자이너들만이 가진 젊은 문화에서 오는 독특한 특별함이 있다.
뛰어난 퀄리티와 제품의 원동력인 한국 브랜드만의 정교한 기술은 세계 어디에서도 빛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만의 멋지고 쿨 한 디자인과 럭셔리하고 방대한 지식에 대한 보유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서울이라는 젊은 도시가 탄생시킨 대담하지만 균형적이고 다양성이 공존한 유니크한 디자인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 코리안 컬렉티브에 대한 세계적인 반응은?
코리안 컬렉티브를 소개하면서 아시아 지역, 특히 홍콩에서 한국 패션에 대한 굉장한 호응을 끌어냈다. 호주와 싱가폴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다. 이번에 참여한 코리안 컬렉티브 외에도 레지나표, 웰던, 로우 클래식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앤더슨벨과 르917은 미국과 영국에서 큰 호응이 있다. 한국 패션은 르917과 같이 미니멀하고 아름다움을 강조한 디자인에서부터 푸시버튼 같이 장난스럽고 흥미로운 디자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졌다.
- 한국에서 진행 예정인 프로젝트가 또 있나?
네타포르테 바잉팀은 매번 서울 패션위크에 참여한다. 방문할 때마다 놀라운 재능을 가진 디자이너를 발견한다. 앞으로도 꾸준한 방문으로 전 세계 네타포르테 고객들에게 많은 한국 디자이너를 소개할 예정이다.
- 한국에는 아직 창의적인 디자이너들이 많이 있다. 네타포르테에 진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네타포르테 고객들은 특히 떠오르는 신진 브랜드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신선하고 실험적인 스타일에 대한 시도를 좋아한다. 브랜드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을 잘 조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무엇보다 고객에게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느낌을 선사할 수 있어야한다. 네타포르테는 세계 각지에서 항상 합리적인 가격대에 디자인 중심의 유니크한 제품을 선보이는 브랜드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