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부터 2대째 가업 이어온 셔츠 기업
위기 순간에 친환경, 윤리적 기업 철학 빛 봐
지난 6월 28일 세르죠 마타렐라(Sergio Mattarella) 이탈리아 대통령이 국내 코로나19 최대 피해직역인 베르가모를 방문해 추모 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는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닌 이탈리아 전 국민을 격려하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의미가 큰 행사로 받아들여졌다.
3~4월경에는 코로나로 사망한 시민들의 관을 싣고 전국의 화장터를 찾아 베르가모 시립묘지를 나서던 군용 트럭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런 추모행사들은 아픔과 고통을 잊다는 의미보다 객관적이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당시의 진실을 모든 사람이 공유하자는 의도가 더 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련의 사태를 겪는 사이 최근 이탈리아 의류업계는 자국 의류 산업의 헤리티지(Heritage)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자신들이 가진 문화유산, 헤리티지를 다시 찾아내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이제 이탈리아 의류업계는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첫번째 파도를 힘겹게 넘기면서 그 사이 진행돼 온 크고 작은 실수들을 한꺼번에 되짚어 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가 가장 심각했던 베르가모와 브레샤 지역은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해 밀라노에서 동쪽으로 각각 30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중소도시들이다. 더욱이 이곳은 이탈리아 북부의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이용해 오랫동안 패션, 와인, 종이, 화학 등 다양한 형태의 산업이 발달해 왔다. 특히 패션산업에 있어 모직물 생산지역인 비엘라와 더불어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직물 생산의 산업시스템을 갖춘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이 두 도시는 이탈리아 국내에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지역으로 여겨져 왔다. 패션이나 직물 생산에 종사하는 기업인들이 집안 대대로 보유한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와인 브랜드 하나쯤 보유하고 있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풍족한 환경에서 나서 자라온 지역 부호들은 자연스럽게 지역 예술, 문화사업과 환경보전에 큰 관심을 보였고 자연스럽게 기여도도 높았다.
또한 그들은 컴퍼니 타운(company town)으로 불리는 종사자들의 근무환경부터 주거시설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주의를 기울여 왔다. 이 지역에서는 대기업 직물업체에서 크고 작은 셔츠 봉제업체에 이르기까지 오래전부터 친환경 윤리생산품을 만들어내고 에티컬(Ethical), 윤리적인 작업 환경을 유지해 온 기업들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최근 방문한 셔츠 생산업체인 브래샤 인근의 두에엠메(Dueemme srl)는 1975년경 작은 셔츠 봉제작업실로 시작해 2대째 이어져 오고 있는 지역 중소기업체다. 그 사이 두에엠메는 두 개의 자회사 브랜드를 런칭했고 베르가모의 관광 중심가에 샵도 오픈해 소비자를 직접 만나고 있다.
두에엠메의 대표 잠바티스타 로타(Gialbattista Rota)와 그의 아내 마틸데 로타(Matilde Rota)는 기업의 자랑거리로 서슴없이 윤리적 회사 경영 방침과 종사자들 작업환경의 질을 이야기했다.
그들의 봉제상품 특성상 인근에서 가정을 가진 많은 여성들이 공장에서 셔츠를 제작하고 있다. 일례로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까지만 진행되는 근무시간부터 작업 환경 위생과 안전 시스템까지 그들의 기업환경은 오랜 시간 동안 쌓인 경험과 노하우의 결과물로 보여졌다. 그렇게 한 직장에서 일해 온 종사자들이 제작한 고 퀄리티 제품은 이탈리아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요즘 두에엠메도 모든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그들은 소비자들이 자기네 퀄리티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온라인 샵이나 마케팅에 더욱 전념하겠다는 각오도 함께 말했다. 그들을 만나는 동안 이 지역의 헤리티지는 그들 특유의 여유로운 생활 습관이 가져온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기업 철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을 막지 못했던 지자체의 잘못된 판단은 지역 기업인들이 가졌던 윤리성와 지역과의 깊은 연관성을 잠깐 져버린 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베르가모에는 ‘오리오 알 세리오(Orio Serio)’라는 작은 국제공항이 있다. 이 공항은 라이언 에어 같이 대부분 로우 코스트 운항으로 저렴한 근거리 국제 여행을 즐기는 야행자들이 애용한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꽉 짜인 비행 스케줄과는 다르게 지난 3~5월에는 마치 거짓말처럼 고요한 공항으로 탈바꿈했다.
6월이 되어서야 하나둘씩 다시 들리기 시작한 비행기 소음이 코로나가 쓸고 지나간 상처를 다시 기억나게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지금의 모든 상황처럼 무언가 다시 시작되는 느낌도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