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재택근무 돌입
환경 다르니 집중력 떨어지고
근로와 휴식의 경계 모호
고용부, 재택근무종합 매뉴얼
준비되지 않은 기업들에 유용
5월 초 업무상 저녁 식사 자리에서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이 생겨 자가격리를 하게 됐다. 다음날은 주말이라 타인 접촉이 없었던 상태에서 바로 거주지 인근 선별진료소 PCR검사를 받았다. 하루 뒤 나온 결과는 음성.
비록 백신도입이 늦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지만 국가기관의 코로나 감염경로 추적과 후속 조치는 생각보다 신속하고 꼼꼼했다. 이틀간 3곳의 지역 보건소 역학조사팀 전화를 받았고 동일한 내용의 사실 확인과 자가격리 수칙 준수를 고지 받았다.
마스크와 소독제, 의료폐기물 전용(쓰레기)봉투가 담긴 방역물품은 비대면으로 전달받았다. 스마트폰에는 자가격리 안전보호 앱을 깔았다. 14일의 격리 기간 중 매일 오전, 오후 두 차례 자가진단 내용을 전송했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혹시하는 마음에 전전긍긍했던 하루 동안의 시간을 제외하고 별다른 동요는 없었다. 여러 관계기관에서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전화가 수시로 걸려왔다. 만에 하나 심각한 감염 증상이 발현되더라도 신속한 처치와 치료를 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할 일은 재택근무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집에 있는 PC에 각종 업무용 프로그램과 원격제어 툴을 설치했다. 일주일간 예정됐던 외부 스케줄은 모두 취소했다. 필요한 준비는 다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업무에 들어가 보니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첫번째 난관은 집중력 하락이었다. 손 닿는 곳에 있던 수단의 편리함과 심도 있는 사고의 틀을 제공하는 공간의 익숙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원격제어 툴은 수시로 접속이 끊어지고 업무용 프로그램은 호환성 문제가 있는지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
직원들과 회의, 기사생산 및 편집 등에 걸리는 시간은 평소의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한두마디 대화로 해결할 일 마저도 일일이 텍스트로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일이 상당히 비효율적이었다.
그렇게 사나흘이 지났다. 이번엔 업무시간 중 근로와 휴식의 애매한 경계가 혼란을 일으켰다.
평소와 똑 같은 시간에 일어나 씻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던 신문은 동일한 시간동안 PDF판으로 읽는다. 현관을 나서지 못하니 1층 우편함에 배달돼 온 신문도 가져올 수 없다. 그리고 업무 개시 시간에 맞춰 PC 환경을 세팅한다.
그러나 집에서 하는 일은 회사의 그것과 같은 속도와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자연히 효율은 낮아지고 일의 결과물도 질이 떨어졌다. 긴 호흡을 요하는 일은 손을 대기 어려웠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3달 후의 이벤트를 준비하는 업무는 자연스레 뒤로 밀렸다. 14일간으로 명시된 한정적 격리기간의 영향도 있었다.
가장 애매한 시간은 오후 4시 전후. 급한 일들은 마무리가 됐으니 회사에서 추진하는 중장기 업무를 기획하고 설계하는 시간이다. 해야 할 일이 줄어든 것도 아닌데 실체가 잘 잡히지 않는 미래의 업무에 몰두하기가 어려웠다. 잡다한 생활소음들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몸과 마음이 풀어지는 경험을 했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만약 사내에 확진자가 발생해 많은 인원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업무 성과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장기간 지속되는 소통의 단절은 또 어떻게 극복하나. 관련 자료를 찾다 고용노동부가 재택근무 종합 매뉴얼(일생활균형 누리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업무환경 구축에서 보안대책 마련 및 복무관리, 성과측정과 산재보상 등 도입절차에서 법적쟁점까지 항목별로 요약해 놓았다. 기업들 반응이 좋았던 모양이다. 제3차 재택근무 종합컨설팅 참여기업 모집이 아쉽게도 6월 4일자로 마감됐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생애에 한번도 오지 않았을 약 보름간 격리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명제는 단 하나였다. 인류의 삶에 정말 엄청난 변화가 오겠구나, 과연 코로나 이후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