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부터는 우동 거리야. 여긴 새로운 컨셉 카페인 줄 알았는데 신발 가게였네?” 성수역 앞 수제화 거리를 지나는 20대 두 명이 즐겁게 이야기하며 걷는다.
성수역에는 자랑스러운 수제화 거리를 소개하는 정보가 많다. 수제화 만드는 도구와 역사를 알리는 연표, 성수동 수제화 거리 지도가 곳곳에 놓여있다.
역을 걷는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지하철역 벽면에는 수백개에 달하는 성수동 수제화 생산 업체명이 새겨졌지만 현재 성수동에는 명단 속 업체는 대부분 찾아볼 수 없다.
지도 속 업체들이 밀집한 거리로 들어서면 거리를 가득 채워야 할 수제화 업체는 보이지 않고, 시끄러운 공사 소음만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부자재 가게 바로 옆에서는 카페 기둥을 용접하는 불꽃이 튀고 있고, 피혁 가게 맞은편에는 다음날 오픈 준비를 마친 새 카페가 들어섰다. 커다란 유리창을 자랑하는 구두가게는 텅 비어 있고 가게입구는 갓길주차 공간이 됐다.
성수동에서 약 30년동안 근무한 피혁 업체 이성현(가명) 대표는 성수동 월세 가격이 10년동안 약 6.5배 올랐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저쪽에 새로 오픈한 카페는 2평도 채 안되는 좁은 공간인데 월세가 100만원”이라며 “10년 전에는 15만원이었으니, 임대료가 얼마나 올랐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수제화 거리라고 이름 붙여졌던 10여년 전에는 1200여개 업체가 있었지만, 코로나19가 오기 직전에는 약 100여개 업체만 남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후에는 남아있던 업체마저 떠났다.
이 대표는 “사업이 잘될 때는 직원을 6명 뒀지만 지금은 1인 기업”이라며 “지금까지 남아있는 곳은 ‘버틴다’고 표현해야 맞다”고 했다.
성수동에 남아있는 수제화 관련 종사자들은 코로나 타격도 컸지만 10년 전부터 서서히 진행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A피혁 업체에 근무하는 김진혁(가명) 과장은 “성수동을 둘러봤다고 하니 온통 공사하는 거 봤을 거다”며 “서너명이 뭉쳐서 부지를 알아보러 다닌다. 부동산 팀의 주요 타겟은 수제화 업체”라고 말했다.
성수동 위치가 서울숲·강남구와 가까워 부동산 성지가 됐다는 설명이다. 김 과장은 “여기가 어딜 봐서 수제화거리냐”며 “(정부는) 이름만 붙여두고 사실상 방치했다고 본다. 카페 거리로 부르는 게 낫다”고 말했다.
성수동은 최근 5년간 지속적으로 제조업체 숫자가 감소하고 있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1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성수동(1,2가) 제조업체 숫자는 총 2873곳이었다. 5년전과 비교해 10%나 줄었다.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 영세 제조업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작년에는 감소폭이 더욱 컸을 것으로 추산된다.
수제화 관련업체들은 비싼 임대료가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입주 업체는 임대료를 낮출 명분도, 방법도 없다. 성수동 수제화 업체들은 다른 사업을 열거나, ‘필요하면 연락달라’는 메모를 남겨놓고 문을 닫았다. 1층에 자리잡았던 수제화 업체들은 임대료가 저렴한 지하와 2층으로 이사했고, 성수동 외곽으로 떠났다.
부자재 업체 박성은(가명) 대표는 “건물주 개개인에게 강제로 임대료를 낮추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어쩔 수 없다”며 “업체들이 성수동 외곽으로 흩어져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힘들다. 더 이상 후배를 키울 수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