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수출기업 A사는 지난 8월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컨테이너 10개를 실어 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국 수입업체 측에서 수배해 준 선박은 5개 컨테이너 공간에 불과해 나머지 물량을 선적할 배는 따로 수배해야 했다. 그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이 회사와 거래하는 포워딩 업체는 “요즘에는 에어(항공) 수배조차 어려워(일반 항공료보다 높은) 익스프레스 요금을 내야 실어 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 19의 델타 변이 확산으로 전세계 물류 대란이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패션업계는 가을, 겨울 물량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선박과 항공 부족에 따른 운임상승에 더해 환율까지 올라 기업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포워딩 업체에 따르면 동남아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선박의 경우 입항이 예년과 비교해 1주일 이상 늦어지고 있고 에어마저도 1~2일 지연되는 상황이다. 물동량이 급격히 늘어난 반면 코로나 확산으로 컨테이너 처리 속도마저 늦어져 항만에도 적체가 이어지고 있다.
미주, 유럽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미국 항만에 들어가는 선박은 최소 3주 이상 늦어지고 있어 제때 납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물류 기업들은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생산해 미국, 유럽으로 가는 선박 대란이 가장 심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포워딩기업 제이티엔에스 박홍준 대표는 “미국 보스턴과 동부 뉴욕에 도착하는 선박은 이미 10월까지 컨테이너 예약이 가득 찼다”며 “중국에서 미국 동부 해안으로 가는 요금은 40피트 컨테이너 기준 운임이 2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선박 운임이 올라가면서 항공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항공마저도 스페이스 잡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포워딩 업체 관계자는 “항공은 취소되는 화물에 대비해 통상적으로 수배 물량의 120%를 예약하는 데 요즘에는 에어 수요가 늘어 무조건 급행(Express) 요금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통관조사 전문회사인 데카르트데이터마인에 따르면 중국 등 아시아에서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북미행 컨테이너 수송량은 지난 7월들어 11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컨테이너 운송 15개 항로의 스팟(spot) 운임을 반영하는 상하이컨테이너 운임지수 역시 9월 들어 작년보다 3배 이상 올랐다.
물류 대란 사태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패션기업들은 물류 원가 상승으로 신음하고 있다. 패션기업은 통상적으로 상품 원가대비 물류비 비중을 3~5%를 잡는데 9월 현재 물류비는 봄보다 3~5배 이상 뛰어올랐다. 여기에 환율까지 급격히 상승하면서 물류비는 최소한 전체 원가의 10%를 훌쩍 넘어버린 상황이다.
이 같은 물류 대란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시장 주도권마저 수요자에서 공급자 위주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포워딩 기업 제이스국제물류 관계자는 “코로나 이전에는 물량이 많은 대기업이 물류 시장을 주도했지만 지금은 화주(화물 주인)이 아닌 선사가 물류 시장을 주도하는 형국”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선박 운임은 올 봄과 비교해 4배 이상 뛰었다”며 “앞으로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